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건수사 잇단 무죄... 삼성재판 변수된 '독수독과(毒樹毒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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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수사 잇단 무죄... 삼성재판 변수된 '독수독과(毒樹毒果)'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7.0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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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별건수사 제동... 노조 와해건도 시작은 별건 압수
삼성공판 '독수독과이론' 실종... "최근 추세라면 무죄"
고법 “위법 수집된 1차는 물론, 2차 증거도 불인정” 
중앙지법 “영장 기재 혐의사실과 무관한 포괄적 (별건)압색 위법”  
검찰 로고.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검찰 로고. 사진=시장경제 이기륭 기자.

“검찰 수사는 앞서가지 말고 따라가야 합니다. 정치권과 언론 등을 통해 의혹이 불거진 뒤 검찰이 알려진 의혹의 진상 규명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검찰이 주연이 돼서 언론보다 앞서 나갑니다. 압수수색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장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A. 

하급심 법원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의 효력은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피고인들에게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면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공판이 새 국면을 맞이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위법한 압색을 통해 확보된 1차 증거는 물론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2차 증거(파생증거)의 효력을 부정하는 판결까지 나와, 삼성 노조와해 의혹 공판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별건 압색’은 별건 수사 및 별건 구속과 더불어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근간을 해치는 구악으로 지목돼 왔다. 실제 최근 1, 2심 법원이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 및 영장주의 위반을 이유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검찰도 공개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되레 학계와 변호사업계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법원이 바른 길을 택했다”며 환영하는 입장이다.  

◆노트북 컴퓨터 서버 통째로 압수... 영장주의 무시 관행 도 넘어

한국 검찰의 압수수색은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무관한, 사실상 모든 자료를 싹쓸이 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압색 현장에서 영장주의는 거의 무시된다.

압수수색영장에는 피의자의 성명, 적용 혐의. 압수수색을 필요로 하는 사유, 압수수색의 장소와 대상 등이 명시돼 있지만 이들 ‘제한’이 현장에서 지켜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압수수색에 동원된 수사관들은 검사의 지휘 아래,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유체물을 파란색 압수물 박스에 쓸어 담기 바쁘다. 전산자료 역시 예외가 아니다. PC 본체와 노트북은 통째로 들고 가고, 서버는 검찰 포랜식 전담 직원이 직접 와서 데이터를 내려받는다. 최근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수사팀의 압색에서 볼 수 있듯 서버 실물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식의 압색은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천명한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과 영장주의를 무력하게 만든다.

법원과 변호사업계, 로스쿨 및 학계는 검찰의 별건 압색 구태를 청산돼야 할 적폐의 하나로 보고 개선을 요구해 왔으나 검찰은 그 요구를 묵살했다. 법원의 어정쩡한 태도도 검찰이 구태를 유지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법원은 검찰의 별건 압색이 영장주의를 훼손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거나 증거능력을 부인하는데 인색했다.

그러나 ‘권성동 의원 사건’을 계기로 법원이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검찰의 태도 변화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법원 “혐의 사실과 무관한 증거,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없어”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은 지난달 22일 나왔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이순형 부장판사)는 검찰의 별건 압색이 안고 있는 위법성을 경고하면서 공소를 기각했다.

재판부의 판시내용대로 이 사건은 검찰의 별건 압색으로 시작됐다.

검찰은 지난해 3월26일 강원랜드 특혜 채용 비리를 수사하던 중 피의자 A씨에 대한 혐의 입증을 위해 산업자원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당시 법원이 내준 압색영장 상의 피의자는 A씨,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였다.

검찰은 A씨의 강원랜드 사외이사 지명과정에 외압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산업자원부 소속 공무원과 광해관리공단 임직원들을 조사했다. 당시 압색은 검찰의 심증을 뒷받침하기 위한 증거 확보에 목적이 있었으나, 압색 과정에서 ‘업무인계서’라는 이름이 붙은 문서가 발견되면서 수사가 확대됐다.

검찰은 해당 문건을 근거로 권 의원이 강원랜드 채용 비리에 가담했다는 판단을 내렸다. 권 의원을 불구속 기소한 검찰은 ‘업무인계서’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권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영장 발부 당시 적시한 혐의 사실과 무관한 별개 증거를 압수했을 경우, 그 증거는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고법 “혐의사실과 관련 없는 포괄적 압수는 위법”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을 적용한 무죄 판결은 항소심 법원에서도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2부(차문호 부장판사)는 지난달 27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방산업체 납품담당 직원 A씨 등 6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이 사건 1심 법원도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컴퓨터 외장하드 및 업무서류철에 대한 국방부 조사본부의 압수는 혐의 사실과 관련 없는 자료에 대한 ‘포괄적 압수’에 해당해 위법하다”고 밝혔다.

