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와해 1심 재판부의 오판(誤判)... '포괄적 압색'은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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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조와해 1심 재판부의 오판(誤判)... '포괄적 압색'은 정당한가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12.2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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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 수집증거 배제' '영장주의 위반' 사례 셋 비교
재판부, '포괄적 압색 위법' 기존 판결과 상반된 판결
강원랜드 취업 특혜 재판부... "포괄적 압수수색 위법"
방산 납품비리 재판부 "영장에 없는 압수수색 위법"
학계 "수사기관 포괄적 압수수색 근절돼야... 엄격한 법해석 필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조와해 의혹' 1심 선고 결과를 보도한 KBS 뉴스. 사진=화면 캡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조와해 의혹' 1심 선고 결과를 보도한 KBS 뉴스. 사진=화면 캡처.

“검찰의 1, 2차 압수·수색 절차에 별다른 위법은 없었다. 직원에게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과실은 있으나 증거능력을 배제할 만한 사유로는 부족하다.” 
-12월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1심.

“컴퓨터 외장하드 및 업무서류철에 대한 국방부 조사본부의 압수는 (영장 기재) 혐의 사실과 관련 없는 ‘포괄적 압수’에 해당돼 위법하다.” 
-6월27일 서울고법 형사2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사건 항소심.

<사례 1>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해외소송비 대납 의혹을 수사하던 중 관련 자료 확보를 위해 삼성전자 본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수색 도중 검찰은 회사 주차장 인근서 차량에 탑승하려는 이 회사 직원을 발견했다.

검찰은 해당 직원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신체 및 차량 내부를 수색했다. 검찰은 그가 지니고 있던 컴퓨터 회장 하드를 압수, 그 안에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들의 노조 관련 문제를 다룬 문건을 발견했다.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이 회사 소속 임직원들을 노동조합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해당 직원에게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과실’은 인정하면서도, “증거능력을 배제할 사유로는 부족하다”며 변호인단 항변을 배척했다.

<사례 2> 
검찰은 지난해 3월26일 강원랜드 특혜 채용 의혹을 수사하던 중 피의자 A에 대한 혐의 입증을 위해 산업자원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압색 당시 법원이 발부한 영장 상 피의자는 A씨,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였다.

A씨는 자유한국당 소속 권성동 의원의 고교 동창이었다. 검찰 수사팀은 권 의원이 고교 동창 A씨를 강원랜드 사외이사로 지명하도록 산업부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의심했다.

검찰은 압색 현장에서 ‘업무인계서’라는 이름이 붙은 문건을 확보, 추가 수사를 거쳐 권 의원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올해 6월22일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영장 상 혐의와 관련이 없는 별건 압수수색 증거물은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한다"며 검찰의 공소를 기각했다.

<사례 3>
2014년 1월 국방부 조사본부는 방위사업청 소속 군인들이 A씨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제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조사본부는 15년 6월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A씨 등이 근무하는 방산업체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압색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본부는 외장하드 등 컴퓨터 저장매체와 업무수류철을 압수했다.

15년 9월, 국방부 조사본부와 별도로 기무사는 A씨가 'Y사업' 관련 군사기밀을 탐지·수집·누설한 혐의로 영장을 발부받아 A씨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기무사는 앞서 조사본부가 압수한 압수물에 A씨 작성 문서가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고 같은 해 10월 조사본부에 압수물 열람을 요청, 내용을 확인했다. 1개월 뒤인 그해 11월, 기무사는 A씨에 대한 새로운 영장을 발부받았다. 기무사는 위 방산업체에 국방부 조사본부 압수물을 돌려준 뒤, 미리 발부받은 영장으로 다시 문건을 압수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는 올해 6월27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방산업체 납품담당 직원 A씨 등 6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방부 조사본부의 첫 번째 압색과 기무사의 두 번째 압색을 각각 ‘영장 상 혐의와 관련이 없는 포괄적 압색’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위법한 압색으로 확보한 1차 증거는 물론이고 이에 터잡아 생성된 2차 증거 효력도 부인했다. 

위 3가지 사례는 올해 6월부터 12월 사이 나온,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의 ‘위법 수집 증거 배제 법칙’ 관련 판결이다.

3가지 사례 중 첫 번째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사건이고, 두 번째는 강원랜드 취업 특혜 의혹 권성동 의원 연루 사건이다. 세 번째는 방산업체 직원들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사건이다. 3가지 사안은 다음에서 보는 것처럼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위 사건들이 갖는 공통점은 ▲기소된 혐의와 다른 의혹 수사를 위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압수수색에 나섰다는 점  ▲영장 범위를 벗어난 포괄적 압색이 이뤄졌다는 점 ▲포괄적 압색을 통해 확보한 문건을 기초로 수사를 개시해 위 사건 피고인들을 기소했다는 점 ▲공판 전부터 ‘영장주의 위반’, ‘검찰의 별건 압색 및 별건 수사(구속)’가 논란이 됐다는 점 ▲‘위법 수집 증거 배제 법칙’과 ‘독수독과(毒樹毒果)이론’이 공판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는 점 등이다.

기초사실관계에서 드러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재판부 판단은 엇갈렸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사건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과실을 제외하고, “압색 과정에 증거의 효력을 부인할만한 위법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와 이를 토대로 작성한 공소사실을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여 주요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강원랜드 채용 특혜 의혹 권성동 의원 사건, 방위사업체 임직원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수사당국의 압수수색 절차가 위법했음을 지적하며,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방위사업체 임원 사건의 경우 1심은 물론이고 항소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위법 수집 증거 배제 법칙’을 엄격하게 적용했다는 특징이 있다.

