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판결' 해석의 차이가 이재용 양형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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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판결' 해석의 차이가 이재용 양형 가른다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11.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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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파기환송심 분석... 양형 변수는 '신동빈 케이스'
신동빈 2심·상고심-이재용 2심, ‘수동적 뇌물’ 판단 일치
'승계작업·부정한 청탁', '뇌물 성격'... 양형 기일 핵심 쟁점
상고심, 판시 이유에서 '삼바 분식회계 의혹' 제외.. 특검은 쟁점화 시도 전망
지난달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1회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기륭 기자.
지난달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1회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이기륭 기자.

“이 사건 쟁점은 대법원 판결을 통해 상당 부분 정리됐다. (때문에) 양형(심리) 기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유무죄 심리 기일에 필요한 증거는 파기환송심 취지에 적합한 것으로 신청해 달라.” 

-10월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1차 공판, 정준영 부장판사.

지난달 2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주목할만한 장면은 크게 네 부분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이 사건 공판을 ‘유무죄 심리 기일’과 ‘공판 심리 기일’로 나눠 진행키로 한 점이고 두 번째는 ‘양형(심리) 기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 부장판사의 당부다. 세 번째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을 파기심에서 쟁점화하겠다는 양재식 특검보의 법정 발언이며. 네 번째는 ‘피고인 이재용에 대한 재판장의 질책과 조언’이다.

첫 공판이 끝난 뒤 대부분 언론이 주목한 것은 이 부회장에 대한 정 부장판사의 ‘훈계’였다. 언론은 정 부장판사 발언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그 배경과 의미를 파악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정 부장판사 발언에 대해서는 공판 결과에 대한 암시라는 시각도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그가 스스로 밝혔듯 이 사건 공판 진행 및 결과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더 많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이 사건 공판 첫 기일에 재판장이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유다.

그보다는 재판부가 이 사건 진행을 ‘유무죄’ 및 ‘양형’의 두 갈래로 나누기로 한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의 취지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피고인의 방어권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검과 변호인단이 첫 공판에서 밝힌 입증계획을 고려하면 앞으로 공판은 양형심리를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변호인단은 “삼성이 최순실씨 모녀에게 지원한 마필 3마리 관련 뇌물 혐의를 다투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혀 유무죄 심리 기일에서 이 점을 집중적으로 다루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다만 변호인단은 “대법원이 승계작업 관련 포괄적 판단을 했고, 부정한 청탁도 포괄적 범위 안에서 규범적으로 판단했다”며 “결국 양형심리가 가장 중요하고 (뇌물의 성격에 관한) 재판 본질을 전체 사건 흐름 속에서 되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검 역시 “(유무죄 판단에 관한) 심리 범위는 마필 3마리와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관련 부정 청탁 여부 등 두 가지”라며 “(유무죄 심리) 공판 절차는 여기에 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발언을 살피면 유무죄 심리 기일에서 특검 및 변호인단이 다툴 쟁점은 ‘마필 3마리의 소유권 이전 여부’임을 알 수 있다. 특검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도 유무죄 심리 기일에 집중적으로 다루겠다는 의사를 드러냈으나,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대법 전원합의체, 삼바 분식회계 의혹 관련 일체 언급 없어

박영수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사진=시장경제DB.
박영수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사진=시장경제DB.

이 점에 대해서는 “특검이 자기모순에 빠졌다”는 비판이 있다. 파기심 공판 심리 범위를 마필 소유권 이전 및 부정한 청탁에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범위를 벗어난 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쟁점화하겠다는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대규모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만 1년이 넘게 진행 중인 삼바 분식회계 의혹 수사는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이복현 중앙지검 특수4부장이 수사팀 지휘를 새로 맡아 삼성물산 플랜트 부문 등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벌였으나 분식회계 혐의를 입증할 직접적 증거 확보에는 이르지 못했다.

분식회계 혐의 입증을 위해서는 회사 측이 외부감사인(회계법인)과 공모하거나 외부감사인 소속 회계사들을 기망했음을 규명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매출을 가공하거나 수주 계약서를 위조하거나 기존 부채나 비용을 축소할 목적으로 회계서류 등을 조작한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

검찰은 수사 착수 1년이 넘도록 이런 의혹을 입증할 스모킹건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검찰이 분식회계의 유력한 정황증거로 제시한 오로라프로젝트 관련 자료는 삼성 측 회계 변경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졌다.

실제 검찰은 지난달 마무리된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혐의 공판에서 ‘짐작’에 기댄 추론만을 앞세워, 분식회계 수사의 기초가 부실하다는 한계를 노출했다.

무엇보다 대법 전원합의체는 삼바 분식회계 이슈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전원합의체는 포괄적 승계작업 및 부정한 청탁의 존재를 긍정하면서도 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서는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이 점은 이 사건 하급심도 마찬가지이다.

특검은 삼바 분식회계 이슈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의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삼바 이슈를 개별적 승계작업의 하나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배척했다.

