'포스코' 너마저, 공급 과잉 철근 시장 진출... 불편한 철강 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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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너마저, 공급 과잉 철근 시장 진출... 불편한 철강 업계
  • 김호정 기자
  • 승인 2023.12.2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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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올해 8월부터 코일 철근 생산·판매
공급 과잉 시장 진출에 중소 업체들 "달갑지 않아"
포스코 "생산 여유 될 때만… 계열사 물량용"
경쟁 잠재력 끌어올리는 ‘메기 효과’ 될 수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빌딩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빌딩 사진=연합뉴스

포스코가 그동안 생산하지 않았던 철근 제품, 그중에서도 물량이 적은 코일 철근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철근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전기로 제강 업계를 중심으로 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철근 시장은 이미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 과포화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소 철강업체들은 철강 업계에서 독보적 지위를 차지하는 포스코의 철근 시장 진출을 '생태계 교란 행위'라며 비판하고 있다.

포스코는 자사의 코일 철근 생산량이 업계에 위협을 줄 만한 상황이 아니며, 오히려 철근 시장의 가격 안정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향후 언제든지 철근 생산 능력을 확대할 수도 있고, 전체 철근 시장의 장악력을 키울 수도 있다면서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내 철근 시장, 수요보다 공급 많은 '레드오션'

철강 업계가 포스코의 코일 철근 시장 진출에 불만이 많은 이유는 우선, 이미 철근 시장은 생산량이 판매량을 넘어서는 과포화 시장 상태라는 점에 있다.

국내 철근 공급량은 주요 수요처인 건설사나 철근 가공업체에 납품하는 물량과 유통 판매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코일 철근.
코일 철근 제품.

 

철근 업계는 철근 시장 성수기 판단 기준을 연간 1000만톤 수준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국내 철근 업계의 생산 능력은 1200만톤을 이미 넘는 수준으로, 공급이 수요를 넘는 포화 상태다. 여기에 2022년 국내 철근 판매량은 966만6000톤으로 이미 성수기 기준에 미달한 상황이다. 이에 철근 업체들은 감산 또는 설비 개‧보수 등을 통해 생산량을 줄여가는 추세다.

전기로 철강 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 업계 침체에 따라 공급 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철근 생산 능력 자체는 이를 한창 뛰어넘었다"며 "생산 능력이 달려서 생산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수요가 충분하지 않아서 마음껏 생산을 못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건축용 철근은 수출량이 거의 제로(0)에 가깝다. 국내 수요도 연간 몇백만톤씩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철근을 생산하지도 않던) 고로 제철소(포스코)의 철근 시장 진입이 달가울 리 없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철강산업에서 포스코와 같은 고로 제철소는 철광석을 원료로 자동차와 가전용 강판 등 고급강 판재류 생산을 담당해왔다. 반면, 봉형강을 주로 생산하는 전기로 업체들은 철스크랩(고철)을 주원료로 철근과 H형강 등 건설에 주로 쓰이는, 상대적으로 범용 품질을 보이는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 구조를 보인다.

국내에서는 포스코가 고급강 판재를 생산하는 고로 업체로서 오랜 기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여기에 현대제철이 2010년 들어 고로 건설을 마치고 고로와 전기로 생산을 함께하게 되면서, 건설용 강재인 철근과 H형강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업체는 동국제강과 대한제강, 한국철강, 환영철강, 화인베스틸 등의 전기로 업체들이 남게 됐다.   

포스코는 선재 설비 1기를 통해 연간 70만톤 규모로 선재를 생산하는데 이 중 일부가 코일 철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판매는 포스코 인터내셔널이 맡는다. 현재로서는 포스코의 코일 철근 생산량이 우려했던 것보다 많지 않아 ‘생태계 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낮지만 포스코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우며 적극적인 시장 확대에 나선다면 기존 업체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포스코는 "(자사) 철근 생산량은 전체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생산된 코일 철근 역시 포스코 이엔씨 등 계열 건설사에 공급하는 용도로 사용할 것"이라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코일 철근 시장 규모는 50만~60만톤 수준으로, 포스코 진출 전까지 철근을 전업으로 하는 대한제강과 동국제강이 담당해왔다.  

한편, 철근과 건설 업계 일각에서는 포스코의 코일 철근 생산과 판매가, 막강한 경쟁자의 등장이 다른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일종의 ‘메기 효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타냈다. 포스코의 진출로 중소 코일 철근 가공업체와 건설사들의 거래처 다변화 요구가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더불어 경쟁 업체의 등장으로 상당 기간 정체됐던 원가 절감 노력이 다시 활발해지고, 품질과 서비스 향상에 대한 고민도 한 차원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그것이다. 

