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cm 식칼' 보내 사장 협박... 삼성 협력사 폐업 사건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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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cm 식칼' 보내 사장 협박... 삼성 협력사 폐업 사건 재구성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09.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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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조와해 의혹 반환점... 공판 중 충격 안긴 '식칼 협박' 내막은?
협력사 사장에게 보내진 30cm 흉기 법정 공개... 방청석 "헉" 외마디
협력사 사장 김 씨 "노조원들에게 배신감 컸다" 울분 섞인 목소리로 진술
"노조 '막무가내식' 파업에도 경영 정상화 노력...가족들 심적 고통에 폐업"

[편집자주]

'삼성 노조와해 의혹 공판'이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다. <시장경제>는 삼성전자서비스 측이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노조설립 혹은 노조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위법행위를 한 사실이 있는지를 놓고 벌이는 검찰과 변호인단 사이 치열한 법정 공방을 밀착취재 해왔다. 

공판에서 공개된 내용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삼성전자서비스 이천협력사에서 벌어진 ‘살해협박’ 사건이다. 해당 협력사 사장의 캐비닛에서 ‘너 죽어’라는 섬뜩한 문구와 함께 발견된 흉기 사진이 공개됐을 때, 법정 안 방청석에서는 ‘헉’하는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왔다. 길이가 30cm쯤 되는 흉기는 보기에도 공포감을 자아냈다. 

해당 흉기를 누가 보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이천협력사 내부에서 사장과 노조원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때 흉기가 발겼됐다는 점에서 '노조원 가운데 누군가가 보냈을 것'이란 추론은 가능하다. 이 사건 변호인단은 이런 추론에 터잡아 노조 측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당시 노조원들이 이천협력사 사장과 그 가족에게 가한 인격모독과 명예훼손이 결국 협력사 폐업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이 그룹차원에서 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조 와해를 위해 ‘기획폐업’을 지시했다는 검찰 공소사실과 배치된다.  

본지는 이달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유영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사건 공판 피고인신문에 출석한 전(前) 삼성전자서비스 이천협력사 사장 김 모씨의 진술을 토대로 협력사 폐업 과정을 짚어봤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이천협력사 사장 사물함서 '너 죽어'라는 섬뜩한 문구와 함께 '식칼' 발견

“이천협력사에 처음 노조가 생긴 이후, 노조에 가입한 직원들이 이천 지역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일주일에 두 번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거짓 안보태고, 눈빛들이 바뀌고 서로 인사도 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재판부가 “칼로 협박할 정도로 노조와 감정이 안좋아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전 삼성전자서비스 이천협력사 사장 김 모씨가 답한 말이다. 

김 모씨가 이천협력사 사장으로 근무할 당시인 2013년 8월. 그의 개인 사물함에서 시퍼런 칼날이 서 있는 30cm 길이의 흉기가 발견됐다. 흉기 겉면은 신문지로 둘둘 말려 있었고, 검은색 글씨로 ‘너 죽어’라는 적혀 있었다. 

해당 사물함이 놓여있던 곳은 직원들의 탈의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당연히 CCTV가 존재할리 만무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살해협박을 받으면 겁이 덜컥 날 법도 할 텐데, 김 모씨는 재판에서 “겁이 나기보다는 ‘그런가보다’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김 모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부당노동행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삼성 측 지시를 받아, 협력사 노조 와해를 위해 ‘기획폐업’을 실행에 옮긴 혐의를 받는다. 

하지만 재판에서 드러난 이천협력사 폐업의 전모를 살펴보면, 김 씨의 폐업은 검찰 공소사실과 크게 다르다. 

발단은 2006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임 사장으로부터 이천협력사를 인수한 김 씨는 희망에 부풀어있었다. 전임 사장과 직원들 간 불화가 있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김 씨를 신임 사장으로 추천한 것도 직원들이었다. 그가 과거에 삼성전자서비스 이천센터에 근무한 경험이 있어 지역 사정에 밝았기 때문이었다. 

김 씨의 진술에 따르면, 이천협력사는 삼성전자서비스 전체 협력사 중에서도 상당히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이라고 한다. 자재 등을 납품하는 회사가 각각 다른 타 지역 과 달리, 이천협력사는 삼성전자서비스가 운영하는 이천센터 소속이었다. 비용지출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경영 수완만 있다면 얼마든지 흑자를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천협력사는 전체 협력사 중 중위권의 준수한 실적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2013년 7월 이천협력사에 처음 노조가 생기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이천협력사 노조원 비율은 외근직 80%, 내근직 10% 정도였다. 문제는 오랜 경험을 가진 숙련자 대부분이 노조원으로 가입했다는 것이다. 

