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챙긴 조선, 철강산업과 '열매' 나눴나? [시경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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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챙긴 조선, 철강산업과 '열매' 나눴나? [시경pick]
  • 박진철 기자
  • 승인 2024.02.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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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호황' 불구 신음하는 철강업계①]
韓 조선, 3년 연속 1위 놓쳤지만... 고부가가치 수주로 수익성 향상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등 지난해 국산 후판 내수 판매 600만톤
중국 후판·블록 수입 대폭 증가... 국산은 팬데믹 이전 대비 100만톤 감소

<편집자 註>지난해 국내 조선업계는 2년 연속 글로벌 수주 1위를 중국에 내주면서도,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한 선별 수주로 수익성을 강화하는 등 내실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선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자재라고 하면 가장 먼저 후판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공급하는 국내 철강업계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최근 조선산업 업황 개선에도 불구하고 국산 후판 판매량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다. 팬데믹 이전인 2010~2019년까지 국산 후판 내수 판매는 조선 업황 부진 속에서도 700만톤을 웃돌았다. 반면 작년 국산 후판 내수 판매는 600만톤 대에 머물면서 팬데믹 이전 수준 대비 100만톤 가량 판매량 감소가 예상된다.

국내 조선업은 오랜 부진을 딛고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위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더울 때나 추울 때나 그 뒤를 묵묵히 뒷받침한 철강은 조선산업의 호황 '열매'를 함께 누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조선산업의 수주 '열풍' 뒤에는 중국산을 비롯한 수입 후판과 선박 블록 수입 증가라는 그늘이 있기 때문이다. 

호황기를 맞이해 활기를 되찾은 조선업. 그와 대조적으로 불황의 늪에 빠진 철강산업. 어둠이 짙게 깔린 국내 철강업계의 현실을 <시장경제>가 두 편에 걸쳐 다뤘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韓 조선, 3년 연속 中에 밀렸지만... 수익성은 좋아졌다

지난해 한국 조선업계는 중국에 3년 연속 세계 시장 1위 자리를 내줬다. 

중국은 자국 발주 물량을 등에 업고 꾸준히 수주량을 늘렸다. 다만, 초점을 수주량 내지 매출에서 수익성으로 돌리면 사뭇 다른 그림이 나온다. 한국 조선업계는 양적 수주량에서 여전히 중국에 밀리고 있지만,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중심으로 한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집중해 수익성을 크게 개선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는 지난해 말 "2023년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4,149만CGT(표준선 환산톤수)"라며 "2022년보다 18.7% 줄어들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한국은 2022년 대비 37.6% 감소한 1001만CGT(24%)를 수주하며 1위인 중국(2446CGT·59%)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2023년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4149만CGT로 전년 대비 18.7% 줄어든 점도 수주 물량 감소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의 추격에 발목을 잡힌 점도 있다. 2020년까지 한국은 3년 연속 수주 1위를 달성했지만, 2021년부터는 중국에 밀리고 있다. 

독(건조 공간)이 꽉 찰 정도로 약 4년 치 수주잔고(남은 건조량)를 확보한 만큼, 선별 수주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점도 국내 수주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2022년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은 모두 목표액을 넘는 수주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수주 합계는 22년에 미치지 못했으나 전반적인 수주의 질은 개선됐다는 평가다. 고부가가치 선박 중 하나로 선가가 가장 높은 LNG 운반선이 높은 수주 점유율을 유지했고, 암모니아 운반선 등 친환경 선박으로 수주 선종을 다양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반응이 앞선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 운반선은 554만CGT였다. 이 가운데 한국과 중국은 각각 441만CGT, 113만CGT를 수주하며 80:2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특히, LNG 운반선은 전통적으로 한국이 전체 발주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22년 중국이 수주 점유율을 30%까지 늘리며 쫓아왔지만, 다시 격차를 벌렸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24년 세계 선박 발주 물량은 2023년과 비교해 25% 감소한 2900만CGT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히 한국 조선사들의 수주 실적은 지난해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세계 조선 수주 물량 감소, 풍부한 내수 물량이 뒤를 받치고 있는 중국의 맹추격 속에 한국 조선사들은 올해도 대표적인 친환경 선박인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 ▲암모니아 운반선 ▲암모니아 추진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등으로 수주 선종을 넓히면서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를 통한 수익성 개선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 강화로 주요 선사들의 노후 선박 교체 수요도 높다"면서 "중국이나 일본 대비 차별화된 친환경 선박 경쟁력을 앞세운다면 올해도 전반적인 수주 수익성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국산 후판 판매 ‘100만톤’ 줄었다… 수입만 늘어

