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불기소 근거, 檢 스스로 만든 '심의위 지침 1조'에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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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불기소 근거, 檢 스스로 만든 '심의위 지침 1조'에 나와있다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0.07.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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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검찰, 수사심의위 결정 수용할까
이재용 딜레마... 불복하면 자기부정 모순 빠져
심의위 운영지침 1조는 '檢수사의 국민신뢰제고'
심의위 '수사중단·불기소', 과거 8차례 모두 수용
親검찰 매체, 위원 무작위 추첨-비전문성 시비
美연방 대배심도 무작위 선정, 평의 결과 비공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인권과 정의, 절차의 공정을 강조한 현 정부 검찰이 수사·기소의 정당성을 시민전문가들로부터 심판받겠다며 스스로 만든 제도가 수사심의위원회입니다. 검찰은 앞선 8번의 수심위 의결을 전적으로 수용했습니다. 검찰이 이제 와서 위원들의 전문성 부족이나 위원 선정 과정에서의 ‘깜깜이’ 등을 이유를 불복을 결정한다면, 심각한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수도권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 A교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의결한 대검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의결이 나온지 약 2주가 흐르면서, 비대해진 검찰권에 대한 '시민 견제'를 위해서라도 수심위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카 커지고 있다.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수사 중단 내지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이 지연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간 주례회동 무산이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성윤 중앙지검장은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이 연루된 '검-언 유착 의혹 사건' 수사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중대 사건에 대한 기소·불기소, 구속여부 등에 대한 결정은 매주 수요일 열리는 '주례회동'을 통해 윤곽이 잡힌다. 두 사람은 지난 주에 이어 8일로 예정된 주례회동도 건너뛰었다. 두 차례 회동이 '서면보고'로 대체되면서 이 부회장 기소 여부를 비롯한 중요 현안에 대한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그 사이 일부 범여권 정치인과 친노조 성향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지난달 26일 열린 검찰 수심위 의결을 비하하는 내용의 기자회견 등을 잇따라 열었다. 박영수 특검때부터 삼성 수사를 적극 지지한 일부 매체는 이들의 기자회견을 비중있게 실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기소 강행'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참여 시민들의 비전문성이며 다른 하나는 선정 과정이 무작위 추점에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니 해당 이슈에 찬반 견해를 가진 편향된 인사를 거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은 “삼성 수사 및 기소 여부의 타당성 적정성 등을 검토한 지난달 수심위는 위원회 선정부터 심의 과정 모두 불공정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위 주장은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지지하는 입장만을 반영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이 '객관적인 사실'이 주장 내용과 다르기 때문이다.

◆13명 위원 중 7명이 변호사·법학교수 '전문가'... '檢 수사 찬성' 인사도 4명 이상 참여

사진=이기륭 기자.
사진=이기륭 기자.

지난달 26일 검찰 수심위는 대검청사 회의실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고, 9시간에 걸친 난상 토론 끝에 '이재용 부회장 및 삼성 전현직 경영진 등에 대한 수사 중단, 불기소'를 의결했다.

의결에 참여한 시민전문가 13명 중 '수사 계속과 기소에 찬성한다'는  견해를 밝힌 이는 2~3명에 불과했다. 최소 10명 이상의 시민전문가는 '검찰의 삼성 수사는 중단돼야 하며,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기소도 불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당일 심리에 참여한 중견 변호사 B의 증언에 따르면, 시민전문가들은 현장을 찾은 검찰 간부들이 당혹스러워 할 만큼 날카로운 질의를 던졌다. 질의는 4명의 현직 변호사와 3명의 법학 전공 교수가 주도했다.

