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檢 칼끝, 돌연 '삼성합병'으로... 별건수사 구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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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회계' 檢 칼끝, 돌연 '삼성합병'으로... 별건수사 구태 우려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9.2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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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중앙지검 특수4부장, 국민연금-물산 동시 압수수색
삼성 합병 이슈, 분식회계 의혹과 직접 연결 어려워 의견 분분
참여연대, 삼성家·물산 전현직 대표·국민연금 이사 등 고발
분식회계 外 다른 혐의로 수사 및 기소 가능성 배제 못해
2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삼바 분식회계 의혹 수사팀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연합뉴스TV 화면 캡처.
2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삼바 분식회계 의혹 수사팀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지난달 초 중간 간부급 인사를 계기로 수장이 바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검찰 수사팀이 약 한달여간의 침묵을 깨고 대규모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이른바 ‘별건 수사 및 기소’ 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이복현(사법연수원 32기)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은 23일 오전 전북 전주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와 서울 강동구 소재 삼성물산 플랜트부분 사무실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관련자료를 확보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전임 송경호(연수원 29기) 중앙지검 3차장에 이어 수사팀을 이끌게 된 이복현 부장의 첫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이복현 부장은 2006년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장으로 있던 박영수(연수원 10기) 특별검사의 눈에 띄어 현대차 비자금,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론스타) 사건 특별수사팀에 합류한 이력이 있다. 중앙지검 3차장을 거쳐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한 한동훈(연수원 27기) 검사장도 같은 수사팀 멤버였다.

이 부장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팀에 차출되면서 윤석열(연수원 23기) 검찰총장과도 인연을 맺었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인 이 부장은 검찰 안팎에서 ‘리틀 윤석열’이란 평가를 받는다. 수사를 시작한 이상 윗선이 누구든 개의치 않으며, 외압 혹은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점에서 윤 총장과 닮았다. 반면 심증에 얽매여 혐의가 있는지 살피기보다는, 본인이 설정한 혐의에 사건을 끼워 맞추려 한다는 비판도 따른다.

검찰이 재배당을 통해 삼바 사건을 기존 특수2부에서 특수4부로 이관한 배경을 놓고, 서초동 법조타운 주변에서는 ‘삼바 사건 조기 종결을 위한 승부수’라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지난해 12월 대대적인 압수수색 이후 분식회계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검찰이, 회계에 밝은 이 부장에게 수사 마무리를 맡겼다는 것. 

실제 검찰은 삼바와 그 관계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전자 임직원 8명을 증거인멸 및 교사 혐의로 구속하는 성과를 올렸으나 ‘본죄’인 분식회계 혐의 규명에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간접적인 정황증거 역시 충분치 않다. 삼성 합병을 분식회계와 연결지으려는 시도는 ‘시점의 불일치’와 같은 내재적 모순이 드러나면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새로 투입된 이복현 부장이 국민연금과 삼성물산 압수수색을 선택한 점은 다소 의외다. 

◆분식회계와 관계성 약한 다른 혐의 수사 가능성... '별건수사' 우려도 

이복현 중앙지검 특수4부장. 사진=YTN뉴스 캡처

수사팀이 압수수색 대상으로 위 두 곳을 특정했다는 것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정조준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2015년 6월11일, 합병안 의결을 위한 주총을 앞두고 주주명부를 각각 확정했다. 위 날짜를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제일모직 주식 4.84%, 삼성물산 주식 11.21%를 가진 주요 주주였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일부 시민단체는 “삼바가 바이오젠과 약정한 콜옵션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면 삼바 최대 주주였던 제일모직의 부채 규모가 그만큼 커졌을 것이고, 국민연금이 두 회사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은 [삼성바이오가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대규모 분식회계를 했다]는 가정 아래, ‘콜옵션 공시 누락’과 ‘삼성 합병’을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

참여연대가 지난해 7월 검찰에 접수한 고발장에도 이런 내용이 담겼다. 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바라보는 검찰의 기본 시각도 참여연대의 그것과 거의 같다.

검찰 수사팀이 그리는 이 사건 흐름은 아래와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콜옵션 약정 은폐(공시 누락)-회계기준 변경-삼바 재무제표상 당기순이익 달성-삼바 대주주 제일모직 실적 개선-모직:물산 합병비율 산정-이 부회장 그룹 지배력 강화]

이복현 부장이 이끄는 수사팀은 당분간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경위를 들여다보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과정에서 분식회계와 관계없이, 합병 및 기관투자 관련 현행 법령을 위반한 정황이 있는지 여부를 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른바 ‘별건 수사 및 기소’로 시간을 벌면서 관계자에 대한 줄소환 및 밤샘조사 등을 통해 출구를 찾는 방식은 특수통 검사들이 즐겨 쓰는 수사기법이다.

◆이재용 부회장 1심 재판부, 합병 관련 특검 공소사실 대부분 배척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합병비율 산정’ 및 ‘주총 의결’이었다. 양사 합병비율(1:0.35)이 결정된 시점은 2015년 5월26일, 양사 주총이 합병안을 승인한 시점은 그해 7월17일이다.

이재용 부회장 1심 사건 재판부는 ‘모직-물산 합병’ 이슈에 대해 박영수 특검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삼성 합병’을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하나의 구성요소(포괄적 현안)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면서도, [박 전 대통령 내지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국민연금이, 불리하게 산정된 양사간 합병비율에도 불구하고 찬성표를 던졌다]는 특검의 주장을 부인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 2차 독대는 7월25일, 두 기업 주주총회가 합병을 승인한 시점은 7월17일”이라며 [시점 불일치]의 모순을 지적하기도 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간 합병’을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하나의 구성요소(포괄적 현안)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삼성 합병’을 분식회계 의혹과 연결하려는 검찰 수사팀의 논리는 매끄럽지 못하다. 

관련기사 : 
검언(檢言)유착, 낯뜨거운 삼성바이오 보도
(위 기사 중 ‘콜옵션 공시 누락’ 및 ‘모직-물산 합병’ 관련 부분 참조.)

검찰에 출석하는 삼성바이오 임원들. 사진=이기륭 기자
검찰에 출석하는 삼성바이오 임원들. 사진=이기륭 기자

◆별건 수사 여건 조성... 참여연대 “이 부회장, 물산 전현직 대표이사 등 고발”

검찰은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콜옵션 약정 은폐(공시 누락)]를 분식회계의 출발점으로 보고 이를 ‘삼성 합병 이슈’에 붙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나 논리적으로 그 간극을 좁히기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은 역설적으로 ‘별건 수사 및 기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난이도로 본다면, 분식회계 혐의를 입증하는 것보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경위를 샅샅이 훑어 관계자들을 업무상 배임이나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주가조작) 등 혐의로 수사하는 것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별건 수사 및 기소를 위한 ‘멍석’도 이미 깔려 있다.

참여연대는 2016년 6월16일 삼성물산 전현직 대표이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현직 임직원 등을 업무상 배임 및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피고발인 가운데는 이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등 삼성家 3남매의 이름도 포함됐다.

참여연대는 “삼성물산 전현직 대표이사는 구 삼성물산 주가를 낮출 목적으로 사업실적을 고의 은닉·축소하는 등 위법을 저질렀으며 그 결과 왜곡된 합병비율이 정해졌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 기금이사 등 공단 임직원들에 대해서는 “합병비율이 적정하지 않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합병에 찬성함으로써 공단에 수백억원의 손해를 야기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팀이 ‘합병 이슈’에 특정해 별건 수사 및 기소에 나선다면, 검찰의 수사방식을 둘러싼 적정성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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