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라더니 난데없이 '횡령' 추가... "또 별건, 檢 자신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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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회계 라더니 난데없이 '횡령' 추가... "또 별건, 檢 자신없는 듯"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7.1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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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한 대표 영장 재청구... 19일 오전부터 영장실질심사 
분식회계 및 증거인멸 혐의 외에 ‘특경가법 상 횡령’ 추가 
檢 고위 간부출신 변호사 “비자금도 아니고... 혐의 추가는 패착” 
최근 법원 ‘검찰 포괄적 압색’ 잇따라 무죄... 추세대로라면 기각
본죄인 분식회계 혐의, 범죄 성립 자체 의문... 다툼 여지 많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이기륭 기자.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에 대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법조계 안팎에서 검찰의 ‘별건 구속’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및 증거인멸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송경호 부장판사)는 이달 16일, 김태한 대표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이 김 대표에게 적용한 혐의는 크게 분식회계(자본시장법 및 외부감사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회삿돈 횡령(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이다.

자본시장법과 외부감사법 위반은 ‘회계부정’ 즉 통상의 분식회계 사건에서 검찰이 가장 먼저 적용하는 주요 혐의다. 증거인멸교사는 삼성바이오 및 그 관계기업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일부 임직원들이 벌인 자료삭제·은닉 등의 행위를 김 대표가 지시했다는 검찰 측 판단이 구체화된 죄목이다. 반면 특경가법상 횡령은 분식회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별건 압색, 별건 구속’ 비판 직면... 횡령 혐의 자체도 법리상 다툼 여지 있어

검찰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은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김 대표가 회삿돈을 횡령한 것으로 의심할만한 정황을 포착했다. 김 대표는 2016년 삼성바이오 상장 이후, 회사로부터 30억원 가량을 포상금 명목으로 받았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보상위원회 의결과 주총 보고 등의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위 행위를 횡령으로 보고 있다.

위 행위를 횡령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를 떠나, 분식회계 혐의 여부 확인을 목적으로 실시된 압수수색이 횡령 혐의 수사의 출발점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검찰이 적용한 특경가법상 횡령 혐의는 아무리 좋게 봐도 ‘별건 압색’, ‘별건 구속’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횡령 혐의 자체에 대해서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

회사 내부 절차를 누락했다고 해도 ‘상장 성공’에 대한 공헌을 이유로 포상이 이뤄진 것이 사실이고, 이사회의 사후 추인이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이 존재한다면 이를 횡령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찰, 분식회계 혐의에 유독 약한 모습... 뚜렷한 수사 성과 없어 

앞서 검찰은 지난 5월 김 대표에게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적용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당시 법원은 “김 대표의 지위와 역할, 관여 정도, 관련자 진술 등을 종합할 때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증거인멸교사 혐의 자체에 대해 충분한 소명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지난해 11월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가 보유 중인 에피스 주식 지분 가치를 크게 부풀리는 방식으로, 4조5000억원 대의 대규모 분식회계를 행했다”고 의결했다. 증선위는 2015년 이전 재무제표 재작성, 대표이사 및 재경담당 임원 해임 권고, 감사인 지정 3년, 과징금 80억원 부과 등의 제재 처분과 함께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증선위 고발 사건 이외에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일부 정치권 등이 제기한 유사 고발 건을 묶어 중앙지검 특수2부에 수사를 맡겼다.

중앙지검 특수2부는 올해 5월부터 지금까지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재경팀, 인사팀 소속 부사장 3명을 비롯 삼성전자 삼성바이오 에피스 임직원 8명을 증거인멸 및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검찰은 정작 이 사건 본죄인 분식회계 수사와 관련해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검찰은 콜옵션 지배력, 오로라프로젝트 등 일부 쟁점에 대한 수사 진행 상황을 일부 특정 매체에 흘리며 여론전에 나섰으나, 분식회계 혐의 입증에 대해서는 유독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검찰이 언론에 흘린 [콜옵션 지배력]이나 [오로라프로젝트] 관련 사안은 오히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부합한 회계처리였다”는 삼성 측 항변에 힘을 실어주는 모순을 드러내기도 했다.

