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제강도 한국제강도... 월급쟁이 사장만 피봤다 [중대법 덫 걸린 철강社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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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제강도 한국제강도... 월급쟁이 사장만 피봤다 [중대법 덫 걸린 철강社②]
  • 박진철 기자
  • 승인 2024.02.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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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실형·기소 소유주·일가는 피해
처벌 대상 대표이사·최고 안전책임자 '회피'
한국제강 하종식 一家, 기소-처벌서 제외
동일제강 대주주 김준년, 친인척 김우진도 제외
포스코·동국·세아 지주 전환 '면피' 지적
총수 일가의 미등기 임원 재직 비율, 하이트진로 46.7% 1위

<편집자 註>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이하 중대법)은 왜 기업 소유주나 실질적 경영자인 이른바 '오너'와 오너 일가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까. 중대법 첫 실형이 철강업계에서 나오면서 중대법 관련 처벌이나 혐의가 실질적 기업 소유주가 아닌 월급쟁이 임직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질적 소유주 못 건드리는 중대법 처벌

철강업계의 중대법 앓이가 심하다. 2022년 1월 중대법 시행 이후 중대법 첫 실형 확정판결이 지난해 말 철강업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업 소유주와 소유주 일가 등 실질적인 경영주들이 중대법 처벌을 쉽게 피하고 있는 대신에, 전문 경영인 대표이사나 안전관리 책임자 등 월급쟁이 임직원들만 중대법으로 처벌받거나 혐의를 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22년 12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취약 분야 지원대책 당정협의회 회의장 앞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 등이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3년 12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취약 분야 지원대책 당정협의회 회의장 앞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 등이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대법 시행 이후 첫 실형 확정판결을 받은 한국제강 대표이사나 새해 들어 첫 중대법 불구속 기소가 나온 동일제강에서 처벌을 받거나 혐의를 받고 있는 장본인은 모두 이들 회사의 소유주나 사주 일가가 아닌 월급쟁이 임직원들이었다. 

사실 이미 2022년 1월 27일 중대법이 처음 시행되기 전부터 중대법과 관련해 사주의 형사 책임을 피할 목적으로 산업계에서는 이른바 전문 경영인 대표이사나 소위 ‘바지 사장’ 대표이사를 앉히는 사례가 목격돼 왔다. 더불어 사주나 일가가 대표이사를 맡더라도 월급쟁이 대표이사를 공동 대표로 두고, 생산과 안전 관련 책임을 맡기는 방법도 쓰였다. 이 밖에도 월급쟁이 임직원을 최고 안전관리 책임자로 따로 임명해, 실질적 경영권을 지닌 사주나 소유주 일가가 중대법 책임을 피하는 행태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도 돌았다.

특히, 포스코와 동국제강, 세아 등 철강업계 대표 기업들의 지주사 전환이 중대법 제정 전후로 붐을 이루면서 지주 회사와 사업회사로의 지주사 전환 역시 실질적 소유주나 경영주가 중대법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쓰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일었다.

 

전문 경영인과 법인만 '실형·벌금'

중대법 시행 이후 첫 실형 확정판결을 받은 것은 철강업계로, 한국제강 법인과 대표이사다. 전체 산업계에서 첫 실형 확정판결이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해 12월 28일 중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한국제강 전 대표이사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한국제강 법인에는 벌금 1억원이 확정됐다.

 

한국제강 전경. 사진=한국제강
한국제강 전경. 사진=한국제강

 

그러나 한국제강 창업자 2세인 하종식 대표이사와 한국제강의 최대주주로 77.14%의 주식을 소유한 하종식 일가는 중대법 관련 기소와 처벌을 피했다. 이번에 실형 확정판결을 받은 전 대표이사 A씨는 중대법 사건이 벌어진 2022년 3월 당시 하종식 대표이사와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한국제강을 이끌어 왔다. 안전보건 관리 책임을 월급 사장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실질적 소유주나 사주 일가가 법망을 피한 셈이다.

2022년 3월, 경남 함안 한국제강 공장에서 설비 보수 작업을 하던 하도급업체 소속 근로자 B씨는 1.2톤 무게의 방열판에 다리가 깔리면서 사망했다. 

검찰은 한국제강과 대표이사 A씨에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중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1·2심 재판부는 한국제강에서 산업재해가 여러 차례 일어났음에도 전 대표이사 A씨가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서 실형을 선고했다. 결국, 대법원에서 A씨의 실형이 확정됐다.

