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건' 불처벌 원칙도 무시, 삼바 증거인멸 기소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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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사건' 불처벌 원칙도 무시, 삼바 증거인멸 기소 옳은가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6.18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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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삼바 증거인멸’ 공소장이란 이름의 함정②
‘자기 사건’ 증거인멸행위 처벌 안하는 것이 형법 불문율
前 검사장 “‘임직원들, '회사 일=내 일' 인식... 처벌 무리”
검찰 출신 변호사들 “증거인멸 구속, 최소한에 그쳐야”
삼성바이오로직스 압수수색 보도. 사진=화면 캡처.
삼성바이오로직스 압수수색 보도. 사진=화면 캡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으로 시작된 검찰의 삼성 수사는 크게 3갈래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삼성전자 및 삼성바이오 임직원들의 증거인멸, 두 번째 증거인멸 사건의 본죄라 할 수 있는 분식회계 혐의 입증, 세 번째는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 현안의 존재 여부입니다.

삼성 수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분식회계 혐의는 검찰이 대대적인 인력 보강에 나선 지난해 2월을 기점으로 해도, 아직까지 진전된 그 무엇이 없습니다.

‘공장 바닥을 뜯고 증거를 은닉했다’, ‘수조원 대의 사기 대출을 실행했다’, ‘조직적 증거인멸에 가담한 삼성 직원이 무려 120명에 달하고 이들 모두 처벌 가능성이 있다’ 등의 선정적 보도가 줄을 잇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돼 검찰이 “‘결정적 증거(스모킹 건)’를 찾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수사 초기 검찰은 분식회계 혐의를 입증할 ‘스모킹 건’을 찾았다며 이른바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을 들고 나왔습니다. 반기업 성향의 일부 특정 매체도 “검찰이 삼성의 조직적인 분식회계를 규명할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지금, 삼바 내부 문건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검찰도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부 문건 자체가 안고 있는 시점 불일치의 모순 등 ‘팩트 오류’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검찰도 슬쩍 발을 빼는 모습입니다.

일부 변호사는 검찰이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증거인멸 수사를 확대한 이면에 ‘위기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분식회계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는 검찰이 상황 타개를 위해 증거인멸에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문제는 증거인멸 혐의 입증도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검찰 입장을 충실하게 대변하는 일부 언론 덕에 여론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공판이 시작되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 법조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본지는 최근 ‘삼바 증거인멸 수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범죄 구성요건 측면에서 재조명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삼바 증거인멸 수사’를 바라보는 법조인들의 견해를 중심으로 사안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검찰 출신 변호사들의 반응은 일반 국민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일선 지검과 지청에서 증거인멸 사건을 직접 다룬 이들의 설명은 시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삼바 증거인멸 수사와 관련돼 후배 검사들에게 우려를 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삼성바이오로직스 전경. 사진=시장경제DB
삼성바이오로직스 전경. 사진=시장경제DB

◆오너 혹은 최고경영자 관련 사건을 ‘타인의 형사사건’으로 볼 수 있을까

우리 형법은 ‘자기 사건’에 대한 증거인멸행위는 벌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 특수절도 혐의를 받고 있는 경우, 그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삭제하더라도 증거인멸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증거인멸죄를 법률이 정한 문구대로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타인’ 은 자기 이외의 제3자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법조인들은 ‘타인’의 범위를 현실에 맞게 합리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증거인멸에서 ‘타인’ 여부가 문제되는 대표적 사례가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입니다.

기업 사건에서 당해 기업 자체 즉 법인이 범죄 혐의를 받거나 당해 기업의 오너 혹은 최고경영자가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그 기업의 임직원이 한 증거인멸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검찰 출신 변호사 중 상당수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고 말합니다.

검사장 출신 A변호사는 “현재 우리 검찰은 아주 편협한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모든 것을 법전에 나온 문구대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기업 압수수색을 하다 보면 뭔가 자료를 감추거나 숨기는 직원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숨기려 한 자료에 대단한 내용이 있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이들이 현행범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행동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보면 ‘내 회사’, ‘내 일’이란 인식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검사는 본죄에 대한 혐의 입증이 모두 끝난 뒤 증거인멸 수사를 합니다. 이 경우에도 기소는 최소한으로 합니다. ‘타인의 형사사건’이란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내 일’로 생각하고 일을 벌인 직원 모두를 처벌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압수수색이 직원들에게 미치는 영향... 전염병처럼 빠른 공포의 확산

검사장 출신 A변호사의 경험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압수수색 상황에서 의외로 많은 직원들이 무의식적으로 서류나 자료를 감추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언젠가 정보통신법 위반 혐의로 검찰의 대규모 압수수색을 당한 중견기업 팀장급 직원과 관련 사건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 직원은 약 2년 남짓한 재직 기간 동안 3차례의 압수수색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검찰의 3번째 압수수색이 있은 직후 회사를 떠났습니다. 불안해서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었다는 것이 퇴사의 이유였다고 합니다.