조선업계가 몇 년 치 수주 잔고를 자랑하며 배를 두드리는 동안 국내 철강업계는 후판(조선용이나 건설용으로 쓰이는 두께 6㎜ 이상의 철판) 판매 감소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해 국산 후판 내수 판매가 600만톤대에 머물면서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연간 700만톤 판매 대비 100만톤가량의 판매량 감소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0~2019년까지 국산 후판 내수 판매는 최대 수요산업인 조선 업황 부진 속에서도 700만톤을 웃돌았다. 그러나 최근 조선산업 업황 개선에도 불구하고 국산 후판 판매량은 오히려 저조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 

특히, 3~4년 치 수주 잔고를 채울 정도로 국내 조선업계가 수주 호황을 겪으면서 국내 철강업계에서는 후판 수요가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지난해 실제 국산 후판 판매량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국산 선박 블록 수입 증가와 함께 낮은 가격을 내세운 수입산 후판이 국내 시장 침투를 대폭 늘리면서 국산 후판 점유율을 상당 부분 빼앗았다. 

작년 국산 후판 내수 판매량은 628만톤 수준으로 2022년 대비 0.7%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판매량이 전년 대비 소폭 줄기는 했지만, 지난 2022년 있었던 포항 지역 힌남노 태풍 피해에 따른 판매량 감소와 일부 제조사 파업 등의 기저효과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판매량 감소는 더욱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사진=연합뉴스
포스코 포항제철소. 사진=연합뉴스

 

후판 제조업계는 줄어든 내수 판매에 대응하고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수출에 집중했다. 2023년 기준 국산 후판 수출은 약 234만톤으로 전년 대비 25.2%가 증가했다. 약 195만톤에 머물렀던 2021년 대비로도 19.7%나 늘었지만, 내수 판매와 마찬가지로 기저효과 영향도 컸다. 2018년~2019년 국산 후판 수출량은 각각 201만톤, 237만톤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후판 수출량이 코로나 이전 시기 수준을 회복했지만, 내수 판매 부진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당시를 제외하면 국산 후판 내수 판매는 2019년 이전 대비 크게 줄어들었다. 2018년 국산 후판 내수 판매는 708만톤이었으며, 2019년 판매량은 706만톤 수준이었다. 당시 최대 수요산업인 조선산업 업황이 부진했음에도 2023년 판매량 대비로는 100만톤가량 많은 물량을 내수 시장에서 판매했던 셈이다.

후판 내수 판매 부진에는 중국산을 필두로 한 수입산 후판과 선박 블록 수입이 이유로 꼽힌다. 중국산 후판 수입 비중은 2021년 29.7%, 2022년 38.3%에 이어, 2023년에는 56.4%까지 늘었다. 반면, 일본산 후판 점유율은 2021년 68.3%, 2022년 60.4%, 2023년에는 43.4%로 줄고 있다. 

더불어 예전에는 하품으로 인식됐던 중국산 후판의 품질도 개선되면서,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중국산 후판 수입을 넘어 중국에서 선박용 블록을 수입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국내 조선사 등 전방산업 업황 개선 수혜를 수입재 후판이 입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조선산업은 수요량 측면에서는 타 분야 대비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중국산 저가 후판 수입재와 선박 블록 위탁 제작 물량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여서 국내 후판 제조사들로서는 실질적으로 지난해보다 수요가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낮은 환율과 가격을 강점으로 한 수입산 후판의 점유율 상승 속에 조선산업 호황의 '열매'가 자칫 국내 철강업계가 아닌 중국을 비롯한 해외 철강사들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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