압색 당시 직원들은 “외장하드는 팀원들이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하드 안에 피의자와 관계없는 다른 사람들의 개인정보도 들어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으나, 수사관은 이를 묵살하고 하드 본체를 반출했다.

재판부는 “수사관은 내용을 확인하고 키워드 검색 등을 통해 유관정보를 선별하려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무사의 영장집행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혐의사실 혹은 압수수색 대상과 관련 없는 다수 문건을 압수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1차 증거는 물론이고 이를 바탕으로 생성된 2차 증거의 효력까지 부정했다. 재판부의 이런 태도는 영미법이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독수독과이론’을 판결에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편집자주]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과 ‘독수독과이론(毒樹毒果理論)’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은 강학상 이론이 아니라 우리 법률과 대법원이 인정한 소송법상의 기본 개념이다. 형사소송법은 2007년 법률 개정으로 308조의2를 신설, 위 원칙을 명문화했다.

형사소송법 308조의2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

대법원도 같은 해 11월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을 인용하는 기념비적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제주도청 지사실에 대한 압수수색의 위법성을 다툰 이 사건 판결 이유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법리를 확립했다.

“절차 조항을 따르지 않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을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이며 확실한 대응책은 이를 통해 수집한 증거, 이를 기초로 획득한 2차적 증거를 유죄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대법원 2007.11.15. 2007도3061호.

대법원은 위 판결을 통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의 능력을 부정한 것은 물론이고 그 파생증거(2차적 증거)의 능력마저 부인하는 ‘독수독과이론’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독수독과(毒樹毒果, Fruit of the poisonous tree, Früchte des vergifteten Baumes, 독이 있는 나무는 열매에도 독이 있다)는,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毒樹)에 터 잡아 2차 증거(파생증거)를 얻었다면 그 파생증거 역시 독과(毒果)이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해선 안 된다는 법리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확립했으며, 영미법계 국가는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수의 대륙법계 국가도 직간접적으로 이 법리를 수용하고 있다.

◆삼성 노조와해 의혹 공판도 시작은 ‘별건 압수수색’

‘별건 압수수색’에 대한 하급심 법원의 기조 변화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공판’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삼성 노조와해 의혹 사건의 출발점은 ‘별건 압수수색’이다. 

이 사건에 대해 회사 측 변호인단은 “증거수집 자체가 위법하게 이뤄졌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해선 안 된다”고 항변했다.

변호인단이 말하는 위법한 증거수집의 이유는 이렇다.

이 사건 발단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이다. 지난해 2월8일 ‘검찰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 수사팀’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및 수원사업장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과 관계가 없는 다수의 문서 및 자료를 압수했다.

검찰은 압색 현장에서 확보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노조와해 의혹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영장에 기재된 제한을 벗어나 이뤄졌다”고 항변했다. 법원이 압수를 허용한 대상 물건은 ‘2008년 1월1일부터 2011년 12월31일까지 생산된 문서’였으나, 실제 압수물 가운데는 해당 범위를 벗어난 문건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자기 차량을 이용해 회사 컴퓨터 하드디스크 여러 장을 은닉하려고 한 직원을 압수수색 현장에서 체포했다”며 조직적 증거인멸 가능성을 제기했다.

변호인단은 “해당 직원이 보관 중이던 하드디스크가 영장 상 압수의 대상이 되는지 검찰은 확인하지 않았다”며 포괄적 압수수색의 위법성을 거듭 강조했다.

‘위법 수집 증거 배제 원칙’을 둘러싸 첫 공방에서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일단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올해 1월7일 이 사건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김태업 부장판사)는 증거수집의 위법성과 관련된 양측의 의견을 듣고, 검찰 측의 ‘절차상 과실’을 일부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압수수색 당시 영장에 기재된 시간과 장소 등에 대한 제한 범위를 위반했다는 변호인 측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입장을 나타냈다. 

◆‘검찰권 남용 견제’ 공감대... 법원 내부 분위기 미묘한 변화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재판부가 각기 다른 공판에서 위 원칙을 인용, 무죄를 선고하면서 법원 내부 분위기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법원 내부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압수수색 구태에 제동을 걸고 검찰권 남용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위법 수집 증거 배제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인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 B는 “법원이 압색영장 발부에 지나치게 관대한 측면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발부 심사가 더 까다롭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B변호사는 “하급심의 변화가 법원 전체로 확산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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