◆영장 범위 벗어난 ‘포괄 압색’은 위법... 하급심 재판부 잇따라 무죄

권성동 의원 사건은 공판 전부터 ‘별건 압색, 별건 수사’ 논란을 초래했다. 검찰이 법원 발부 영장의 범위를 벗어나 ‘포괄적 압색’을 실시했고, 이를 통해 확보한 문건을 통해 수사에 착수했으므로 ‘위법 증거 수집 배제 법칙’에 반한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특히 재판부는 “검찰 제출 일부 증거물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점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영장 발부 사유인 범죄 혐의사실과 무관한 별개의 증거를 압수했을 경우, 이는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방산업체 임직원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사건 기록에 따르면, 압색 당시 방산업체 임원 A씨는 “외장하드는 팀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영장 혐의사실과 무관한 다른 팀원들의 전자정보도 포함돼 있다.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수사관은 이를 묵살했다. 수사관들은 관련 정보 선별을 위해 내용을 살펴보거나 키워드 검색 등의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은 영장 상 혐의와 관련 없는 컴퓨터 외장하드와 업무서류철 등을 포괄적 압수했다. 영장 범위를 벗어난 검찰의 포괄적 압색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기무사 영장집행에 대해서도 위법성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영장 상 압색 대상은 ‘A가 작성한 Y사업 관련 문건’인데, 기무사는 이것과 무관한 다른 방산물자 관련 문건까지 압수했다”며 “영장 범위를 벗어난 압수로 위법하다”고 밝혔다.

◆삼성 노조와해 의혹 1심 “포괄 압색, 증거능력 부인할 만큼 위법하지 않다”

이와 달리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사건 1심 재판부는 ‘위법 수집 증거 배제 법칙’ 적용에 인색했다.

재판부는 “압수수색과정에 증거 효력을 부인할 정도의 위법은 없었다”고 판시했으나, 사건 기록을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당시 검찰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범위를 벗어나 ‘포괄적 압색’을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이런 사실을 외면했다.

법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의혹 관련 검찰 수사팀에 영장을 내주면서 ‘압류 대상 물건’을 [2008년 1월1일부터 2011년 12월31일까지 생산된 문서]로 제한했다. 이런 사실은 당시 영장 기재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검찰이 압수한 ‘물건’에는 위 기간을 벗어나 생산된 문서 및 자료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인단은 공판과정에서 이 점을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항변을 배척하면서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다.

◆영장 제시 없이 이뤄진 포괄 압색... 삼성 노조 공판 재판부 “단순 과실”

검찰이 문제의 외장 하드를 압색하면서 그것이 개인 소유물인지 회사 소유물인지 여부 등을 확인하지 않은 점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검찰의 외장 하드 압색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그 물건이 영장 상 적시된 혐의와 관련이 있거나 압수할 수 있는 대상물이어야 한다.

사건 기록을 기준으로 할 때 검찰은 외장하드 압색과정에서 영장 자체를 제시하지 않았으며, 재판부도 이를 ‘과실’로 인정했다.

영장 자체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건 처음부터 대상 물건이 영장 적시 혐의와 관련이 있는지, 법원이 압수를 허용한 대상에 해당되는지 확인할 의사가 없었다는 강력한 반증이다. 이는 곧 검찰의 당시 압색이 총체적으로 위법한 상황 아래서 광범위하게 실시됐음을 시사한다.

영장의 제시도 없는 검찰 압수수색을 단순한 ‘과실’로 여긴 재판부 판단은, 항소심 공판에서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영장주의 무시한 압색, 민주주의 근간 훼손... 피해는 국민의 몫”

앞서 언급한 다른 두 사건 재판부가 검찰의 ‘포괄적 압색’을 영장주의에 반하는 위법행위로 판단한 사실과 비교하면, 삼성 노조와해 의혹 사건 재판부의 안일한 태도는 더욱 도드라진다.

위 3가지 사례에 대한 학계의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취재 중 만난 서울의 한 사립대 로스쿨 A교수는 “근대 사법의 대원칙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적법절차 원칙의 조화인데, 민주주의가 성숙한 단계로 나아갈수록 절차의 공정성이 더욱 중시된다”고 말했다. 그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의 효력을 배제하고 영장주의를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판사 출신 서울 사립대 법대 교수 B는 “영장의 한계를 벗어난 포괄적 압수수색을 지금처럼 폭넓게 용인하면 국민의 기본권이 그만큼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 한창 논의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검찰 개혁은 근본적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란 목적을 갖고 있다”며 “영장을 무시하는 압수수색 관행을 그대로 두면, 검찰 개혁도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편집자주]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과 ‘독수독과이론(毒樹毒果理論)’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은 강학상 이론이 아니라 우리 법률과 대법원이 인정한 소송법상의 기본 개념이다. 형사소송법은 2007년 법률 개정으로 308조의2를 신설, 위 원칙을 명문화했다.

형사소송법 308조의2 :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

대법원도 같은 해 11월,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을 인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제주도지사실에 대한 압수수색의 위법성을 다툰 이 사건 판결 이유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법리를 확립했다.

“절차 조항을 따르지 않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을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이며 확실한 대응책은 이를 통해 수집한 증거, 이를 기초로 획득한 2차 증거를 유죄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대법원 2007.11.15. 2007도3061호.

대법원은 위 판결을 통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능력을 부인한 것은 물론이고, 그 파생증거(2차적 증거)의 효력마저 부인하는 ‘독수독과이론’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독수독과(毒樹毒果, Fruit of the poisonous tree / Früchte des vergifteten Baumes)는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毒樹)에 터잡아 2차 증거(파생증거)를 얻었다면, 그 파생증거 역시 독과(毒果)이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법리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확립했으며 영미법계 국가는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수의 대륙법계 국가도 이 법리를 수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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