원심에 이어 대법 전원합의체가 삼바 이슈를 판시이유에서 제외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논점 하나를 제공한다. 이는 대법원이 삼바 이슈와 이 부회장 뇌물 등 혐의 사건 사이의 관계성을 부인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특검이 유무죄 심리 과정에서 삼바 의혹을 제기한다면, “파기심의 심리 범위를 벗어난 악의적 여론 몰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양형 기일 주요 변수, 변호인단 증인 신청 여부

유무죄 심리 기일이 마필 3마리 소유권 이전 여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양형심리 최대 쟁점은 ‘승계작업 및 부정한 청탁’의 유무이다.

승계작업 및 부정한 청탁 인정 여부는 변호인단의 설명대로 이 사건 본질이자 뇌물의 성격을 가늠하는 결정적 기준이다.

8월29일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포괄적 승계작업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으나, 뇌물 성격에 대한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변호인단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건 기록을 들여다본 뒤 증인을 신청하겠다고 밝힌 점도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기소 사실관계 같지만, 대법 판단 상이한 두 사건

지난해 10월 서울고법의 집행유예 선고로 석방돼 구치소를 나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지난해 10월 서울고법의 집행유예 선고 직후 구치소를 나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이기륭 기자.

신동빈 회장 뇌물 등 혐의 사건은,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과정이 이 부회장 사건과 흡사하다. 구체적 사실관계에서는 차이점이 있으나 증뢰의 원인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신 회장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성격을 ‘대통령의 겁박에 의한 수동적 뇌물범죄’로 정의했다. 이 부회장 사건 항소심 재판부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같다. 

대법원의 판단은 극명하게 갈렸다.

이 부회장 사건 상고심을 심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포괄적 승계작업의 존재와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고, 제3자뇌물죄(동계영재스포츠센터 후원금 16억2800여만원) 부분을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했다. 전원합의체가 마필 3마리의 소유권 이전도 인정하면서, 이 부회장 증뢰액은 36억원에서 86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 회장 사건 상고심 재판부(대법원 3부, 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달 17일 특검과 피고인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박 전 대통령의 독대 및 강요라는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해 대법원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두 기업 총수의 희비도 교차했다. 신 회장은 상고 기각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이 확정돼 경영에 안정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0월 신 회장 사건을 심리한 서올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대통령이 먼저 뇌물을 요구해 수동적으로 응한 점이 인정된다”며 “의사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뇌물 공여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기는 어렵다”고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신 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신 회장 사건 상고심 재판부인 대법원3부는 “신 회장의 제3자 뇌물공여나 그룹 경영 비리 관련 원심 판단은 적법하다. 기존 판례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했다.

◆이 부회장 사건 주심 조희대 대법관, 신 회장 사건 주심 이동원 대법관... “다수의견 반대”

신 회장 사건 상고심 주심을 맡은 이동원 대법관(사법연수원 17기)은 조희대(연수원 13기) 안철상(연수원 15기) 대법관과 함께, 이재용 부회장 사건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에 반대해 ‘소수의견’을 냈다.

위 3인의 대법관은 이 부회장 사건 다수의견이 안고 있는 법리적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들 대법관은 “대통령에 대한 제3자 뇌물수수 사건에서 다수의견의 법리를 적용하면 손쉽게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을 인정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제3자 뇌물수수죄의 구성요건인 부정한 청탁이 형해화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다수의견에 따르면 제3자뇌물죄 처벌범위는 사실상 무한대로 확장된다”며 “공소사실 중 부정한 청탁의 내용은 아예 특정될 필요가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3인의 대법관은 “다수의견은 단순뇌물죄에 적용할 판례를 엉뚱하게 끌어와 제3자뇌물죄의 처벌범위를 부당하게 확장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덧붙였다.

위 조희대 대법관은 이 부회장 사건 전원합의체 재판부 주심이다.

두 기업 총수의 뇌물 등 혐의 사건 상고심 주심 대법관은 ‘부정한 청탁’이란 사실관계 판단에 있어 사실상 같은 의견을 냈다.

◆수동적 뇌물, 대법원 양형기준상 ‘감경요소’

파기심 재판부가 이 사건 성격을 ‘수동적 뇌물공여’로 본다면, ‘양형’에 있어서 상고심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대법원 양형기준상 ‘수뢰자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감경요소이다. 양형기준은 법관들이 선고형을 정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기본 가이드라인이다.

뇌물죄에 있어서 대법원 양형기준이 정한 감경요소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될 자에 대한 증뢰 ▲수뢰자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 ▲약속 공여의 의사표시에 그친 경우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 없음 등이며, 가중요소는 △적극적 증뢰 △청탁내용이 불법하거나 부정한 업무집행과 관련된 경우 △피지휘자에 대한 교사 △업무관련성이 높은 경우 등이다.

위 기준을 이 부회장 사건에 적용하면, 양형 판단에 영향을 줄 가장 중요한 요소는 ‘뇌물의 성격’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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