지난 공판 증인으로 출석한 전 이천협력사 직원의 말에 따르면, 노조원들은 일주일에 3~4번 파업 투쟁에 나섰다. 미리 사장에게 파업을 예고하지 않은 ‘시간제’ 파업이 많았다. 이 때문에 비노조원들의 업무가 가중됐고, 직원 간 갈등도 심화됐다. 

문제는 벌어진 파업들 중 상당수가 이천협력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점이었다. 민노총 지시에 의해 노조가 없는 타 지역 협력사로 ‘지원 투쟁’을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노조원들은 사장인 김 씨에게 파업의 목적이나 요구조건을 밝히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씨는 노조에 가입한 직원들을 달래가며 회사 경영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 예로, 김 씨는 ‘최저기본급’을 도입해 일감이 별로 없는 비수기에도 일정 수준의 월급을 보장했다. 일반적으로 수리 1건 당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수수료를 지급받게 되는데, 근무시간이나 수리건수와는 상관없이 기본급을 지급하는 제도는 타 지역 협력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였다. 

김 씨는 기본급으로 2013년에는 180만원, 2014년은 250만원을 각각 약속했다. 별도의 계약서를 쓰지 않고 직원들과 구두로 약속한 것이었지만 사장인 김 씨는 2013년 기본급에 대해선 성실히 이행했다. 이천협력사가 2013년 직원들에게 지급한 ‘최저기본급’은 당시 최저임금법에서 규정한 액수인 100여만 원 보다 약 1.8배 많은 액수였다. 

그러나 2014년에 이르러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노조의 파업이 가속화되면서 직원들의 근무지 무단이탈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은 악화일로를 걸었고, 고객들로부터 불만이 속출했다. 

김 씨는 “노조가 설립된 이후, 노조원들의 잦은 근무지 이탈로 밀려드는 수리를 처리하지 못하고 매출 자체도 떨어졌다”며 “2014년에 주기로 한 250만원 기본급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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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 협력사 사장의 가족들에게까지 '심적 고통' 안겨… "폐업 결심 굳히게 된 계기"

김 씨는 노조원들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심지어 노조원 간부 중에는 김 씨가 직접 고용한 직원들도 몇몇 있었다. 그들은 어려울 때 김 씨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파업에 대해선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한다. 

공판 진술에서 김 씨는 “이천협력사를 인수할 당시, 직원들이 과거에 상처가 많다는 것을 알고 각별하게 생각했다”며 “노조 분회장은 예전에 일하다가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간 직원인데 돈을 다 잃고 이천에서 실직자로 있다는 말을 듣고 제가 직접 고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 대의원으로 있던 직원도 원래 분당 협력사에서 근무하다가 전세값이 너무 비싸다며 이천에서 일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 고용했다”며 “이천협력사로 온 이후 ‘분당보다 훨씬 처우가 좋다’면서 분당협력사 직원들에게 소문을 내, 제가 ‘그러지 말라’고 말리기도 했던 직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들은 노조에 가입한 이후, 날이 갈수록 근무 태도가 나빠졌다고 한다. 김 씨가 폐업을 결심한 것도 파업 일변도의 투쟁만 계속하는 노조에 대한 실망감이 크게 작용했다.

김 씨는 진술에서 “2014년 1월 아침에 출근을 했더니 저와 업무지원팀장, 비노조 직원 2명 등 모두 4명밖에 없었다”며 “그날 출근한 직원들과 청소하면서 폐업 의사를 처음 밝혔다”고 했다. 

이러한 사실이 전해지자, 노조원들은 사장인 김 씨를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김 씨는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으로 가족들이 심적 고통을 겪은 경험을 울먹이며 털어놨다. 

김 씨는 재판에서 공개된 현수막 사진을 보고 참던 울음을 터뜨렸다. 해당 현수막은 이천협력사 노조가 김 씨의 딸이 다니던 중학교 옆 통학로에 걸어둔 것이다. 현수막에는 김 사장의 실명을 조롱하는 ‘바지사장 김O죄 물러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현수막을 보고 울분섞인 목소리로 진술을 이어가던 김 씨는 재판부에 “죄송하다”며 감정을 추스린 뒤, 말을 이어 나갔다. 그는 “2014년 2월에 딸이 다니던 중학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상담 연락이 와, 아내가 학교로 간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김 씨는 “아내가 면담을 다녀오더니 제 앞에서 울기 시작해서 왜 우는지를 물었는데, 딸이 수업시간에 집중도 못하고 딴 생각에만 잠겨 창밖만 멍 하니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무엇을 보고 있는지 담임선생님이 가까이 가서 보니까 책상 자리에서 현수막이 보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생각해 재계약을 못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며 “무엇보다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컸다”고 덧붙였다.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신변의 위협이 가해질 우려 때문에 결국 삼성전자서비스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폐업에 이르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편, 이 사건 공판기일은 피고인 신문절차를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일주일에 2번씩 열리고 있다. 다음 공판은 10월 1일과 4일 각각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417호 대법정에서 속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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