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치, 삼성을 이제 놓아주라
상태바
[기자수첩] 정치, 삼성을 이제 놓아주라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07.14 16: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檢 압수수색만 19번… 일본 반도체 수출규제까지 '첩첩산중'
삼바 분식회계, 혐의입증 불분명... '기업 옥죄기' 더이상 말아야
삼성 화성캠퍼스 EUV 라인 전경.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경기 화성캠퍼스 EUV 라인 전경. 사진=삼성전자

“이제는 제발 정치가 경제를 좀 놓아줘야 할 때 아닌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다. 박 회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권을 비판하는 글을 쓴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박 회장이 ‘총대’를 매고 작심발언을 쏟아낸 것은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 무관치 않다. 

이달 초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 수출의 ‘대들보’인 반도체를 정면 겨냥한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PI)와 레지스트(감광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가지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첨단소재 수출허가 신청이 면제되는 ‘화이트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내용이다. 

레지스트와 고순도불화수소는 반도체 핵심 소재이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도 TV·스마트폰 액정에 쓰이는 중요 품목이다. 세계 전체 생산량을 살펴보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레지스트는 90%, 고순도 불화수소는 70%가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일본에서 거의 전량을 수입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 치명적이다. 특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 소재인 3가지 품목은 재고량이 한 두 달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소재가 고갈될 경우, 한국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이 고사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마저 나오는 이유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면, 박용만 회장의 말대로 이번 사태는 정치와 외교의 실패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나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일관계에 대한 경고음은 지난해부터 계속 울렸지만 정부는 국민감정만을 내세우며 상황을 사실상 방관했다. 재계를 중심으로 일본발 경제보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표류하는 바이오산업…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유죄'인가

우리나라 재계의 대표격인 삼성의 상황만 보더라도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경제가 발목을 잡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사법당국은 지난해 2월부터 삼성전자 수원본사를 비롯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물산 등을 19차례나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으로 모든 업무가 마비되는 일이 무려 20번 가까이 반복됐다는 얘기다. 압수수색으로 인한 삼성 직원들의 ‘사기저하’와 ‘피로도 누적’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지경이다.

‘포스트 반도체’로 불리던 바이오산업도 ‘올 스톱’ 상태다. 정부는 지난 5월 바이오 산업을 국가 주력산업으로 선정하고 적극적 지원을 약속함과 동시에, 기업에 보다 많은 투자를 당부한 바 있다. 삼성도 이에 부응해 인천에 부지를 마련하고 CMO 제4 공장 증설을 논의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이오 산업에 대한 ‘장밋빛’ 희망은 곧 ‘잿빛’으로 바뀌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김태한 사장을 비롯해 주요 경영진에 대한 검찰 수사로 정상적인 업무를 보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공장 증설 논의 역시 표류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분식회계 여부조차 불명확한 상황에서 '증거 인멸' 등 곁가지 사항으로 경영진을 압박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증선위의 분식회계 판단에 고개를 끄덕이는 학자는 많지 않다. 상당수의 회계전문가들은 증선위의 분식회계 판단에 강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더욱이 같은 사안을 3차례나 들여다 본 금융감독원이 매번 다른 의견을 내놨다는 사실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금감원의 갈지자 행보는 "과거에는 죄가 아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죄"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 '뇌사' 상태 빠진 삼성 '컨트롤 타워'… 웃음 짓는 외국 경쟁기업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후 전자·전기 계열사의 사업을 지원하고 조율하기 위해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이 TF는 삼성전자 계열사 전반을 컨트롤하는 중추신경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이 불거지면서 ‘증거인멸’ 혐의로 다수의 임원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고 말았다. 기업으로선 ‘뇌사’나 다름없는 업무공백 상태에 놓이고 만 셈이다. 최근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인수합병(M&A)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반면, 외국의 거대 IT기업들은 삼성이 주춤한 틈을 놓치지 않고 크고 작은 인수합병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구글을 중심으로 한 M&A 이슈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거론된 것만 13건에 이른다. 애플과 아마존도 각각 12건, 10건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고작 3건의 M&A를 성사시키는데 그쳤다. 삼성이 얼마나 위축돼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은 통제할 수 없는 대·내외 리스크로 인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재용 부회장 등 핵심 경영진은 2017년부터 시작된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현재까지도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유럽 등 해외에서 소기에 성과를 거두며 성장 발판을 마련한듯 보였지만 사업 외적인 '분식회계' 사건에 휘말려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어려운 경제를 풀어갈 해법은 기업의 기(氣)를 살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기업이 열심히 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급선무다. 기업의 성공은 곧 경제의 성공이자 정부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기업의 발목을 놓아줄 때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