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재용 기소?... "자체개혁" 檢 공언, 허언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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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재용 기소?... "자체개혁" 檢 공언, 허언이었나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7.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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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심의위 결정 '역행' 조짐... '내부 개혁' 퇴색 우려
수사심의위 '불기소 결정' 존중해 국민신뢰 회복해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다. 지난달 26일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중단 및 불기소’ 의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수사심의위는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검찰 내부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을 추진한 제도이다. 검찰의 기소 오·남용을 막고, 비대해진 검찰권을 견제할 목적으로 도입된 이 제도는 미국 연방 법원의 '기소 대배심'(grand jury·大陪審)을 롤모델로 한다.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미국 연방대배심은 법정형이 1년 이상인 중대범죄 사건이 발생했을때, 사건 피의자에 대한 기소여부를 결정한다. 

심의위원회는 10대 3이라는 큰 표차로 이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를 결정했다. '수사 중단' 의결 표차는 11대 2로 더 벌어졌다. 앞선 8차례 심의위 의결을 검찰이 그대로 수용한 전례와 이번 표결의 표차를 고려한다면, 검찰이 위원회 의결을 존중해 사건을 불기소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 그러나 검찰 주변에서는 심의위 의결 직후부터 '기소를 강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현직 검사장이 연루된 '檢·言 유착 파문’ 등 여러 이유로 내부에서부터 삐걱대는 검찰이지만 유독 이 부회장 사건 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모양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시세조종 및 부정거래 혐의로 이 부회장과 삼성 전·현직 임원 등을 기소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박영수 특검때부터 삼성 수사를 적극 옹호한 일부 반기업 성향 매체는 검찰 심의위원 선정의 불공정성, 시민 위원의 비전문성을 이유로 '불복'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논조를 취하고 있으나, 다수 언론의 시각은 이와 결이 다르다. 무엇보다 이들 주장은 설득력이 없거나 매우 부실하다.

시민위원 선정은 심의위 롤모델이 된 미국 연방대배심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무작위 추첨'을 기본으로 한다. 만약 사전에 해당 사안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물어 위원 구성을 달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의결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크다. 검찰이 입맛에 맞게 시민위원 선정을 사전에 조정할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위원 선정이 누군가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라면, 이 제도는 '시민의 사법 참여를 통한 검찰권 견제'라는 본래 취지를 상실하고 만다. 무작위 추첨을 제외하고, 선정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은 아직 없다. 

시민위원의 비전문성 논란은 그 구성의 면면을 볼때 신뢰하기 어렵다. '의결 불복'을 위한 명분쌓기에 지나지 않는다. 

1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간 주례회의(대면보고)가 서면보고로 대체됐다고 한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주례회의에서 중앙지검장은 1~4차장 산하 주요 사건들에 대한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검찰총장은 중앙지검장의 의견을 반영해 최종 결재를 한다.  

법조계에선 이번주 주례회의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대면보고가 아닌, 서면보고로 대체되면서 이 부회장 기소 여부 결정도 뒤로 미뤄졌다. 다만 '서면보고' 형식을 빌려 이 부회장 기소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 경우, 검찰은 수사심의위 의결을 총장과 중앙지검장 간 대면 조율도 없이 묵살했다는 법조계 안팎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檢, 수사심의위 결정 '역행' 가능성... '내부 개혁' 퇴색 우려

수사심의위는 검찰이 자체 개혁을 위해 출범시킨 기구다. 사건 본류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내용을 파헤치는 별건수사나 ‘먼지떨이’식 수사와 같은 검찰의 ‘기소만능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다.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를 강행할 경우, 수사심의위는 그 권위가 크게 실추될 뿐만 아니라, 존재 이유 자체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심의위 결정을 묵살한다면 없느니만 못한 제도로 전락하게 된다. 검찰이 공언한 ‘내부개혁’이 하루아침에 물 건너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위원 선정이 공정하게 이뤄진 이상, 검찰은 수사심의위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본지 취재 결과, 지난달 26일 심의위 논의 과정은 특정 개인이 아닌 7명의 현역 법조인이 주도했다. 이들 가운데는 기업형사소송 전문 변호사, 전 대한변협 부회장, 한국공법(公法)학회 상임이사 등이 포함됐다. 특히 13명 위원 가운데 최소 4명 이상이 반(反) 기업 성향 인사로 분류됐다. 

시민전문가 집단의 전체 견해를 특정인 한 명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각자의 양심을 걸고 수사심의위에 참여한 위원들에게도 상당히 모욕적이라 할 만하다. 수사심의위가 이 부회장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린 것은 검찰이 위원들을 설득하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고 할 것이다. 이를 구차한 이유와 변명으로 얼버무리는 행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올 들어 우리 경제에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제조업 전반에서 부진이 이어지고 있고, 코로나19 여파로 수출도 크게 줄었다. 최악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경제 성적표가 선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IT·전자기업들이 버텨준 덕분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KERI 경제동향과 전망 : 2020년 2/4분기 보고서’에서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인 -2.3%로 전망한 바 있다. 대내적으로는 코로나19 감염자 재확산, 기업실적 악화로 인한 대량실업 발생가능성을, 대외적으로는 주요국의 극심한 실적부진과 경기회복 지연, 반도체단가 상승폭 제한, GVC(Global Value Chain) 약화 등을 이유로 꼽았다. 

글로벌 경제는 말그대로 전시(戰時)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최근 잇따라 현장경영 행보를 이어가며 ‘위기’를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국과 일본, 중국 등 각국의 IT 기업은 신선장동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 삼성은 몇 년째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혀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치열한 전장에서 장수의 목부터 베는 나라가 승리한 경우는 없었다. 검찰의 대승적이고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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