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CEO징계 타당한가①] "내부통제 기준 모호, 자의적 처벌 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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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CEO징계 타당한가①] "내부통제 기준 모호, 자의적 처벌 남발"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1.05.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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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당국 사모펀드 고무줄 징계" 성토
자본硏 학회 전문가들 "자의적 처벌 안돼"
英美, 합리적 내부통제 입증시 불가항력 인정
"지나친 처벌·간섭 모험자본 육성 저해" 우려
"내부통제, 처벌보다 인센티브 수단이 돼야"

<편집자주>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를 수습 중인 금융당국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잇따라 징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당국이 선언적 수준에 불과한 내부통제 마련 의무를 근거로 CEO를 처벌하고 금융사별로 널뛰기식 징계수위를 매기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쏟아내는 모습이다. 반면 당국은 향후 금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작금의 사태에 대해 응당한 패널티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본지는 금융권 내부통제 관련 쟁점을 정리하고 바람직한 제도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을 마련했다. 첫 번째는 금융사 징계를 둘러싼 학계와 업계의 반응이다.

[내부통제 논란, 금융 CEO징계 타당한가] 
① "내부통제 기준 모호, 자의적 처벌 남발"

② 윤창현 "금융 官營化... 금감원, 정치적 제재 중단해야"
③ 바람직한 내부통제 방향은? 이병태·오정근 교수 인터뷰
③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과연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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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전 금감원장. 사진=시장경제DB
윤석헌 전 금감원장. 사진=시장경제DB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사태 후속 조치와 관련해 인적 징계를 남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일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당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 재임기간 중 중징계를 받은 금융사 임원은 총 169명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에만 전체의 57%에 해당하는 96명에 대해 중징계를 내렸다. 

최고경영자(CEO)들도 소나기를 맞아야 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최근 논란이 된 라임·디스커버리·옵티머스펀드 사태와 관련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중징계인 문책 경고를, 진옥동 신한은행장에게는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를, 김도진 전 IBK기업은행장에게는 주의적 경고를,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에게는 경징계인 주의를 각각 결정했다. 박정림 KB증권 사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중징계인 나란히 문책 경고를 받았다.

그러자 금융권 일각에선 "(당국이) 은행권 CEO 다수에게 경징계를 처분한 것과는 달리, 증권사 CEO 대부분에게는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금감원 제재심은 사실상 권고 차원에 해당한다. 최종 판단은 향후 금융위원회가 맡게 된다. 하지만 금감원 제재심이 징계의 잣대가 되는 탓에 금융권은 상당히 민감한 반응이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금감원 측이 CEO들을 징계한 주요 근거는 '금융회사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과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시행령이다. 문제는 해당 조항이 일종의 선언·권고 수준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처벌의 기준까지 명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사실 금융권에서는 징계의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자의적이라는 지적이 일찍부터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증권사 CEO 30여명은 라임 펀드 판매를 둘러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회의에 앞서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당국에 제출하기도 했다.

 

자본시장硏 세미나, 각계 전문가들 성토 이어져

내부통제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달 28일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쟁점과 전망'이라는 제하의 세미나를 개최해 금융권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일부 온도차는 있었지만 각계 전문가들은 "금감원의 CEO 제재 논리가 명확하지 않아 당국이 자의적인 '철권'을 휘두를 소지가 있다"며 우려했다.

1부 발제에 나선 자본시장연구원 이효섭 선임연구원은 "내부통제가 처벌보다는 제재 경감의 '인센티브' 수단으로 활용돼야 하며 인적 제재 중심인 현 제도를 금전 제재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효섭 연구원은 "선진국의 경우 금융사고에도 불구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을 경우 과징금을 감면하거나 감독자의 포괄적 책임을 면제해주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골드만삭스의 Abacus CDO 부실판매(2011), 모건 스탠리 임원의 중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제공(2012), 바클레이스(영국) FX시장 담합혐의 과징금 부과(2015) 등의 사례를 열거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 사진=자본시장연구원 유튜브 캡쳐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 사진=자본시장연구원 유튜브 캡쳐

