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허위 견적서' 주고받은 LH-보험중개인...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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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허위 견적서' 주고받은 LH-보험중개인... 진실은?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2.12.2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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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보 등 檢고발' 공정위 의결서 분석
임대주택 단체보험 발주한 LH의 '수상한 행태'
LH, 보험중개사에 "삼성화재 견적서 달라" 전화
보험중개사는 '허위 견적서' 만들어 LH에 회신
LH 담당자 "삼성화재 직원으로 오인해 전화"
공정위 조사관 “정확한 해명 안 되는 상황”
올해 5월 LH가 개최한 LH혁신위원회에서 김준기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LH
올해 5월 LH가 개최한 LH혁신위원회에서 김준기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LH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임대주택 재산‧화재보험 입찰 담합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올해 초 공정거래위원회는 LH가 발주한 임대주택 125만호에 대한 재산‧화재보험 입찰 담합으로 KB손해보험 등 손보사 7곳을 제재한 바 있다. 당시 손보사끼리만 담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정위 자료를 살펴본 결과 LH 담당자의 정황에서 일부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됐다.  

[편집자주]

'LH 분양 임대주택 단체보험 담합 의혹' 사건은 범행 형태에 따라 ‘2018년 임대주택 100만가구 재산종합보험’과 ‘2018년 전세임대주택 25만가구 화재보험’ 관련 사건으로 각각 구분된다. 두 사건의 담합방식과 가담기업은 조금씩 다르다.

특히 '가격 투찰' 담합이 아니라 '낙찰자 선정' 담합이라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나쁘다. 두 사건으로 공정위 과징금 처분을 받은 곳은 KB손해보험, 삼성화재, 한화손해보험, 흥국화재, DB손해보험, MG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손보사 7곳과 보험중개법인(‘000인스컨설팅’) 1곳이다. 이 가운데 KB손보와 000인스는 담합을 주동한 기업으로 지목돼 법인과 담당 직원이 검찰에 고발됐다.

LH의 담합 연루 의혹 정황은 ‘2018년 전세임대주택 25만가구 화재보험’ 사건에서 등장한다. KB손보와 000인스는 한화손보와 메리츠화재보험을 입찰에 불참시켰고, 대가로 KB컨소(KB손보, 흥국화재, 농협손보, 하나손보, MG손보) 지분 일부를 비공식적으로 받았다. 입찰 결과 KB컨소가 낙찰됐고, 2018년 보험료는 2017년 대비 2.5%배 올랐다. 투찰률 역시 2017년 57.6%에서 2018년 93.7%로 급상승했다.

LH는 이 과정에서 담합 주도기업 000인스 직원에게 ‘삼성화재 예정가격 견적서’를 요청했다. 삼성화재의 입찰 예정가격 견적서를 동 기업이 아닌 000인스에 요청한 것이다. 더 이상한 일은 그 이후 일어났다. LH 담당자로부터 전화로 삼성화재 견적서를 요청받은 000인스 직원은, 일체 해명도 없어 '허위 삼성화재 견적서'를 만들어 LH 담당자에게 보냈다. 

LH 담당자는 이어진 조사에서 000인스 직원을 삼성화재 직원으로 착각해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으며, 공정위는 이같은 해명을 문건에 기재하는 것으로 조사를 마무리했다.  

공정위 심의의결서에 따르면 LH는 2018년도 화재보험 공고를 위한 예정가격이 필요했고, KB손보에 예정가격 견적서를 요청해 받았다. LH는 삼성화재의 예정가격 견적서를 추가로 받기 위해 000인스 직원에게 삼성화재 견적서를 요청했다. 이 회사 직원은 2018년 1월 10일, 삼성화재 동의 없이 삼성화재 명의로 예정가격 건적서를 작성, 동 문건을 LH 담당자에게 보냈다.

허위로 작성된 삼성화재 명의 견적서상 예정가격은 KB손보보다 높게 기재됐다. 자격도 없는 사람이 보낸 허위 삼성화재 견적서가 접수되면서 경쟁입찰조건은 구비됐고, LH는 입찰을 진행했다. KB손보와 000인스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고, 낙찰을 받게 됐다.

허위 삼성화재 견적서를 000인스 직원에게 요청한 사실과 관련돼 LH 담당자는 공정위 조사에서 이렇게 답변했다.  
 

화재보험 예정가격 산출을 위해 다수 보험사로 견적요청을 했으나, 대부분 참여의사가 없어 제출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화재보험 입찰 건으로 연락이 온 적 있는 삼성화재 A씨(실제론 000인스 직원)에게 입찰견적서를 요청을 하게 됐다.

 

000인스 직원이 LH에 보낸 '허위 삼성화재 견적서'. 사진=공정위
000인스 직원이 LH에 보낸 '허위 삼성화재 견적서'. 사진=공정위

 

LH "담합은 손보사들끼리"... 공정위 "정확한 해명 안 돼"  

LH 담합 연루 의혹의 핵심은 담당자의 ‘삼성화재 직원 오인’ 여부이다. LH는 000인스에 허위 삼성화재 견적서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 직원이 담당자를 기망했기 때문에 ‘삼성화재 견적서’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LH는 그 근거로 ‘공정위 조사 답변’을 제시했다.
 

 

화재보험 입찰 건 관련으로 연락 온 적이 있었던 삼성화재 A씨(000인스 동일인물)에게 입찰견적서 요청을 하게 됐다.

LH측은 “전세 임대 화재보험 예정가격 산정을 위해 각 보험사에 견적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A씨를 삼성화재 본사 직원으로 오인해 견적서를 요청했을 뿐, 보험사 담합에 연루된 바 없다”고 반박했다. 

반박에도 불구하고 의혹이 완전히 풀렸다고 말하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공정위 조사관이 작성한 해당 문건을 보면, '정확한 해명이 안 되는 상황'이란 내용이 포함돼 있다. 조사관이 LH 담당자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신뢰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는 문구이다. 

000인스의 해명도 LH의 그것과 결이 다르다. 이 회사 직원은 공정위 조사에서 "화재보험 입찰 진행을 위한 요식절차 차원에서 요청을 받았기에 똑같은 개념으로 (삼성화재의) 날인 없이 보낸 것”이라고 진술했다. 

허위로 삼성화재 견적서를 보낸 이유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LH에서 기초가격이 필요하다고 해서 보낸 것”이라며 “매년 화재보험 입찰은 보험사가 참여하지 않는 기피 물건이다보니 LH 담당자의 필요에 의해 본인에게 기초가격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LH가 손보사들의 담합을 사전에 인지하고, 묵인해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정황들”이라며 “000인스 직원이 LH로부터 최초 전화를 받았을 때, 삼성화재가 아니라고 답해야 상식적이지만 이런 과정이 모두 생략된 채 ‘가짜 삼성화재 견적서’가 오간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기자는 팩트체크를 위해 당시 LH 담당자와의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LH는 “해당 직원은 현재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아 직접 연결은 불가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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