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기소"... 상상력으로 채워진 검찰 보도자료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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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기소"... 상상력으로 채워진 검찰 보도자료 22쪽
  • 양원석,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09.03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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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중앙지검 수사팀 기소자료 분석
'범죄사실' 증거나 증명, 어디에도 안보여 
입증 대신 심증... '상상력' 동원해 '설명'
법학교수, 변호사 등 전문가 반응 부정적 
"부장검사회의가 기소 근거? 수심위는 왜 여나" 
사진=YTN 뉴스화면 캡처
사진=YTN 뉴스화면 캡처

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이복현·사볍연수원 32기)는 3년 넘게 끌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자본시장법·외부감사법 위반 의혹'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직원 11명에 대한 불구속 기소. 지난달 말부터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온 예상대로 수사팀은 ‘기소 강행’을 선택했다.

올해 6월26일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중단 및 불기소를 의결한 지 두달이 넘어 ‘기소’ 결론을 낸 검찰은 20페이지가 넘는 보도자료를 통해, 거듭 ‘사안의 중대성’을 강조했다. △학계·판례의 입장 △실체의 명확성 △사안의 중대성과 가벌성 △사법적 판단을 통한 국민적 의혹 해소 필요성 △부장검사회의 검토 결과 등도 ‘수심위 의결을 불복한 이유’로 꼽았다.

검찰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모두 22페이지에 이르는 자료 중 이재용 부회장 범죄사실을 요약 정리한 ‘별첨’이 4페이지나 된다는 점이다. 별첨 자료에는 이 부회장의 범죄혐의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검찰은 법조기자들의 편의를 고려했는지 그 범죄사실을 '범행 단계'별로 정리하는 친절도 베풀었다.

배포된 자료를 보면 이 부회장과 옛 삼성 미래전략실,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임직원들은 헌정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파렴치한 금융범죄를 저지른 자들로 그려졌다.

그러나 검찰 보도자료를 꼼꼼하게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물음표 하나를 떠올릴 것이다. 사안의 중대성과 가벌성을 역설하면서 기소의 정당성을 앞세운 검찰 자료 어디에도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직접 증거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 수사 결과’라는 제목이 무색하게도 검찰 작성 보도자료는 의혹과 예단, 추측, 그에 터잡은 다양한 수식과 그래프로 도배돼 있을 뿐, 기소의 바탕이 돼야 할 ‘증거’가 빠져있다.

검찰은 옛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미래전략실 임직원 등이 어떤 방식으로 주가를 조종했는지를 설명하는데 보도자료 분량의 절반 이상을 할해했다. 심지어 검찰은 국민적 공분을 산 미국계 투기펀드 엘리엇이 우리 정부와 삼성을 공격할 때 쓴 논리까지 차용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설명만 있고 ‘증거’는 없는 검찰 보도자료

검찰이 자료 작성에 쏟은 정성을 고려한다면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 사건 수사는 박영수 특검부터 지금까지 무려 44개월 넘게 진행됐다. 그 사이 수사팀은 일부 親검찰 매체를 통해 여러 차례 여론몰이에 나섰다.

검찰의 언론플레이는 역설적으로 이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가감없이 검증하는 계기가 됐다. 검찰이 여론전을 통해 부각시킨 의혹 가운데 지금까지 팩트로 확인된 것은 한 건도 없다. 보도자료의 절반 이상을 할해한 시세조종 의혹 역시 ‘시점 불일치’, ‘팩트 오류’ 등의 모순이 이미 확인됐다. 

기소는 심증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확보됐을 때 검찰이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한 심리를 법원에 청구하는 절차다. 이를 위해서는 ‘소명’이 아닌 ‘입증’이 요구된다. 범행 발생에 대한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 범행이 일어났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예단 혹은 추정이 아니라 범행을 증명하는 물증 혹은 진술이다. 수식과 도표를 이용한 설명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검찰 보도자료에는 ‘증명’이 없다. 이 부회장을 기소하려면 적어도 그가 시세조종이나 분식회계를 지시했거나, 이를 알고도 묵인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대검 수심위의 ‘10대 3’이란 큰 표차로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중단과 불기소를 의결한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찰은 미래전략실의 배후에 이 부회장이 있었을 것이란 박영수 특검 당시의 막연한 추론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했다. 이날 검찰이 언론사에 제공한 보도자료가 이를 ‘반증’한다.

◆다시 등장한 검찰의 ‘상상력’... ‘이재용 지시’ 입증 안 돼

검찰은 증명의 부존재를 수사(修辭)로 메꿨다.
다음은 검찰이 적시한 이 부회장 범죄사실 중 일부다.

[이재용과 미전실은 모직, 물산 주가 추이를 살피던 중]
[15. 5. 이재용과 미전실의 결정‧지시에 따라]
[이재용과 미전실은 골드만삭스 미국 본사 IB부문 회장과 대응방안 논의]

이들 문구는 검찰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위 설명이 ‘범죄사실’이 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증명이 있어야 했다. 검찰 보도자료는 이점에서 ‘졸속’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박영수 특검 이후 지금까지 검찰은 이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이나 삼성물산, 제일모직, 삼성바이오 전현직 임직원에게 합병 내지 분식에 관한 지시를 했음을 입증하지 못했다.

◆국민적 의혹 해소 위해 기소? “처음 듣는 논리”

수사팀은 보도자료를 통해 수심위 불기소 의결에도 불구하고 기소를 강행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법률 금융 경제 회계 등 외부전문가들의 비판적 견해를 포함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수사내용과 법리, 사건처리방향 등을 전면 재검토했다. 

그 결과 학계와 판례의 다수 입장, 증거관계로 입증되는 실체의 명확성, 사안의 중대성과 가벌성, 사법적 판단을 통한 국민적 의혹 해소 필요성, 수사전문가로 구성된 부장검사회의 검토 결과 등을 종합해 주요 책임자 기소에 이르렀다.' 

검찰이 밝힌 ‘불복의 변’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 A는 “이 사건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고려에서 시작된 측면이 있다. 검찰이 말하는 학계와 판례 다수 입장이 무엇을 말하는 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 전문가인 B교수도 “이 사건 분식회계나 시세조종에 대한 학계의 견해는 검찰 주장과 달리 ‘혐의 없음’이 다수 일 것”이라고 말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로 대학에서 절차법을 가르치고 있는 C 교수는 “부장검사회의 결과가 기소의 근거라면, 대검 수사심의위는 왜 여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서울 강남 대형 로펌 파트너변호사 D는 “국민적 의혹 해소를 위해 기소를 한다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며 고개를 저었다.  

양원석, 유경표 기자
양원석, 유경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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