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불기소' 수사심의위 의결을 따라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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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불기소' 수사심의위 의결을 따라야 하는 이유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0.07.2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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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수사 주도 한동훈 검사장도 심의위에 SOS
검언유착 의혹 당사자 지목되자 "수사편향" 주장
심의위 결정 따라야 할 이유, 스스로 입증한 격
심의위는 '국민여론' 종합판... "묵살 땐 수사불신 심화"
사진=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사진=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최근 두 달 사이 서울 서초동 법조계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현직 검사장과 지상파 및 종합편성채널 전·현직 기자가 연루된 ‘檢·言유착’ 의혹이며 다른 하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 여부입니다. 검언유착 의혹과 이 부회장 사건은 쟁점이나 진행 과정이 사뭇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를 통해 수사의 적절성, 기소의 타당성을 검증받았거나 받을 예정이란 사실이 그것입니다.

먼저 대검 수심위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의결했습니다. 표결에 참여한 시민전문가 13명 중 수사 중단에 찬성표를 던진 인원은 10명, 반대는 3명에 불과했습니다. 불기소에 찬성 의사를 밝힌 인원은 이보다 더 많은 11명, 반대는 2명에 그쳤습니다. 반기업 성향 시민전문가가 최소 4명 이상 포함된 사실을 고려하면 의외의 결과입니다.

회의 과정에 참여한 시민전문가에 따르면, 검찰은 ‘이 부회장의 혐의를 특정해 달라’는 시민전문가들의 요구에 적절한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검언유착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대검 수심위는 24일 오후 2시 열릴 예정입니다.

두 사건 사이에는 잘 드러나지 않은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검언유착 사건 핵심 피의자인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사법연수원 27기)의 존재가 그것입니다. 한 검사장은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된 종합편성채널 전직 기자 A의 뒤를 봐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이달 13일 이 사건 수사팀(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의 ‘편향성’을 이유로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했습니다.

한 검사장은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책사(策士)로 불린 인물입니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검찰 연수원 기수 선두를 놓치지 않던 그는 16년 말 출범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파견 검사 신분으로 합류,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과 함께 이재용 부회장 영장 청구를 주도했습니다. 한 검사장은 올해 초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이동할 때까지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반부패부장을 잇따라 역임하면서 ‘삼성 수사’를 총괄 지휘했습니다.

지난달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이 대검 수심위 소집을 요청한 주된 이유도 ‘수사의 편향성’ 혹은 ‘불공정성’이었습니다. 수심위 소집을 요청한 사유가 한 검사장의 그것과 일치합니다.

박영수 특검부터 올해 초까지 3년 6개월여간 삼성 수사를 이끈 한 검사장이,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수사 편향성’을 이유로 수심위 소집을 요구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입니다. 이 사실은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수사심의위가 검찰 수사의 공정성, 적절성, 기소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검찰 내 최고 심의기구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더이상 심의위 위원 구성의 비전문성이나 선정과정의 불투명성을 이유로 한 비난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美 연방 대배심보다 진화된 검찰 수심위... ‘수사 정당성’ 살피는 최고 심의기구로 기능

검찰 수사심의위는 ‘시민의 사법 참여를 통한 검찰권 견제’라는 목적 아래 지난해 1월 출범했습니다. 사실 이 제도는 전현직 검찰 간부들에게조차 생소했습니다. 제도가 공식 도입된 지난해 1월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만 18개월 동안 의결 건수는 불과 9건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검찰은 이 부회장 사건 이전 앞선 8번의 의결을 모두 따랐습니다. 아직까지 검찰이 수심위 의결에 불복을 한 경우는 없습니다. 

수심위에 대해서는 위원 선정 및 심의 절차의 불투명성을 우려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점은, 수심위 존재 자체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자주 지적하는 문제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검찰이 '처분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이 제도를 이용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미국의 기소대배심도 비슷한 이유로 비판을 받곤 합니다. 검찰권 견제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가 본래 기능을 상실하고, ‘Rubber stamp’(고무도장)로 전락했다는 조롱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행 검찰 수심위는 미국의 연방 대배심과 다릅니다. 검찰과 대척점에 선 ‘예비 피고인’, 즉 피의자에게도 의견을 진술할 권리를 부여합니다. 피의자는 수심위에 자신의 입장을 담은 30페이지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으며, 회의 당일 현장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권리도 보장받습니다. 현직 검찰 관계자를 제외한 시민전문가들로 위원을 구성했다고 해서 '비전문가'라는 딱지를 붙일 이유도 없습니다. 대검수심위는 심의할 현안이 정해지면, 그와 관련된 ‘직역’에 속하는 시민전문가들의 참여 폭을 넓힙니다. 예를 들어 심의할 현안의 주된 쟁점이 ‘법리 적용의 당부’라면 변호사와 법학교수의 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한 검사장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이제 대검 수심위는 검찰 수사의 정당성, 기소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최고 심의기구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직 검사장이 ‘수사 편향성’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수심위의 문을 두드린 이상, 위원 구성의 불투명성이나 비전문성을 문제 삼는 일각의 주장은 이미 명분을 잃었다고 할 것입니다. 위원회 구성의 신뢰도나 의결의 공정성과 관련돼 의문이 있다면, 현직 검사장이 수심위에 판단을 구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檢 수심위, ‘국민 여론’ 종합판... 합리적 이유 없이 묵살하면 수사 불신 심화시킬 것

현재의 대검 수심위는 검찰 수사 및 기소의 정당성을 심의하는 가장 신뢰도 높은 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수심위의 의결은 특정 사건에 대한 국민의 일반적 여론을 가늠케 하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는 검언유착 의혹과 관련돼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의 수심위 소집 요청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렸습니다(부의 의결). 이와 대조적으로 서울서부지검 검찰시민위원회는 정의기억연대가 신청한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을 배척했습니다. 신청권자가 수심위 소집을 요청했다고 해서 시민들이 이를 모두 수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 A는 대검 수심위의 위상과 기능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름조차 낯선 제도였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검찰 수사심의위는 특정 사안에 대한 국민 여론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찰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이와 다른 판단을 내린다면,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 불신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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