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인사이트] 인천2호선 턴키입찰이 던진 '담합조장' 화두... 法 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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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인사이트] 인천2호선 턴키입찰이 던진 '담합조장' 화두... 法 판단은?
  • 신준혁 기자
  • 승인 2021.10.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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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끈 인천2호선 담합 사건 내달 1심 판결 주목
인천시, 포스코건설 등 18개사에 1322억 소 제기
공정위도 담합 인정, 법원 '벌금형' 각각 선고
지자체 공공입찰 구조적, 내재적 모순 뚜렷
설계비만 수백억... 입찰 떨어지면 공중에 날려야
업계 "손해 줄이려면 정보공유 불가피한 측면"
"담합 비판 전에 제도적 맹점부터 뜯어고쳐야"
인천지방법원. 사진=시장경제

7년 간 장기 소송 중인 ‘인천도시철도 2호선 공사 입찰 담합 사건’ 1심 판결 선고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사건 쟁점인 손해배상금액과 '턴키입찰제도'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인천시는 2014년 법원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판결 이후 공사 담합에 참여한 건설사들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9년 1월 인천시가 발주한 '인천지하철 2호선 15개 공구 턴키(201~216공구)' 입찰과정에서 21개 건설사들의 담합행위가 있었다고 판단, 총 132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담합에 참여한 건설사들이 의도적으로 품질이 낮은 ‘B급’ 설계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들러리’를 섰다는 것.

공정위에 따르면 대우건설, SK건설, GS건설, 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는 5개 공구에 대해서 교차 방식으로 낙찰자-들러리를 각각 정한 뒤 입찰에 참여했다. 

특히 포스코건설은 현장조사 기간 노트북 3대에 있는 자료를 없애기 위해 하드디스크를 교체하고 일부 자료를 삭제하는 등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추가 제재를 받았다.

당시 16개 공구 가운데 206공구를 제외한 15개 공구는 총 1조288억5300만원(예산 금액의 97.56%)에 낙찰된 반면 담합이 없었던 206공구의 낙찰률은 66.0%에 그쳤다. 시는 담합으로 수천억원의 예산이 낭비됐다고 밝혔다. 

인천지방법원은 담합 혐의를 인정하고 2014년 위 건설사들에 대해 각각 4000만원~1억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인천2호선은 공공발주 공사이자 1조30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로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며 “사업의 절차적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소 건설사 중 6곳은 서울7호선 담합사건으로 기소돼 2008년 서울중앙지법에서 벌금형을 받고도 이 사건 담합에 가담했다"며 "이런 담합행위가 과연 근절될 수 있을지 적지 않은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시는 위 판결을 토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시장경제DB

 

건설사 변호인단 "턴키입찰이 담합 유도... 제도 맹점부터 개선해야"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의도적 담합 여부와 손해배상액 산정의 공정성, 배상액 규모의 적정성 여부 등이다. 

우선 피고 건설사들은 턴키입찰의 제도적 허점을 주장하고 있다. 인천시는 2007년 턴키입찰방식으로 이 사업을 발주했다. 턴키는 설계비용을 입찰 기업이 '우선 부담'한 뒤 공사비를 책정해 입찰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갖춘 대형 건설사만 참여할 수 있어 담합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규모 공공공사는 설계비만 수백억원에 이른다. 건설사들은 입찰에서 탈락해도 설계비를 회수할 수 없는데다가 최저가 낙찰 방식이 적용돼 응모가액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입찰에서 떨어지는 기업은 수백억원 대의 설계비를 날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구조적으로 담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외면하고, 기업들의 위법행위만을 지적하는 셈이나 다름이 없다는 점에서 제도의 근본적 개선과 기업 현실을 고려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입찰 정보를 사전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탈락 가능성을 낮추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공정위는 이런 행위를 ‘들러리 입찰’이나 ‘공구 나눠 먹기’로 규정하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 본다면 수백억원대의 손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인 측면이 있다.  

공사 기간이 짧고 공구가 많은 점도 고질적 문제로 꼽힌다. 발주사인 지자체는 선거로 당선된 단체장의 임기 안에 사업을 마치기 위해 일정을 빡빡하게 잡는 경우가 흔하다. 특혜 시비를 우려해 1개 사업장을 여러 개 공구로 나누는 갈라치기 발주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인천지하철 2호선 공사도 이런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당시 공사에 참여한 건설사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인천시는 지하철 2호선 공사를 인천아시안게임 개최 전 완공할 것을 요구했다. 

법원도 공공발주 턴키입찰제도의 특수성을 일부 인정하고 있다. 위 14년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 재판부는 상대적으로 경미한 벌금형 선고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제도가 안고 있는 내재적 모순을 언급했다. 특히 위 사건 재판부는 "인천아시안게임 개최에 맞춘 무리한 공사일정 역시 이 사건 담합행위 발생에 적지 않은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두번째 쟁점은 손해배상액 규모이다. 원고 인천시는 이 소송에서 2차례 감정평가를 통해 1322억원의 손해배상액을 책정했지만 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추가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시는 해당 건설사들에 지급한 공사대금에 근거, 청구액을 증액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피고 건설사들은 일부 관행적 담합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배상 청구액이 지나치게 높다며 반발하고 있다.

피고 변호인단은 모두 서면자료를 통해 '책임제한'을 주장했다. 책임제한은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입은 손해 일부를 감액해 배상하도록 한 판례상 법리로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민법상 손해배상의 원칙을 확대 적용한 개념이다.

피고 대리인은 "감정평가 보고서는 이미 강건성(새로운 변수를 대입해도 결과가 일정한 정도) 검증을 통해 합리성을 증명한 자료"라며 "입찰 건설사는 다른 공정과 비슷한 설계비용을 지불한 만큼 일부러 'B급' 설계를 제안해 입찰을 따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 손해배상 사건 심리를 맡은 인천지법 제13민사부는 다음말 19일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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