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재판부 "인멸 증거가 뭔지 특정부터 하라" 檢에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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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재판부 "인멸 증거가 뭔지 특정부터 하라" 檢에 일침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09.0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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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분식회계 증거인멸 혐의 '4번째 공판준비기일' 열려
檢 “정황 자체가 증거인멸 증거” 辯 “관련성 못밝히면 죄 불성립”
通說은 '당해 증거의 본죄 관련성이 입증돼야 증거인멸죄 성립'
재판부 檢에 “인멸행위 무엇인지, 교사범 ‘누구’인지 정리할 것”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사진= 시장경제신문 DB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사진= 시장경제신문 DB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관련 증거인멸·교사 혐의에 대한 4번째 공판준비기일이 열렸지만, 검찰이 ‘인멸된 증거’를 특정하는데 실패하면서 재판이 공전됐다.

증거인멸범죄는 인멸된 증거가, ‘타인의 형사사건 혹은 징계사건’에 관한 것이어야 성립한다. 즉 ‘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 혹은 징계사건이며, 인멸된 증거는 ‘본죄’의 혐의 입증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인멸된 증거가 ‘본죄’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찰에게 있다. 만약 인멸된 증거가 ‘본죄’와 관련이 없거나, 그 관계성이 미미하다면 증거인멸죄는 성립하기 어렵다.

이 사건 본죄는 삼바 분식회계 의혹이므로, 검찰은 피고인들이 인멸했다는 증거가 분식회계와 관련이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인멸된 증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특정’은 ‘본죄와의 관계성 입증’을 위한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이 인멸된 증거에 대한 특정을 하지 못한다면 재판 공전은 불가피하다. 재판부가 한 차례 더 공판준비기일을 열기로 했지만, 검찰이 인멸된 증거의 특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소유지에 비상등이 켜진 모습이다. 

검찰은 자료를 삭제한 행위 자체가 증거인멸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반면, 변호인단은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유·무죄도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자료를 삭제한 것만으로는 죄를 물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소병석 부장판사)는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4차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피고인으로는 재경팀 소속 이 모 부사장과 김 모사업지원 TF부사장, 박모 부사장 등 8명이 모두 출석했다. 

이날 공판준비기일에서도 검찰과 변호인단은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유·무죄 여부가 아직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증거인멸 혐의 성립이 가능한지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단 간 날선 법리 공방이 벌어졌다. 

변호인단은 “자료를 삭제했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하지만 법률적으로 몇 가지 다툴 사항이 있다”면서 “사건의 증거에 한해서만 증거인멸 혐의가 적용되는 만큼,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증거인멸을 했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달라”고 검찰을 압박했다.

검찰은 “본 사건인 외부감사에관한법률(외감법) 위반에 대한 범행 배경 등이 정리되면, 증거인멸 관련 사실을 특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등 자료가 많이 삭제됐고, 키워드도 일괄 삭제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사건은 금융위가 전문적 판단으로 고발까지 이뤄진 것인데, 고발이 진행되는 동안 증거를 없앤 사실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며 “국가기관에서 고발해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관련자료를 지운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이 '정황'을 근거로 '증거인멸이 분명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자, 변호인단은 '법리'로 응수했다. 

변호인단은 “백번 양보해 검찰 주장이 모두 맞는다고 해도, 삭제됐다는 2000여개 파일 중 본죄와 관련이 있는 파일이 무엇인지 특정해야 한다"고 받아쳤다.

특히 변호인단은 "자료가 지워졌다는 것(정황)만으로는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파일이 삭제됐다'는 검찰 주장이 안고 있는 모순도 지적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2015년 5월에 완료됐고, 이 사건회계처리 변경은 그 이후인 2015년 12월 이뤄졌다”며 “재무재표 작성도 2016년 2월 완료된 것이므로, 분식회계 의혹과 합병 간에는 관련성이 없다.”

재판부는 “공소사실 자체에 많은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 부분을 다 덜어내고 이 사건과 관련된 뼈대만 추려서 정리해 달라”고 검찰에 요구했다. 아울러 “증거인멸 행위가 무엇인지, 누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교사했다는 것인지 명확히 정리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멸된 증거에 대한 특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증거인부 역시 다음 기일로 미뤄졌다. 

재판부는 “검찰은 할 수 있는걸 해야 한다. 다음 기일까지 사건의 뼈대 부분을 정리하고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을 특정해야 심리가 수월해진다”고 거듭 당부했다.

이 사건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18일 오전 10시에 속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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