 

철근 시장 진출 배경에 유휴 설비 활용·가격 경쟁력 꼽혀

포스코가 생산하는 제품은 코일 철근이다. 직선 철근과 달리 철근을 코일 형태로 둥글게 말아 놓은 형태로 적재가 용이하고 원하는 만큼 잘라 쓸 수 있어 손실률이 적은 장점이 있다.

포스코는 포항 공장에 보유한 기존 선재 제품(철사·스프링을 만들기 위한 반제품)을 생산하던 라인 1기를 철근 생산 라인으로 변경해 코일 철근을 생산하고 있다.

 

코일 철근 제품.
코일 철근 제품.

 

포스코가 선재에서 철근 생산으로 눈을 돌린 배경에는 우선, 유휴 설비 문제가 있다. 중국산 선재 제품의 국내 유입이 늘어나면서 포스코의 선재 수요가 줄었고, 이에 따라 기존 선재 라인에 유휴 설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중국산 유입 확대로 국내 선재 생산량은 2021년 380만톤에서, 2022년 266만톤으로 감소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철근 생산에 필요한 철스크랩(고철) 가격과 전기 요금이 크게 올라갔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철광석을 이용해 고로 방식으로 철근을 만들 수 있는 포스코가 철근 생산을 위해 철스크랩을 주원료로 쓰고, 전기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전기로 업체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앞설 수 있다는 계산이 철근 시장 진입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포스코 입장에서는 유휴 설비를 활용하면서 동시에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묘안이었던 셈이다.

다만, 포스코는 자사의 철근 생산이 유휴 시설을 활용한 생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포스코 한 관계자는 "코일 철근 생산은 설비가 쉬는 유휴 개념이 아니라 ‘생산 여유분’에 해당한다"며 "선재 주문량이 많을 때는 코일 철근 생산을 중단하기 때문에, 선재 생산량이 많아지면 그만큼 코일 철근 생산량은 줄어드는 구조"라고 답했다.

즉, 선재 제품을 생산하던 중 주문량이 적다고 해서 설비를 쉴 수 없어 코일 철근을 생산하는 방식이고, 계열사 중심의 생산이 이뤄지므로 코일 철근 물량도 많지 않으며, 일정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철강 업계 다른 관계자는 "실제 그러한 방향이 실현되면 모르겠지만, 생산시설을 돌리기 시작하면 확장해 나가기는 쉽다"며 "포스코가 우월적 지위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어렵지 않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철스크랩 가격 급등에, 포스코 '입김' 주장도

높은 철근 가격도 포스코의 철근 시장 진출을 자극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근에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건설 경기 부진과 비수기 영향으로 톤당 80만원 초·중반대까지 떨어지기는 했지만, 팬데믹 이후 수요산업 회복 기조 속에 철근 가격은 2021년과 2022년 한때 톤당 120만원에서 140만원까지 오르는 등 급등세를 유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서 언급했던 대로 전기로 업체의 생산 방식 대비 가격 경쟁력에서 앞설 수 있는 고로 방식으로 철근을 생산할 수 있는 포스코가 철근 시장에 눈독을 들이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철근 제조업계 일각에서는 포스코가 최근 몇 년간 철스크랩 가격을 올리는 데 일조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들은 2021년과 2022년 포스코가 부른 국내 철스크랩 가격 상승으로, 철스크랩을 주요 원료로 하는 철근 가격도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게 됐다고 지적한다. 철스크랩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던 당시 일부 중소 제강사들은 원료를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앞서 포스코는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내걸면서 전기로 생산 방식 도입을 확대했고, 이 과정에서 철스크랩 활용량을 늘려왔다. 철광석을 생산해 쇳물을 생산하는 고로 생산 방식 대비 철스크랩을 주원료로 철강을 생산하는 전기로 조업 방식이 탄소 배출량 절감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상대적으로 철스크랩 사용량이 많지 않았던 포스코가 전기로 도입에 따라 철스크랩 사용량을 늘리면서, 결과적으로 공급 대비 수요가 확대돼 국내 철스크랩 가격이 상승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2021년과 2022년에는 팬데믹 기저효과 속에 글로벌 철강재 수요가 늘어나면서 각국에서 철스크랩 확보 경쟁이 일었고, 자연스럽게 글로벌 철스크랩 가격이 급등했다. 여기에 포스코가 철스크랩 사용량을 늘리면서 국내 철스크랩 가격 급등에 더욱 힘을 실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급등했던 철근 가격 역시 주요 원료인 철스크랩 가격 상승에 따른 당연한 가격 전가였다는 게 이들 전기로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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