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 돈 삼성 공판... '노조와해 지시' 증거 없이 공방만 가열
상태바
반환점 돈 삼성 공판... '노조와해 지시' 증거 없이 공방만 가열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09.04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성노조 와해 의혹 25차 공판... 정금용 삼성물산 부사장 증인신문
"중요사항, 구두 보고 받아... 실무직원들이 만든 문건 본 적 없어"
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 편의 위해 리스 차량 제공... 노조원 수 감소
검찰, 그룹 차원 조직적 개입 주장... 입증할 증언은 나오지 않아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사진= 시장경제신문 DB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사진= 시장경제신문 DB

검찰이 '삼성 노조와해 의혹' 핵심 증거로 회사 직원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노조관련 전략 문건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해당 문건이 삼성그룹 옛 미래전략실 임원에게까지 보고됐다는 구체적 증거나 증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여기에 더해, 문제가 된 문건들이 실무자 선에서 아이디어를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는 변호인측 주장에 힘을 싣는 정황이 재판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3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현직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임직원 32명에 대한 25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는 2014년 당시 삼성그룹 미전실 인사팀장이었던 정금용 부사장(現삼성물산 대표이사)이 피고인 신분으로 증언대에 섰다. 인사팀장은 삼성그룹 내에서 16개 인사지원그룹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검찰은 정 부사장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에 대한 노조 동향을 보고받고, 노조와해를 의미하는 이른바 ‘그린화작업’을 지시한 인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 부사장은 검찰의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룹 미래전략실 인사팀 입장에서 볼 때, 계열사의 협력사 노조 이슈는 업무범위도 아닐뿐더러, 원칙적으로 관심을 가질만한 사안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정 부사장은 당시 정치권에서 제기한 불법파견 의혹와 함께, 노조원이 자살하는 사건 등이 연달아 발생해 상황을 유심히 지켜본 것은 맞다고 해명했다. 

이에 검찰은 삼성전자 압수수색 과정에서 입수한 ‘인사그룹 업무보고’, ‘대외현안협의회 자료’ 등의 문건을 제시했다. 이 문건에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이슈 대응경과’라는 항목이 첫 번째 순서로 기재돼 있다. 

검찰은 “이 문건에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와 노조가입 현황 등이 기재돼 있다”며 “협력사 노조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판단했던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정 부사장은 “해당 문건을 보고받은 기억이 없고, 검찰 조사 과정에서 처음 봤다”며 “업무를 위한 주요 회의가 수원과 기흥 등에서 열려 일정이 촉박했던 만큼, 문서로 보고받을 시간이 없었고, 주요 이슈가 있을 경우 구두로 10분 정도 짧게 보고 받았다”고 진술했다. 

아울러 정 부사장은 “제가 인사팀장으로 부임한 후 노조와 관련해 보고받은 것은 당시 불법파견 소송이 진행 중에 있다는 것과 노사협상 진행상황, 협력사 수리기사 들이 가진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리스차량 제공 등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검찰이 “인사팀장인 본인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든 문건인데, 왜 보고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정 부사장은 “실무자들은 모든 경우에 대비해 문건을 작성해두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며 “저는 노조에 관해 특별히 전문 지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지시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고 답했다. 

‘비노조 경영’에 대해서도 언급이 이어졌다. 비노조 경영은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노조를 탄압하는 개념과 달리, 회사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노사 상생을 추구하는 경영기법이다. 

정 부사장은 “삼성이 비노조 경영을 추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면서 “선진국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조직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불합리한 요소를 개선한다”고 설명했다. 노조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지를 묻는 검찰의 질문에 정 부사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실제로 당시 일부 계열사에도 이미 노조가 있었다”고 답했다. 

검찰은 문건 내용을 근거로 삼성이 협력사들에 대한 통폐합을 통해 노조 세력을 약화시키려 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정 부사장은 “각지의 협력사가 영세해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협력사의 조직관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검토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협력사를 통합하는 문제는 제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지시하거나 알려줄 수 없었다”며 “협력사 중대형화를 추진한다는 내용만 들어서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피고인 신문이 종료된 후 진행된 반대신문에서 변호인단은 정 부사장의 검찰조서 내용을 제시했다. 이 조서에 따르면, 정 부사장은 ‘그린화’라는 용어가 ‘노조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변호인단은 해당 진술의 의미를 물었고, 이에 정 부사장은 “협력사 수리기사들이 외근을 나갈 때 자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 많았는데, 삼성전자서비스에서 리스차량을 제공하자 실제로 노조원이 감소했다”며 “(그린화는) 직원들의 불만과 불합리한 사내 제도를 개선하는 노력으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나아가 정 부사장은 “인사팀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왜 이렇게 임금체계가 복잡하고 불합리한지 지적한 적이 있었다”며 “협력사에 대한 비용지급에 있어 불투명한 부분도 있어 이 부분을 바로잡는데 관심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검찰과 변호인단의 신문이 마무리 된 후, 재판부는 정 부사장에게 “삼성그룹 미전실에서 협력사의 노조 문제까지 챙긴 것은 무슨 이유인가”라고 물었다. 

정 부사장은 “당시 불법파견 이슈와 노조원 자살,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의 대규모 노조집회 등이 발생했다”며 “조직 내 불합리가 없었다면 애초부터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생활임금체계 등을 개선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임원들에게 불법파견 소송 등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달라고 한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협력사 이슈에 대해 지시를 내린 적은 없다”며 “(노조문제와) 엮이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만 말려들어가는 상황이 계속돼 어쩔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말을 맺었다. 

한편, 이 사건 26차 공판은 이달 10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17호 법정에서 속행될 예정이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