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건수사' 눈감은 재판부... 삼성 노조와해 1심 무더기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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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수사' 눈감은 재판부... 삼성 노조와해 1심 무더기 유죄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12.1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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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 수집 증거 배제 원칙' 항소심서도 핵심 쟁점
검찰 수사 착수 단서, 영장 범위 벗어난 압색으로 확보
영장 주의 위반, 별건 수사 위법성 논란 계속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협력사 소속 직원들의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기 설립된 노조 와해를 시도한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 전현직 임원 등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무더기 유죄판결이 나왔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의혹'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유영근 부장판사)는 17일 오후 선고기일을 열고, 피고인 32명 가운데 26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인사담당 부사장은 각각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 최평석 삼성전자서비스 전무, 목장균 삼성전자 전무 등은 징역 1년~1년6월 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반면 변호인단이 공판 초기부터 강조해 온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과 '별건수사'의 부당성은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이 사건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위법성 논란을 초래했다.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 수사를 위해 삼성전자 사업장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법원 발부 영장의 범위를 벗어난 문건을 일괄 확보, 그 내용을 분석하던 중 이른바 '그린화 전략' 문건을 발견했다. 검찰은 이들 문건을 기초로 수사를 확대, 삼성그룹 옛 미래전략실 주도 아래 조직적인 '협력사 노조 와해 시도'가 있었다고 결론내리고 32명을 기소했다. 

변호인단은 이 사건 수사의 위법성을 지적하면서 검찰 제출 문건의 증거 배제를 재판부에 요구했다. 변호인단은 검찰 압색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이른바 '묻지마 압색'이 안고 있는 위법성을 거듭 강조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무시했다. 재판부는 압색 과정에 일부 과실이 있었음을 인정했으나 증거를 배제해야 할 정도로 위법성이 심각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위법 수집 증거에 대한 이날 재판부의 판단은 실체적 진실 규명 못지 않게, '절차적 정의'를 중시하는 법조계의 기조에 맞지 않는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일부 항소심 재판부의 경우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을 적용, 1심 유죄 판결을 파기한 사례도 있다. 빠르면 다음 달 말부터 시작될 이 사건 항소심에서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대한 당부 판단이,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재판부가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소속 임직원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삼성 노사전략'과 '복수노조 대응태세 점검', '비상대응 시나리오' 등의 문건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변호인단은 해당 문건이 실무자의 업무계획 내지는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에 불과할 뿐, 실제 실행되거나 임원들에게 보고된 적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배척했다.  

오히려 재판부는 "노조 와해 및 고사를 위한 구체적인 수행방법이 기재된 문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만큼, 문건 해석의 필요 없이 그 자체로 범행모의와 실행, 공모까지 인정할 수 있다"며 "강경훈 부사장과 이상훈 의장에 이르기까지 노조 와해, 고사화 전략을 수립 지시하고 보고받은 증거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삼성잔자서비스는 협력사를 사실상 하부조직처럼 운영했고 근로자 파견범죄에 해당할 정도의 구체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며 “노조설립 차단과 세력약화를 위해 협력사 사장들에게 폐업지시를 유도한 것은 증거가 충분해 지배·개입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기획·위장폐업’ 의혹 등으로 기소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사장 4명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판례에 따라 사용자가 노조의 단결권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한, 경영 및 사업체를 폐업하고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기업 경영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의 상반된 판단은 향후 이어질 항소심에서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해선 협력사를 사실상 하부조직처럼 운영했다하면서도, 정작 협력사 사장들의 독립적인 폐업 권한은 인정한 셈이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항소심 최대 쟁점은 앞서 언급한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과 이에 근거한 '별건 수사' 적법성 논란이 될 전망이다.

형사소송법 308조 2항은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장주의'에 반하는 압수수색의 위법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대법 판례도 존재한다. 

논란을 인식한 듯 재판부도 선고에 앞서 이 부분을 언급했다. 다만 재판부는 “검찰의 1, 2차 압수수색 절차에 별다른 위법은 없었다”며 “직원에게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과실이 있긴 하지만, 증거능력을 배제할 만한 사유로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지난해 6월 1일 처음 공소가 제기된 후 공판준비기일 11회, 공판기일만 36회가 열렸다. 사건기록과 공판기록 등을 모두 합해 총 10만 페이지가 넘고, 세부적인 쟁점은 100여개에 이른다. 

이날 재판부는 판결을 마친 후 “실형 선고 7명은 여러 고민을 했으나 항소심에서의 증거인멸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법정에서 구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슴 아픈 일이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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