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CEO징계 타당한가③] '악습의 법제화'... 지주사 옥죄는 巨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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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CEO징계 타당한가③] '악습의 법제화'... 지주사 옥죄는 巨與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1.06.06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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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의원들, '금융지주회사法' 개정안 추진 도마위
김한정 "내부통제 명문화 필요" 규제법안 발의
박용진 "회장 연임 1회로 제한" 자율성 침해 논란
금융권 "자의적 CEO 처벌 오남용" 우려 목소리
전문가들 "시장경제 자율·창의 위축될 것"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를 수습 중인 금융당국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잇따라 징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당국이 선언적 수준에 불과한 내부통제 마련 의무를 근거로 CEO를 처벌하고 금융사별로 널뛰기식 징계수위를 매기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쏟아내는 모습이다. 반면 당국은 향후 금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작금의 사태에 대해 응당한 패널티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본지는 금융권 내부통제 관련 쟁점을 정리하고 바람직한 제도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을 마련했다. 세 번째 순서로 최근 여권에서 발의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등 지배구조 관련 규제 법안을 살펴보고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내부통제 논란, 금융 CEO징계 타당한가] 
① "내부통제 기준 모호, 자의적 처벌 남발"
② 윤창현 "금융 官營化... 금감원, 정치적 제재 중단해야"
③ '악습(惡習)의 법제화' 강행... 지주사 옥죄는 巨與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5대 금융지주 회장과 회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5대 금융지주 회장과 회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여권에서 금융지주의 내부통제 관련 의무를 명시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이 내부통제에 대한 구체적 내용과 운영방식을 규정하지 않고 있어 이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대체로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당국이 자의적인 잣대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를 징계하는 근거로 오·남용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또한 개정안 발의를 전후해 여권에서 금융사 지배구조 관련 규제 법안들을 잇따라 쏟아내면서 금융권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지주의 내부통제를 의무화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지난달 17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금융지주가 자회사를 포괄하는 그룹 내부통제 기준을 의무적으로 마련토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최근 금융지주들이 비은행 부문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그룹 내 자회사간 연계 영업을 확대하면서 디지털·자산관리·기업금융·글로벌 등 사업부문별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한정 의원은 그룹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개별 자회사가 아닌 지주사에서 수행하고 있어 내부통제의 필요성과 실효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김한정 의원은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은 금융지주의 업무로 자회사 등에 대한 내부통제·위험관리를 명시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이나 운영방식은 규정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행 금융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역시 내부통제 기준 설정·운영과 관련한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지주 자체의 내부 통제체계 구축과 운영만을 규정하고 있다고"고 부연했다. 계열사를 상대로 하는 그룹 차원의 내부통제체계 구축을 의무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에 개정안은 금융지주의 이사회·대표이사·준법감시인 등 주체별로 그룹 차원의 내부통제와 관련한 업무와 책임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금융지주회사는 자회사 등을 포함하는 그룹 차원의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 △자회사 등은 상기 내부통제 기준에 따라 자체 기준을 마련 △금융지주회사 이사회는 내부통제 기준을 제·개정하고 임직원의 내부통제 기준 준수를 위한 정책 수립 등의 사항을 심의 의결 △금융지주회사의 대표이사는 그룹 내부통제 제도 위반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예방대책 마련 등을 구체적으로 의무화한 것이 특징이다.

나아가 "금융지주회사는 준수 여부에 대한 충실한 점검을 하고 위반 시 징계 등 그룹 내부통제 제도를 총괄해야 하며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거나 그 의무를 게을리한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제재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향후 시행령 등을 통해 제재의 내용과 강도 등을 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지주 CEO 처벌로 실효성 찾겠다는 모순(矛盾)

개정안이 발의되자 금융권 안팎에선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금융지주사 CEO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해 결과적으로 당국의 자의적인 처벌을 법제화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들끓었다. 

4일 한 증권가 관계자는 "최근 금융업계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로 인해 금융기관의 내부통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많은 자회사를 둔 금융지주는 마땅히 내부통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서도 "금융지주 CEO가 현실적으로 모든 계열사들을 관리하고 총괄할 수 없는데 무리하게 책임을 지도록 하면 결국 아무 때고 처벌할 수 있다는 얘기"라며 우려했다.

이번 개정안 역시 당국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일례로 실효성 있는 예방대책의 마련이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효성이 있는 것인지 애매하다"면서 "결국 사고가 나면 충실한 내부통제 기준이 있어도 실효성이 없었다며 징계하겠다는 얘기가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왼쪽)과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시장경제DB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왼쪽)과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시장경제DB

법조계에선 과도한 입법만능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금융업계별 자율규제를 위한 협회가 존재하고 협회가 감독당국과 협의해 마련한 업계별 표준 내부통제 기준이 이미 각 금융사별 내부통제에 반영돼 있는데, 당국과 업계가 얼마든지 자율적으로 해결해갈 수 있는 사안을 무리하게 법으로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다른 법무법인 관계자는 "원래 금융지주회사법의 도입 취지는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지 CEO의 역량을 제한하고 처벌하는데 있지 않다"면서 "사고가 날때마다 당국이 지주와 CEO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 소지가 있고 금융권 전반의 모험과 도전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고 논평했다.

