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파기심서 "최서원 판결 보면"... 본질 흐린 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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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파기심서 "최서원 판결 보면"... 본질 흐린 특검
  • 양원석 기자,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11.2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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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파기심 2차 공판... 특검 vs 변호인단 PT로 법리 다툼
특검, 최서원 판결 인용... "1심 무죄판단 부분까지 재심리"
변호인단 "특검, 대법 강요죄 부분 법리 편승...지나친 주장"
특검 "삼성, 처음부터 최서원 존재 알았을 것"
변호인단 "막연한 추론... 근거 내놓지 못해"
특검, 삼바 의혹 집중 제기... 예고된 쟁점화 시도
삼바 관련 특검 논리 '모순'... 회계전문가들 "분식회계 이유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전현직 삼성전자 임원에 대한 파기환송심 2차 공판이 진행된 가운데 검찰과 박영수 특검이 '최서원 판결'과 '추론'에 기대, 이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물론 1심 재판부조차 무죄로 판단한 부분까지 재심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검찰은 '최서원 사건' 대법 전원합의체가 강요죄 부분 무죄를 선고한 점에 근거해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 순환출자고리 해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삼성바이오 회계 의혹 등을 '개별적 승계작업'으로 열거하며 "당심 대법원이 포괄적 부정한 청탁을 인정한만큼 이들 개별 현안에 대한 판단도 같아야 한다"고 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 사이 관계를 기초로 최씨에 대한 강요죄 성립을 부정한 것은, 강요 범죄의 구성요건 법리 해석의 문제"라며, "특검이 여기에 편승해 이 사건 본질과 뇌물의 성격마저 재단하려는 행태는 지나치다"고 반박했다.

특히 변호인단은 “상징성에 비춰보더라도 최서원이 아니라 이 부회장 혹은 박 전 대통령 사건 뇌물 혐의 판시를 통해 정면으로 사건의 본질을 다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최서원 사건을 통해서라도 이 사건 본질과 전말을 밝히고자 했다면 강요죄가 아니라 뇌물 혐의 판단을 통해 관련 내용을 설시(說示)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변호인단은 “결론적으로 최서원 사건 판결 중 강요죄 부분 기재는 범죄 불성립의 이유를 일반법리에 맞춰 풀어쓴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22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 심리로 열린 파기환송심 두 번째 공판에서 특검과 변호인단은 각각 프레젠테이션을 이용해 입장을 밝혔다. 

특검은 공소사실을 크게 승마지원과 동계영재센터지원, 재단지원 등 3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먼저, 특검은 삼성과 최서원(최순실)씨 사이에 액수 미상의 ‘뇌물공여 약속’이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뇌물공여 약속' 부분은 대법원도 무죄로 판단했으나 특검은 유죄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동계영재센터 지원의 경우, 대법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승계를 위해 '포괄적 부정한 청탁'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특검은 여기서 더 나아가 대법원에서 인정된 포괄현안 외에도 개별현안까지 인정해 유무죄 판단을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검찰이 수사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도 꺼내 들었다. 앞서 특검은 이 사건 파기심 첫 번째 공판에서 "검찰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를 수사중인데 관련 증거를 제출하겠다"고 밝혀 이 사건을 쟁점화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특검은 2015년 이뤄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작업의 하나로 보고, 합병 편의를 목적으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를 모의했다는 기본 시각을 갖고 있다. 이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제일모직의 가치가 삼성물산보다 더 커야 했고, 이를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 하여금 분식회계를 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특검의 이 같은 주장은 큰 모순을 안고 있다. 두 회사의 합병비율이 자본시장법에 따라 적법하게 산정됐음은 법원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낸 ‘삼성물산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엘리엇이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제기한 ‘합병비율 불공정’ 주장을 “근거가 없다”며 일축했다. 

“합병비율이 불공정했다”는 특검의 주장은 삼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 등에게 ‘부정청탁’ 했을 것이라는 ‘추론’으로 이어진다. 무리한 합병을 완전히 마무리 짓기 위해 부정청탁이 필요했고,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독대를 통해 얘기가 오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안종범 전 청와대경제수석이 독대 내용을 적었다는 이른바 ‘안종범 수첩’은 대법원에서도 “간접증거로 쓸 수 없다”고 했던 만큼, 증거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특검의 주장은 한계를 지닌다. 

실제로 공판에서 특검은 '삼성의 경영승계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인식', '이 부회장이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주장' 관련돼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특검은 시종일관 ‘추론’에 의지해 논리를 전개했다. 특검도 추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안종범 수첩'을 근거를 제시했으나, 앞서 대법 전원합의체는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사진=시장경제신문DB
사진=시장경제신문DB

◆합병 사후 정당성 확보위해 분식했다? 회계전문가 "자본잠식 가능성 제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2015년 5월부터 9월 사이 이뤄졌다. 