이효섭 연구원은 "한국은 행정규제 위반에 대해 CEO 등 임직원을 제재하기 위해 지배구조법을 해석해 적용하고 있는데 과연 법 해석이 타당한지를 두고 이견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마련에 있어 소홀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하다. 현행 인적제재 중심의 사후조치가 이어질 경우 경영자들은 어쩔 수 없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안전한 곳에만 투자하게 될 것이다. 이는 금융시장의 활기를 저해하고 모험자본을 육성하자는 취지에도 어긋난다. 선진국의 내부통제 취지는 100% 금융사고를 막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될 경우 사고가 나면 처벌하는 결과주의로 흐를 수 있음을 우려한다."

끝으로 이효섭 연구원은 "금융당국과 업계가 합리적인 선에서 과정을 중시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부 발제자로 나선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부통제는 회사 내 전 구성원에 의해 수행되는 통제활동으로, 회사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합리적인 확신을 주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내부통제를 통해 규제를 내부화하고 외부로는 규제가 완화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져야 바람직하다는 제언이다.

사진=자본시장연구원 제공
사진=자본시장연구원 제공

안수현 교수 역시 "현행 금융당국의 내부통제 관련 규정과 처벌기준이 애매해 제대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제24호 제1항에 의해 금융사의 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이뤄져야 하고, 내부통제 기준은 설정 운영에 따라 금융사의 가능한 모든 업무활동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가이드라인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안수현 교수는 "내부통제 관련 의무 위반시 감경 또는 면책사유 역시 애매하다"고 했다. "관리나 감독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 상당한 주의를 다한 경우 조치 감경 내지 면제가 가능하다"는 면책 조항도 예시했다. 

안수현 교수는 "선진국은 한국과 달리 감독미비에 따른 책임규정이 명확하며, 위반시 면책요건도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의 증권거래소법(Securities Exchange Act of 1934)과 영국의 SMCR(Senior Managers and Certification Regime)을 들었다.

미국은 증권거래소법에 따라 직원의 위법행위를 방지하거나 실무상 가능한 수준에서 이를 적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절차·시스템을 마련했다. 또한 이러한 절차·시스템이 준수되고 있지 않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상황에서 감독자가 절차와 시스템을 적절히 이행한 경우를 면책 요건으로 들고 있다.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자본시장연구원 유튜브 캡쳐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자본시장연구원 유튜브 캡쳐

영국의 경우 금융감독청(FCA)은 회사가 내부통제와 관련해 상당한 조치를 취했는지를 △회사규모와 업무 복잡성 △경영진이 실제 알았던 것 △경영진의 지위에서 당연히 알아야 할 것 △경영진의 전문성과 능력 △어떤 조치를 취했고 대안이 있었는지 판단 △경영진의 실질적 역할과 책임 △권한 위임과 모니터링 △회사 상황과 목표가 상충될 경우 적절한 위험평가가 행해졌는지 여부 등 7가지 항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당국과 금융권이 갈등하는) 모습은 원칙 중심 감독과 규정 중심 감독 사이에서 마찰이 빚어지는 과정"이라고 논평하면서 "확실하게 적합한 규정이나 법으로 제재하는 게 쉽지 않은데 향후 여러 방안들을 검토하며 개선책을 도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미나를 참관한 금융권 관계자는 "처벌 규정이 없어 지배구조법 일부를 특정한 방향으로 해석해 차용한 것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라면서 "당국 입장에서 처벌이나 면책 요건을 명확히 하면 자신들의 입지와 권한이 약화되기 때문에 당분간 업계와의 줄다리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당국이 이날 세미나의 취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후문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민감한 시기에 이런 주제의 세미나를 하지 말라는 식으로 압박성 권고가 여러 차례 있었다"면서 "금감원에선 세미나의 내용이 본인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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