관련 법안을 토대로 금융지주가 계열사에 지나친 경영 간섭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 대형 금융지주 계열사 관계자는 "금융지주가 내부통제라는 명목 하에 자회사의 경영사항을 일일이 들여다 보는 것이 일상이 될 것"이라면서 "계열사 위에 금융지주사의 내부통제 체계를 얹어 옥상옥(屋上屋)을 만들기보다 자회사들 스스로 개별 여건에 맞는 체계를 만들고 개선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해당 개정안의 입법 취지와는 별개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고가 나기 전 당국이 수차례의 감사를 했지만 진단과 예방에 실패한 사모펀드 사고가 부지기수"라면서 "금융당국도 못하는 내부통제를 지주사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4일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바람직한 내부통제는 일선 업무 라인에서 독립적인 통제라인 체제를 갖추는데서 출발하며, 경영진과도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시장경제DB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4일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바람직한 내부통제는 일선 업무 라인에서 독립적인 통제라인 체제를 갖추는데서 출발하며, 경영진과도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시장경제DB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바람직한 내부통제는 일선 업무라인에서 독립적인 통제라인 체제를 갖추는데서 출발하며 경영진과도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러한 내부통제 라인이 독립적 권한을 갖고 일선 영업라인을 자율적으로 통제하도록 하고 당국은 그러한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 간접 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금융지주에 과도하게 책임이 집중된다는 논란과 관련해선 "최근 상품설명 녹취 등 비대면 거래가 확산되고 있는 금융혁신 추세에 역행하는 것으로 (실제로도) 펀드 판매가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CEO 괴롭혀 주인 없는 회사 만들자는 것인가"

금융권은 최근 여권발(發) 지배구조 관련 규제법안들이 이어지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별 법안들이 나름의 정당성이 있음에도 일련의 흐름으로 볼때 정부와 당국의 권한을 강화하고 CEO의 입지를 축소시키려는 '큰 그림'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금융권은 최근 여권발(發) 지배구조 관련 규제 법안들이 줄을 잇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별 법안들이 나름의 정당성이 있음에도 일련의 흐름으로 볼 때 정부와 당국의 권한을 강화하고 CEO의 입지를 축소시키려는 '큰 그림'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융권 산별노조들은 이달 초부터 "금융사지배구조법을 개정해 금융지주사 회장 연임 횟수를 1회로 제한하고 총 임기도 6년을 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금융지주 대표가 자회사 대표를 겸직하도록 하는 예외 규정도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상법 제383조 제2항은 지주사 회장 임기는 3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연임 횟수에 대한 제한은 정해져 있지 않다.

박용진 의원은 "한국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셀프연임을 시도해도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이 존재하지 않아 부당한 권력 행사가 일어나고, 이익 독점 행위 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법 개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정무위원회 의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해 6~7월 중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김한정 의원은 지난달 20일 금융지주회사 대표이사의 셀프 연임을 방지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 기능 회복을 위해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위원의 3분의 2 이상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했다. 특히 대표이사(회장)를 추천하는 임추위의 경우 위원 전원을 사외이사로 구성토록 했다. 현행법은 임추위에 대해 '3명 이상의 위원으로 구성한다'라고만 규정했을 뿐 사외이사가 얼마나 포함되는지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김한정 의원은 개정안 발의 배경에 대해 "국내 금융회사 이사회는 최고경영자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 견제보다는 의사결정을 합리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4일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4일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금융지주회사 CEO는 공직자도 아니며 정부가 (해당 회사에) 지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임기 제한을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면서 "주인 없는 회사를 만들어서 정권 바뀔 때마다 줄 잘 서는 사람을 임명하려는 것밖에 더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사진=시장경제DB

전문가들은 CEO를 비롯한 경영진을 규제하는 법안들이 기업과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금융지주 CEO는 공직자도 아닌데 임기 제한을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면서 "주인 없는 회사를 만들어서 정권 바뀔 때마다 줄 잘 서는 사람을 임명하려는 것밖에 더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버크서 해서웨이의 워렌 버핏은 1970년부터 50년 가까이 회장을 역임하고 있지만 '오마하의 현인'으로 추앙받는다"면서 "능력 있는 CEO 연임을 정부가 제한하는 것은 '경제민주화'라는 미신에 현혹된 관치(官治) 금융"이라고 덧붙였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지배구조 관련 규제 외에도 (여당에서 발의한) 중대재해범죄법 역시 일선 현장의 문제로 최고경영자를 처벌하고 끌어내릴 수 있는 독소조항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업에게 수시로 사회공헌 책무를 떠넘기다가 사고가 나면 CEO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악습이 문제"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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