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늑장 검사" 금융사 원성 드높다... 금감원 '불신(不信)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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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늑장 검사" 금융사 원성 드높다... 금감원 '불신(不信)시대'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1.08.05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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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디스커버리 관련 경찰 압수수색에 위상 실추
검사 후 1년 이상 계류 22건... "정치적 판단" 원성
20일 DLF 1심 앞두고 긴장... "패소 땐 망신살"
금융권 "원님재판식 CEO때리다 자충수" 비판도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과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 사진=시장경제DB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과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오른쪽). 사진=시장경제DB

금융감독원이 전임 지도부 시기에 이뤄진 'CEO 표적검사' 외에도 총 128건에 대한 검사를 마무리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어 업계의 원성을 사고 있다. 

앞서 감사원으로부터 사모펀드 관리감독 부실을 지적받아 체면을 구긴 금감원은 이달 말에 있을 우리금융과의 DLF 행정소송까지 패할 경우 감독기관으로서 위상이 크게 실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2일 금감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앞서 경찰은 7월 21일 디스커버리 본사를, 23일에는 3개 판매사를 연이어 압수수색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경찰이 지난해 금감원 측이 디스커버리 사모펀드와 장하원 대표 등을 검사했던 자료를 확보하려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경찰은 피해자들의 고발과는 별개로 지난 5월 디스커버리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장하원 대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이번 펀드 사태에 장 대표의 친형 장하성 개입설까지 돌고 있다. 

디스커버리는 2016년 장하원 대표가 자본금 25억원으로 설립한 사모펀드 운용사다. 해당 펀드들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시중은행과 증권사에서 판매된 후 환매중단됐다. 피해자들은 펀드 가입 시 원금손실 가능성 등을 제대로 설명듣지 못했다며 항의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디스커버리펀드 부실화로 국내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미상환액)는 금년 4월 말 기준 2,562억원에 달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4일 경찰의 금감원 압수수색과 관련해 "경찰은 금감원이 디스커버리와 관련된 자료를 모두 제공하기 어려운 정황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 "압수수색으로 관련 자료를 가져갔다면 현재 금감원도 용의선상에 있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압수수색 외에도 금감원은 지난 7월 초 감사원으로부터 옵티머스 펀드와 관련해 운용사 측의 말만 듣고 제대로 감독업무를 수행하지 못해 사태를 키웠다는 질책을 들었다. 이에 금융권 안팎에서 금감원이 감독기관으로서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가 100%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이기륭 기자
지난 6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가 100%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이기륭 기자

 

128건 검사하고 늑장... 금융사들 '원성'

현재 금감원은 감사원·경찰과의 불편한 기류 외에도 금융사들로부터 '무리한 CEO때리기'와 각종 검사 후 결론을 미뤄 원성을 사고 있다.

25일 금감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검사 종료 이후 절차가 진행 중인 목록' 문건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절차 진행'으로 분류된 사건은 총 128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검사 후 1년이 넘은 건은 22건에 달했고 이 가운데 7건은 2년이 지나도록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사 입장에서 금감원의 징계·제재 절차가 길어질수록 평판과 경영상 손실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특히 CEO징계가 걸린 검사가 몇 년씩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신사업 진출 적기를 놓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상장사의 경우 주가에도 악재가 될 소지가 크다.

금감원 측은 검사 종료 이후 유권 해석, 법률 검토, 사실관계 확인 등 추가로 필요한 절차가 있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실상 금감원은 마음만 먹으면 검사부터 최종 결론까지 소요 시간을 늘이고 줄일 수 있다"면서 "의견수렴이나 법률검토의 경우도 일정한 시간제약을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금감원이 CEO 중징계 권고 등으로 업계의 이목을 끌고 이후 절차는 시류를 봐가며 진행하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 정무위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글로벌 기업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도 조사 후 수개월 내에 최종 고지서가 발급되는데, 금융사 검사 기간이 그 이상으로 길어질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윤창현 의원은 이어 "금감원 검사와 조치는 '금융 부실'에 초점을 맞춰 신속하고 엄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DLF 패소하면 금감원 위상추락 불가피"

DLF사태 역시 금감원이 금융사 CEO에 대해 중징계를 권고했다가 법정공방으로 이어지면서 사태가 장기화된 대표적인 경우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오는 20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DLF 관련 문책경고 등 취소청구 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대규모 투자자 손실을 불러일으킨 DLF 사태와 관련해 내부통제 부실 등의 책임을 물어 손 회장에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에 손태승 회장을 비롯한 금융사들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근거로 경영진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맞섰다.

이 외에도 금감원은 DLF 사태와 관련해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전 하나은행장), 박정림 KB증권 사장,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전 대신증권 사장), 김형진 신한금융투자 전 대표,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등 다수 금융사 CEO들에게도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권고한 상태다. 

서초동 법원. 사진=시장경제신문DB
서초동 법원. 사진=시장경제신문DB

현재 금융권은 이번 1심 재판부의 판단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소송 당사자뿐 아니라 사모펀드 사태로 중징계가 예고된 타 금융사 CEO들의 향방도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상 경영진에 대한 제재는 금융위원회 의결로 최종 확정된다. 금융위는 작년 11월 제재심이 끝난 라임펀드 판매사 KB증권, 대신증권의 전현직 CEO에 대한 제재 수위도 아직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금융위 측은 오는 20일에 있을 1심 판결을 본 이후 사모펀드 관련 CEO들에 대한 제재를 확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이 사모펀드 사태 후속조치와 관련해 무리하게 CEO 중징계를 남발하다 자충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만일 1심 재판부가 금감원의 중징계 권고가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금감원의 위상과 권위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5일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금감원이 이번 DLF 1심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아낸다 해도 소송이 장기화되고 2심이나 3심에서 결과가 달라질 여지가 있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논평했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권의 경찰과 같은 금감원이 경찰 압수수색을 당하고, 감사원에게 질책을 듣는 현 상황에서 어떤 교훈이 있길 바랄 뿐"이라고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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