합병에 있어 가장 중요한 비율 산정은 같은 해 5월 결정됐으며, 두 회사가 주주총회를 거쳐 합병을 의결한 것은 그해 7월이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 대부분은 당시 주총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두 회사의 합병절차는 같은 해 9월 등기가 마무리되면서 종료됐다.

반면 삼성바이오의 2015년 재무제표는 이듬해인 2016년 2~3월 작성됐다. 마지막 등기절차를 기준 시점으로 잡아도 삼성바이오 재무제표가 작성된 시기는 두 회사의 합병보다 5~6개월 뒤이다.

특검의 주장처럼 두 회사 합병의 편의를 위해 삼성바이오가 고의로 재무제표를 조작(분식회계)한 것이라면, 시점이 ‘역전’되는 모순을 설명할 길이 없다.

특검은 이런 모순 때문에 ‘합병의 사후 정당성 확보를 위해 나중에 재무제표를 조작했다’는 논리를 폈다. ‘합병의 사후 정당성 확보’를 목적으로 삼성바이오가 4조5천억원 규모의 대규모 분식회계에 나섰다는 특검 주장은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신뢰하기 어렵다.

박영수 특검과 검찰의 기본 시각은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참여연대의 그것과 매우 닮았다. 합병 전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 지분 45.7%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자연스럽게 삼바의 실적은 제일모직의 재무제표에 반영됐다.

참여연대는 “제일모직이 합병비율 산정에 있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기관투자자들이 합병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도록 자회사인 삼바 재무제표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분식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영수 특검과 검찰 삼바 수사팀은 이런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여 '삼바가 바이오젠과 약정한 콜옵션의 부채 계상을 회피하기 위해 고의 분식회계를 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부분의 회계전문가들은 검찰의 이런 시각에 강한 의문을 표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는 2015년 재무제표를 작성하면서 지분회계를 적용했다. 그 결과 ‘에피스 보유지분’(기업가치)을 시가로 산정, 4조5350억원을 자산에 반영했다. 동시에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도 시가로 평가해 1조8,200억원을 부채에 반영했다.

부채로 계상한 콜옵션 평가액보다 자산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는 2015년 재무제표상 ‘1회성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분회계를 적용하면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에피스 보유지분을 최대 50%-1주까지 높일 수 있는 권리)은 ‘부채’(평가손)로, 삼바가 보유한 에피스 주식은 ‘자산’(평가익)으로 각각 산정해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 이때 기준이 되는 가격은 장부가격이 아닌 공정가격(시가)이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은 [지분회계를 적용하는 경우 콜옵션의 평가손(부채)과 평가익(자산)을 모두 공정가치(시장가치)로 산정해 재무제표에 반영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만약 지분회계를 적용하면서 콜옵션 부채만을 시가로 평가하고, 평가익(자산)은 장부가(취득원가)로 산정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회계 부정’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콜옵션 평가액보다 자산가치가 월등히 높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자본잠식’에 빠질 수 없다는 것이 회계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자본잠식 우려가 없으므로 ‘합병의 사후 정당성 확보를 목적으로 삼바가 재무제표를 조작했을 것’이란 특검 및 검찰의 추론은 설득력을 잃는다.

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콜옵션 부채를 공정가격(시장가격)으로 산정한 것이 맞는다면 기업가치도 시장가격으로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변호인단 "승마지원, 최서원 겁박에 의해 이뤄진 것... 부정 청탁 의도 없었다"

변호인단은 특검이 주장한 ‘뇌물공여 약속’ 부분과 관련해 “이미 대법에서 무죄로 인정한 만큼, 확정된 것으로 본다”며 검찰 측 의견을 일축했다. 승마지원 부분과 관련해선 “삼성은 자발적으로 최서원에게 용역대금과 마필을 지원하지 않았다”며 “제공된 마필의 최초 소유권은 삼성에게 있었지만, 최서원의 겁박으로 명의가 이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아시안게임과 세계승마대회를 준비하면서, 마필 소유권을 단독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2차 독대에서 “승마지원이 많이 부족한데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느냐”고 질책했고, 최서원도 삼성이 가진 마필 소유권과 관련해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겁박하자, 결국 삼성도 마필 소유권 이전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동계영재센터 지원에 대해선 “박 전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유치에 도움이 될 듯하니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이뤄진 것”이라며 “삼성은 최서원이 동계영재센터 설립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시엔 알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변호인단은 “사후적 관점에서 대가성 인식 여부를 판단해선 안될 것”이라며 “특검은 삼성이 처음부터 최서원의 실체를 알았을 것이라고 의심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계영재센터 지원은 사실상 거절할 수 없는 ‘대통령의 요구’ 때문이었다는 것이 변호인단 항변의 요지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요구를, 기업이 자율적으로 유불리를 따져 결정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 

변호인단은 다음달 6일 열릴 양형심리 공판 기일에서 손경식 CJ그룹 회장과 김화진 서울대 교수, 미국 코닝사 웬델 윅스 회장 등 3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와 국내·외 전문경영인들의 증언을 통해 삼성의 당시 판단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재판부에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 변론이 종결된 이후 증인 채택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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