 

소유주나 일가는 처벌 '면피'

새해 들어 첫 중대법 불구속 기소가 나온 동일제강에서 혐의를 받고 있는 장본인도 이들 회사의 소유주나 사주 일가가 아닌 월급쟁이 임직원들이다.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지난 3일, 동일제강 전 대표인 L씨와 동일제강 법인을 중대법과 관련해 유해, 위험 요인에 관한 확인 및 개선 업무절차를 마련하는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2021년 5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앞에서 집회를 열고 "평택항에서 일하던 이선호 군이 300㎏ 컨테이너에 깔려 산재로 사망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며 "당진 현대제철에서,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부산신항 물류센터에서도 일하던 노동자가 추락하거나 지게차에 깔려 숨졌다"고 항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밖에 동일제강 공장장과 하청업체 대표 역시 전기공업 공구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동일제강 대주주인 김준년 이사나 친인척인 김우진 대표이사는 이번 불구속 기소에서 제외됐다. 

지난 2022년 7월 경기도 안성의 동일제강 공장에서 핸드그라인더로 철강재 연마 작업을 하던 C씨는 누전으로 감전돼 사망했다. 해당 근로자는 누전차단기 설치를 비롯한 감전 방지 안전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동일제강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관련으로 이번에 불구속 기소된 전 대표이사는 사주나 그 일가가 아니었다. 동일제강은 삼목에스폼 계열 철강업체로 PC 강선과 강연선, 마봉강 등을 주로 생산한다.

동일제강에서 불구속 기소된 전 대표이사 L씨는 동일제강 대주주인 김준년 이사의 회사인 에스폼에서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21년 3월, 동일제강 대표이사에 선임돼 영업과 생산을 총괄했다. 동일제강 대주주 김준년 이사는 동일제강에서 경영총괄을 맡았고 친인척인 김우진 대표이사는 관리총괄을 맡았다. 그렇지만, 둘 다 이번 중대법 관련 처벌을 피했다. 

동일제강 대주주인 김준년 이사는 불구속 기소된 전 동일제강 대표이사 L씨가 대표이사를 역임한 에스폼과 관계사인 삼목에스폼의 최대 주주다. 에스폼은 2007년 설립된 건축토목용 자재 제조·판매, 임가공을 하는 업체로 경기도 안성시에 본사를 두고 있다. 1985년 설립해 알루미늄 폼, 갱폼 등을 제조 및 임대하는 삼목에스폼은 에스폼의 폼사업 부문, 특수사업 부문, 소재사업 부문을 2021년에 분할합병했다.

 

책임 회피하는 지배구조... 중대법 '실효성' 해친다

사실 우리 산업계에서는 재벌 등 총수 일가가 기업 운영의 책임을 부담하는 등기 임원 의무를 다하지 않고, 미등기 임원으로 다수 재직하는 추세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중대법을 처음 제정하던 2022년 1월 당시에도 중대법이 자칫 허수아비 법이 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민혜영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정책과장이 2023년 12월 27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년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지배구조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혜영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정책과장이 2023년 12월 27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년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지배구조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실소유주나 실제 결정권자들이 의무와 책임을 벗어나는 동안 중대법이 목적했던 산업 현장의 ‘안전’은 오히려 뒷걸음질 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철강산업의 중대법 처벌과 기소 등을 살펴보면 기업 소유주나 일가들이 벌을 회피하는 대신 월급을 받는 임직원들이 실형을 살거나 기소되고 있어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재벌 총수 일가 등이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했던 회사는 136곳에 달했다. 사주 일가가 그룹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이사회에 참여하진 않아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회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6일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총자산 5조원 이상) 지배구조 현황 분석’을 발표하고 이처럼 밝혔다.

해당 조사에서는 73개 집단 소속 2735개 계열회사의 ▲총수 일가 경영 참여 ▲이사회 구성·작동 ▲소수주주권 작동 현황 등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 회사 중 총수 일가가 등기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433개로 집계됐다.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계열회사의 16.6% 수준이다. 전체 등기이사 9220명 중 총수 일가는 575명으로 6.2%로 나타났다. 

총수 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은 2020년 16.4%, 2021년 15.2%, 2022년 14.5%로 줄어들었다가 2023년에는 소폭 올랐다.

공정위는 “총수 일가의 이사 등재 회사 비율은 올해 처음으로 상승 전환했다”며 “책임 경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고 분석했다.

다만, 총수 일가가 책임을 지는 등기 임원이 아닌, 미등기 임원 신분으로 그룹 경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경향도 여전했다. 총수 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한 회사는 총 126곳이었다.

총수 일가의 미등기 임원 재직 회사 비율은 하이트진로가 46.7%로 가장 높았고, 이어 DB(23.8%), 유진(19.5%), 중흥건설(19.2%), 금호석유화학(15.4%) 순이었다. 특히, 이러한 ‘총수 일가 미등기 임원’은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규제 대상(부당 내부거래 금지) 회사들에 집중돼 있었다. 

총수 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126개 회사 중 총수 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는 수는 총 178건이며, 그중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에 재직하는 경우는 104건으로 절반 이상(58.4%)이었다.

공정위는 “권한과 책임의 일치라는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특히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에 재직하는 것은 더욱 부적절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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