그는 “압수수색을 당한 순간 나도 모르게 업무수첩과 회의자료를 감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첫 번째 압수수색 후, 직원들 사이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금이라도 ‘꼬투리’가 잡힐 만한 내용의 자료는 폐기하거나 은밀한 곳에 보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그의 증언입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달 삼성전자 보안선진화TF팀 소속 임원을 불러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진=뉴스 화면 캡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달 삼성전자 보안선진화TF팀 소속 임원을 불러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진=뉴스 화면 캡처.

이런 행동의 근간에는 ‘내 일’이란 인식과 함께 ‘공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집단의 경우에는 그 공포의 전염속도가 훨씬 더 빠릅니다.

어떤 이유로든 그룹 계열사 중 한 곳이 압수수색을 당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공포는 전염병처럼 전 계열사로 확산됩니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한 기안이나 업무수첩의 기록 때문에 검찰에 불려나가 고초를 겪었다는 미확인 경험담도 공포와 함께 전파됩니다. 이쯤 되면 압수수색을 당하지 않은 계열사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검찰이 행하는 압수수색은 그 자체로 ’공포‘입니다. 한국 검찰 수사의 힘은‘공포’에서 나온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검찰은 기업 수사를 할 때, 먼저 대규모 압수수색을 실시한 뒤 그 사실을 언론에 알립니다. 다음 순번은 소환조사입니다. 임원은 물론이고 부장급 이하 실무직원까지 ‘참고인’ 꼬리표를 붙여 “내일 몇 시까지 몇 호 검사실로 들어 오라”고 통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태어나서 수사기관이라고는 동네 지구대나 경찰서 교통계를 가본 게 경험의 전부인 직원들에게 저인망식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는 엄청난 공포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압색 후 이어지는 줄소환, “언제든 피의자 될 수 있다” 엄포에 직원들 맨탈 붕괴

언젠가 중앙지검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나도 특수부 검사 출신이지만 만약 (변호인이 아닌) 내 사건으로 검사실에 불려들어간다면 나도 긴장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검찰청은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부터 다른 이질적인 공간입니다.

검사실 분위기는 이보다 훨씬 더합니다.

좁은 사무실 곳곳에 널브러진 압수물, 창문을 가린 채 쌓여있는 엄청난 분량의 사건기록, ’검사보다 더 검사스러운‘ 검사실 직원들의 건조한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입이 마르고 침을 삼킵니다.

지금은 많이 ‘민주화’ 됐다지만 그래도 검사실이 편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기획·특수수사통 검사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심리전 전문가들입니다.

전국 검찰에서 고르고 고른 엘리트 칼잡이로만 멤버를 구성했으니 중앙지검 특수2부 검사실에 불려간 이들의 ‘맨탈’이 털리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검사실 직원으로부터 “지금은 참고인으로 왔지만 태도가 불손하고 사실을 감추면 언제든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말이라도 듣게 되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반쯤 넋이 나간 상태가 됩니다.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도 떨게 만드는 곳이 대한민국 검찰입니다. 영장까지 청구된 대리급 직원의 맨탈이 붕괴되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기획·인지수사 부서 검사들, 재판서 무죄 나와도 인사상 불이익 없어”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서초동 법조타운의 B변호사는 “실무직원인 대리급까지 구속한 사실을 보면 이 사건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대기업 사건 수사에서 임원이 아닌 실무직원을 상대로 영장을 청구하는 경우는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대리급 직원까지 잡아넣었다는 건 시쳇말로 ‘잔챙이까지 싸그리 잡아넣어 공포를 극대화시키겠다’는 검찰의 수사 전략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B변호사의 말입니다.

“보안 담당 실무직원을 자기편으로 만들었으니 검찰은 성공한 겁니다. 이게 바로 검찰이 노리는 겁니다. 대리급까지 털었으니 그 소식을 들은 직원들의 심리가 오죽 불안하겠어요. 이렇게 공포와 불안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검찰의 전형적인 수사 기법입니다.”

그는 특수2부가 광범위한 증거인멸 수사에 나설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일반 사건에서는 무죄율이 매우 중요합니다. 평검사들의 인사발령에 있어 아주 중요한 평가요소입니다. 다만 기획 수사, 인지 수사는 예외입니다. 이 경우는 무죄율이 반영 안 됩니다.

구속기소했다가 재판에서 무죄가 나와도 인사에 불이익 받을 염려가 없다는 뜻입니다. 기획 수사, 인지 수사에 무리수가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증거인멸 성립하려면 본죄인 분식회계에 대한 인식 필요”

법조 경력 20년이 넘는 중견 로펌 대표변호사 C는 “본죄인 분식회계가 특정도 안 됐는데 증거인멸로 8명을 구속했다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는 “검찰의 위기의식이 삼바 증거인멸 수사에 반영된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덧붙여 C변호사는 “증거인멸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본죄에 대한 인식을 요한다”며, “삼성 직원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확실치 않다”고 했습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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