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 구하며 '조서(調書)'를 받아?"... 이재용 수사, 전직 칼잡이도 경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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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 구하며 '조서(調書)'를 받아?"... 이재용 수사, 전직 칼잡이도 경악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0.08.2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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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檢, 이재용 기소 전제 '압박조사' 논란
전직 검사장 "이런 식 수사, 있을 수도 없는 일" 
"외부자문 구하면서 누가 조서 작성하나" 탄식
피의자 떠올리는 조서, 심리적 압박주는 위협 행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설마 그런 일이 있으려구요. 기자님이 잘못 아신 거 아닌가요?”

염색하지 않은 반백의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넘긴 전직 검사장 출신 칼잡이는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기자를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역 시절 검찰총장 하마평이 있을 때마다 이름이 올라가던 그는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오랜 공직생활을 끝냈습니다. 그는 사법연수원 동기 중 검찰 내 진급이 가장 빠른 한 명이었습니다. 같은 청에 근무하던 말석 검사의 추문이 없었다면 역대 검찰총장 연혁표에서 그의 사진과 이름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식사를 하는 내내 그의 얼굴은 어두웠습니다. 기자가 대화 소재로 꺼낸 검찰發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사는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중단·불기소 의결’과 별도로, 십 수 명의 외부전문가를 선별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기소 당부’ 자문을 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검찰이 외부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경우는 비교적 자주 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대형 재난사고나 컴퓨터 보안사고, 의료사고, 방산 비리 등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특정 사건이 불거지면, 수사를 맡은 검찰은 외부전문가를 수소문해 자문을 구하곤 합니다. 

검찰 삼성 수사팀이 외부 자문을 구한 것 역시, 그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외부전문가 면담과정에서 검찰이 보여준 석연치 않은 방식과 태도에 있습니다.

위 기사는 검찰의 자문 요구에 응해 실제 중앙지검을 찾은 학자들의 ‘고백’을 실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검찰은 이 사건 수사에 비판적 견해를 밝힌 학자들을 7~8시간씩 붙잡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기소가 타당하다’는 취지의 진술을 사실상 종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학자들의 고백을 종합하면 검찰은 ‘삼성을 편드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원색적인 질문까지 했다고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조서(調書)’를 작성했다는 사실도 털어놨습니다.

검찰이 외부 자문을 구하면서 조서를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거나 없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검찰 수사에 비판적 견해를 가진 학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서 작성은 대단히 위협적인 행위입니다. 검찰의 신문조서는 그 자체로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나 중요참고인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점심 약속 전 평소 친분이 있는 몇몇 교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검찰 삼성 수사팀으로부터 '자문 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두 분이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통화 내용은 위 기사의 내용과 일치했습니다. 특히 한 분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담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서울시내 4년제 대학 정교수로 있는 그는 “아침에 들어갔다가 밤 10시가 넘어 집에 왔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대략 7~8시간 정도 검사실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재용 부회장 기소 타당성’을 놓고 검사와 오랜 시간 논쟁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검찰이 확보한 문건들을 봤지만 이 부회장 혐의를 입증할만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덧붙여 그는 '면담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말라'는 검찰의 당부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순수하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기소 당부 의견’을 묻는 자리였다면, 견해를 경청하면 될 일입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논쟁을 벌이고 더 나아가 유도 질문을 한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행태입니다. 수사에 의문을 표한 학자들을 밤이 되도록 검사실에 머물게 하고, 조서를 받은 사실도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차기 검찰총장감’이란 평판을 받던 그 법조계 원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외부 자문을 구할 수는 있어요.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 사건들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외부 자문은 수사 초기에 합니다. 수사를 몇 년씩 하고 나서 뒤늦게, 그것도 수사심의위원회가 불기소를 권고하니까 그제서야 외부전문가들 불러서 ‘기소를 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묻는 건 말이 안 돼요.” 

그는 기업수사의 방법론에 대해서도 뼈있는 조언을 했습니다. 

“기업 수사는 환부만을 도려내는 정밀한 외과수술처럼 해야 합니다. 있는 것 없는 것 죄다 압수수색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탈탈 털면, 누가 땀 흘려가며 경제활동을 해요. 수사를 하더라도 기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문제가 있는 부분만을 짚어내고,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검찰이 외부전문가들에게 조서를 받았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무슨 외부 자문을 구한다면서 조서를 받아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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