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일정 볼모로 옥죄나"... 벌점제 강화에 건설업계 강력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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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일정 볼모로 옥죄나"... 벌점제 강화에 건설업계 강력 반발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0.03.0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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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총연합회, 건설기술진흥법 벌점 개정안 반대 탄원
현장마다 받은 벌점 합산, 컨소시엄은 대표사에 부과
공사 많은 대형업체일수록 불리... "대형건설사 죽이기 규제"
정병윤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왼쪽)이 정용식 국토교통부 기술안전정책관(오른쪽)에게 탄원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대한건설협회
정병윤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왼쪽)이 정용식 국토교통부 기술안전정책관(오른쪽)에게 탄원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대한건설협회

정부가 부실공사 벌점 기준을 강화하는 입법 추진에 나서자 건설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이하 연합회)는 국토교통부의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에 대한 개정 철회를 촉구하는 탄원서 8101부를 최근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

정부가 2월 입법 예고한 이번 개정안은 부실공사 예방을 위해 건설공사 벌점제도의 실효성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벌점의 산정·적용 방식을 기존의 평균 방식에서 합산 방식으로 변경하고, 공동도급(컨소시엄)의 경우 벌점 부과 대상을 기존 출자비율별 부과에서 컨소시엄 대표사로 바꾸도록 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사소한 실수에도 아파트 분양 일정은 대책 없이 미뤄지게 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집값 안정화’를 위해 분양 일정을 볼모로 건설사에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탄원서에 따르면 건설업계가 국토부의 벌점 규제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4가지다.

먼저 벌점 산정방식의 부당함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1개 현장 운영 업체에서 발생한 1건의 부실과, 100개 현장 운영 업체에서 발생한 1건의 부실에 대해 불이익은 동일하다.

99개 현장의 안전관리 실적은 반영하지 않은 채, 1건의 부실로 모든 것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연합회의 설명이다.

일례로 100개 현장에서 점검을 받은 건설사가 이 가운데 2곳 현장에서만 각각 2점, 1점의 벌점을 받았다면 기존에는 총 0.03점의 총 벌점에 그쳤지만, 앞으로는 3점으로 무려 100배 차이가 나게 된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벌점 1점만 받아도 건설사는 짓고 있던 아파트의 분양 일정을 골조공사 3분의 1 완료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

10점 이상을 받는다면 사용검사 이후로 밀려 후분양을 해야 한다. 분양 일정이 미뤄지면 공사비 조달 등 사업 일정 전체에 차질을 빚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든 현장이 똑같은 분양 규제를 받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컨소시엄 ‘대표사’의 책임 이상의 처벌 문제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동도급시 발생하는 부실시공 책임은 ‘대표사’가 진다. 연합회는 "불합리한 조치"라고 밝혔다.

공동도급 대표사는 출자비율이 보통 제일 높지만, 출자비율이 구성원과 같거나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게 연합회의 설명이다.

일례로 2017년도 공공기관 발주 사업이었던 장수-장계 도로개량공사, 한국환경공단 연수원건립사업의 출자비율은 대표사가 30%, 구성원1 30%, 구성원2 20%, 구성원3 20%였다.

때문에 연합회는 공동도급 제도가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합회는 “공동도급은 대·중소기업간 협력으로 중소기업 육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제도”라며 “이번 개정으로 권리 없이 부실책임만 떠안는 대표사 기피로 공동수급체 구성 난항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 부실벌점 산정방식 위헌소지다.

헌법에는 규범의 의미내용으로부터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이고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명확성의 원칙', 그 구체적인 내용을 위임입법으로 정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위임의 구체적인 내용 내지 범위를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는 '포괄위임금지 원칙'이 있다.

벌점을 부과할 때 명확하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규정해서 지적을 하라는 것인데, 국토부의 개정안은 이런 명확함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건설업계는 현재 창원지법에서 LH와 ‘층간소음 관련 부실벌점 제도 위헌법률제청 심사’를 받는 중이다. LH가 '층간소음'을 이유로 건설기술진흥법상에 명시된 부실벌점 제도를 발동했고, 업계는 ‘명확성 원칙’과 ‘포괄위임금지의 원칙’ 위배에 된다며 심사를 요청한 것이다.

끝으로 벌점 권력을 악용하는 발주처의 갑질 논란이다.

연합회에 따르면 현재의 부실벌점 산정제도는 벌점 측정기준이 모호하다. 이를 테면 '배수구의 관리가 불량한 경우 벌점 1점', '주요구조부 시공상세도면의 작성을 소홀히 해 시공보완이 필요한 경우 벌점 2‧3점' 등이라고 명시돼 있는데, 불량의 기준, 소홀함의 기준이 없다. 따라서 발주처 담당자의 개인감정 또는 사익에 따라 횡포로 이어질 개연성이 존재한다.

특히, 부실측정 제척기간이 없는 것도 문제다. 부실벌점 제도가 도입된 1995년 준공된 아파트도 오늘 부실 신고를 할 수 있다.

청문절차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제도상 청문절차가 없기 때문에 처분내용은 일방적으로 통지 후 서면 의견진술만 받는다. 이로 인해 공동주택 입주민의 지자체 부실 신고사례는 현재까지 모두 부실벌점이 부과됐다.

연협회는 “이번 벌점 개정안은 처벌 만능주의의 정책으로 시행될 경우 부과벌점이 평균 7.2배, 최대 30배까지 상승할 것”이라며 “견실시공 대형·중견업체들까지 퇴출위기에 직면하고, 지역중소업체들은 적격점수 미달사태로 연쇄부도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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