검찰은 기소 불가피성을 담은 의견서 외에 별도의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했으며, 삼성 수사를 전담한 검찰 간부 3명을 현장에 보냈다. 지난해 8월부터 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이복현 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장, 2018년 11월부터 삼성 수사팀에 합류한 김영철 의정부지검 부장검사 등은 시민전문가들을 상대로 '사안의 중대성'과 '죄질 불량'을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검찰간부들은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를 입증할 직접 증거가 있느냐', '삼성 합병의 어떤 부분을 위법하다고 보는지 근거를 밝혀 달라'는 시민전문가들의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검찰 간부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이나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돼 보고를 받거나 이를 지시했다고 보는 직접 증거의 존재'를 묻는 시민위원들의 질문에도 충분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심위에 참여한 시민전문가 중 검찰의 삼성 수사를 지지해 온 인사는 적어도 4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수사 중단(찬성 11명·반대 2명), 불기소(찬성 10명·반대 3명)]란 표결이 나온 것은, 검찰이 자신들의 우군조차 설득을 하는데 실패했음을 반증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가 매우 부실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검찰의 이 사건 수사는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삼성이 조직적인 시세조종과 분식회계를 범했다'는 의심 아래 시작됐다. 의혹이 처음 제기된 2015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하면 무려 만 5년이 지났다. 16년 12월 출범한 박영수 특검을 시작점으로 해도 3년 6개월, 삼성 핵심 계열사 등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이 이뤄진 18년 12월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만 1년6개월이 흘렀다.

이례적으로 긴 수사기간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수사심의위에 참여한 시민전문가들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검찰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이 사건 수사의 타당성이나 적절성을 인정받았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美 연방 대배심도 시민들 무작위 추점, 평의 결과 비공개

수심위 의결을 무시하고 기소를 강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갖는 모순은 더 있다. 위 주장처럼 해당 사안에 대해 챁반 견해를 가진 인사를 걸러내는 '검증' 과정을 도입한다면, 처음부터 수심위는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문무일 전 총장이 검찰 자체 개혁의 일환으로 만든 이 제도는 미국 연방법원의 대배심(grand jury·大陪審)을 롤모델로 한다.

'기소 배심'이라고도 불리는 대배심은,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짓는 제도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대배심은 국왕에 의한 자의적 소추를 막을 목적으로 처음 채택됐다. 이후 이 제도는 미국으로 건너가 뿌리를 내렸다.

수정헌법 제5조에 근거를 둔 미국의 대배심은 사형 혹은 단기 1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중범죄를 대상으로 한다. 미국의 대배심은 원칙적으로 검사가 제출한 증거와 그가 신청한 증인만을 대상으로 심리를 진행한다.

피의자는 이 절차에 일체 참여할 수 없다. 절차에서의 의견 진술, 문서 등 자료 제출 모두 불허된다. 다만 뉴욕을 비롯한 일부 미국 주는 '예비 피고인'에게 절차 참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변경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피의자(예비 피고인)의 절차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결과다.

미국 대배심에 참여하는 시민은 무작위로 추점을 통해 선정되며, 배심원단의 평의 결과는 공개되지 않는다. 배심원단의 평의 과정도 기록되지 않으며 의결은 과반수로 결정한다.

현재 우리 검찰이 채택한 수사심의위원회는 많은 면에서 미국의 대배심제와 닮았다.

미국 연방 법원이 대배심제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수사 결과에 대한 신뢰 확보'이다. '시민의 사법 참여'를 통해 검찰권의 오남용을 견제하고, 이를 통해 수사 신뢰도를 담보하겠다는 것이다.

대검 예규로 제정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 제1조는 위원회 도입 목적을 '검찰수사의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제고'라고 못박았다.

수심위 위원에 대한 무작위 추첨이나, 그 비전문성을 문제삼아 '기소 강행'을 역설하는 취지의 주장은, 수심위 제도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이런 논리라면 앞서 8차례 의결을 검찰이 그대로 수용한 행태도 비판 받아 마땅하다. 과거 8차례 열린 수심위는 모두 검찰의 요청으로 열렸으며, 그 의결은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내용으로 갈무리됐다.

무작위 위원 추첨과 시민위원들의 전문성 부족을 근거로 26일 수심의 의결을 묵살한다면, 이는 검찰의 '자기 부정'이다. 본인들이 원하지 않는 의결이 나왔다고 해서 그 결과를 외면하는 검찰을 신뢰할 국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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