◆법원 “검찰의 포괄적 압색은 위법... ‘2차 증거’ 효력도 부정”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사진= 이기륭 기자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사진= 이기륭 기자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김태한 대표에 대한 검찰의 영장 재청구는 이 사건 삼성바이오 수사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이 영장 발부에 성공한다면 지지부진한 분식회계 혐의 수사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이번에도 영장이 기각된다면 검찰 수사는 신뢰도에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최근 우리 법원은 관행처럼 굳어진 검찰의 ‘포괄적 압수수색’ 행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특히 법원은 영장주의를 벗어난 포괄적 압색의 위법성을 확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확보한 ‘2차 증거’의 효력마저 부정하는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법원의 이런 움직임은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을 규정한 형사소송법 308조의2에 바탕을 두고 있다.

◆중앙지법, 서울고법 “벌건 압색 위법”... 노조와해 공판도 시작은 ‘별건 압색’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이순형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시를 통해 검찰의 별건 압색이 안고 있는 위법성을 경고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사건은 검찰의 별건 압색으로 시작됐다.

검찰은 지난해 3월26일 강원랜드 특혜 채용 비리를 수사하던 중 피의자 A씨에 대한 혐의 입증을 위해 산업자원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당시 법원이 내준 압색영장 상의 피의자는 A씨,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였다.

검찰은 A씨의 강원랜드 사외이사 지명과정에 외압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산업자원부 소속 공무원과 광해관리공단 임직원들을 조사했다. 당시 압색은 검찰의 심증을 뒷받침하기 위한 증거 확보에 목적이 있었으나, 압색 과정에서 ‘업무인계서’라는 이름이 붙은 문서가 발견되면서 수사가 확대됐다.

검찰은 해당 문건을 근거로 권 의원이 강원랜드 채용 비리에 가담했다는 판단을 내렸다. 권 의원을 불구속 기소한 검찰은 ‘업무인계서’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권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영장 발부 당시 적시한 혐의 사실과 무관한 별개 증거를 압수했을 경우, 그 증거는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차문호 부장판사)도 지난달 27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방산업체 납품담당 직원 A씨 등 6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이 사건 1심 법원도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컴퓨터 외장하드 및 업무서류철에 대한 국방부 조사본부의 압수는 혐의 사실과 관련 없는 자료에 대한 ‘포괄적 압수’에 해당해 위법하다”고 밝혔다.

압색 당시 직원들은 “외장하드는 팀원들이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하드 안에 피의자와 관계없는 다른 사람들의 개인정보도 들어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으나, 수사관은 이를 묵살하고 하드 본체를 반출했다.

재판부는 “수사관은 내용을 확인하고 키워드 검색 등을 통해 유관정보를 선별하려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무사의 영장집행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혐의사실 혹은 압수수색 대상과 관련 없는 다수 문건을 압수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1차 증거는 물론이고 이를 바탕으로 생성된 2차 증거의 효력까지 부정했다. 이런 태도는 영미법이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독수독과이론’을 판결에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사건 역시 ‘별건 압색’이 출발점이란 점에서, 수사 초기부터 공정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 변호인단은 “증거수집 자체가 위법하게 이뤄졌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해선 안 된다”고 항변했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 “재청구할 때 추가 혐의 적용 무리수” 

검찰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 A는 김 대표에 대한 횡령 혐의 추가 적용에 “회삿돈을 이유 없이 빼돌려 비자금을 만든 것도 아니고, 포상이란 분명한 명분이 있고 실제 공헌이 있었음이 인정된다면 (검찰의 영장 청구는) 기각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A변호사는 “처음 영장에는 없다가 재청구하면서 새로 혐의를 추가했다는 건 어떻게든 집어넣겠다는 것인데, 검찰의 이런 행위가 오히려 실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처음 청구할 때부터 (횡령 혐의를) 넣었으면 모를까 재청구하면서 추가한 사실은, 검찰이 그만큼 혐의 입증에 자신이 없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과 같다”고 촌평했다.

또 다른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 B는 “기록을 볼 수 없어 검찰의 혐의 소명이 얼마나 충분하게 이뤄졌는지 알 수 없다”면서도 “재청구하면서 본죄와 무관한 혐의를 추가한 것은 누가 봐도 별건 구속”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검찰은 지금까지 관행을 이유로 ‘문제 없다’는 식으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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