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4> 조선시대 메르스 전염병 '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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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4> 조선시대 메르스 전염병 '역질'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1.2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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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각 지방에 역질(疫疾)이 성행한다. 각 수령은 구료(救療)에 힘쓰라.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젊은 나이에 죽을 것이다. 내가 심히 안타깝게 여긴다. 향소산(香蘇散) 십신탕(十神湯) 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 소시호탕(小柴胡湯) 등의 약을 각 도의 관찰에게 보낸다. 약의 바른 처방으로 백성을 구하라." <세종 1년 5월 1일>

역질(疫疾)은 전염병이다. 근래 유행했던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신종플루(A형 독감) 등과 유사한 질환이다.

역질은 세종실록에 34번 나오고, 조선왕조실록에는 1천 건 이상 실려 있다. 옛사람이 가장 두려워한 질환이 다. 첨단 의료기관과 방역시설이 없던 옛 시대에는 역질이 발생하면 한 지역이 초토화됐다.

한의사 최주리

역병(疫病)으로도 불렸던 역질이 돌면 백성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을이 폐허가 되고, 고을 행정이 마비됐다. 한양에서는 전염병이 유행하면 환자를 도성 밖으로 내보내 격리했다. 도성 밖에서 활인서(活人署) 소속의 의사와 의학을 아는 무녀(巫女)가 환자를 보살폈다.

격리 조치는 왕족도 마찬가지다. 왕비 등 왕실 가족이 역병이 걸리면 피난을 하게 했다. 왕도 가족이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전염병은 죽은 사람 수습도 어렵게 한다. 고려 말 조선 초만 해도 역질에 걸려 죽은 사람을 산에다 놓고 풀로 덮어 장사하거나 나무 가지에 매달아 두는 일이 많았다. 역질 확산 걱정에 시신 수습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재앙 수준의 전염병은 인구 구조의 변화도 불러올 정도였다. 족보학자인 이병창 가승미디어 대표는 “전염병이 창궐할 무렵의 한 집안에서 부자, 부모 등이 함께 죽은 기록이 많다. 이 같은 현상이 지역과 시기에 차이를 두고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처럼 무서운 역질에 대해 세종도 무척 고민을 했다. 임금은 약재를 통한 실제적인 치료, 위생환경 개선으로 확산 방지, 그리고 제사를 통한 백성의 심리적 안정책을 취했다.

먼저, 약재치료다. 세종은 전염병이 창궐한 1년 5월 1일에 약재를 전국의 수령에게 내려 환자 치료에 전념토록 한다. 임금은 6년 2월에도 각 고을에 향소산 등의 약재로 조제하게 하고,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신속한 치료를 지시한다.

또 의료 인력 부족을 고려해 환자에게 죽을 먹이도록 무녀를 고을에 무시 출입하도록 했다. 세종의 뜻은 훗날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에 ‘환자가 가난하여 약을 구하지 못하면 관에서 지급하라’는 구절로 승화된다.

다음, 위생환경 개선이다. 임금은 역질로 죽은 사람을 전원 매장하게 한다. 당시 부자거나 세력이 있는 사람은 역질로 죽으면 매장을 했다. 그러나 가난하거나 후손이 없어 산에 방치된 시신도 있었다. 이에 임금은 산에 풍장된 시신을 관리의 책임 아래 모두 묻도록 해 전염병 확산을 막았다.

또한 심리적 안정책을 취했다. 경건하게 여제(厲祭)를 지냈다. 여제는 불운하게 죽거나 제사를 받지 못하는 여귀(厲鬼)를 위로하는 제사다. 옛사람은 여귀가 역질 등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었다.

예기(禮記)에는 왕이 지내야 할 일곱 가지 제사 중의 하나로 후손 없이 죽은 옛 제왕을 기리는 행위도 포함돼 있다. 여제는 전염병이 가라앉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불안해하는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키려는 행위였다.

세종이 역질에 적용한 승마갈근탕, 소시호탕, 향소산 등의 약재는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은 상한(傷寒)이나 온역(溫疫) 및 풍열(風熱)로 열이 심하고 두통이 있는 증세를 치료한다.

또한 허실에 상관없이 두창이 이미 발생하였거나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때에도 모두 치료할 수 있는 상용 약물로 활용되었다. 홍역 치료법으로 보인다. 소시호탕(小柴胡湯)은 온역 혹은 감모(感冒)로 인해 한열(寒熱)의 왕복이 학질과 같고, 혹은 발열과 함께 흉민감, 식욕 부진, 구토를 동반하는 병증을 치료한다. 향소산은 향부자, 자소엽, 감초, 진피 등으로 구성되어 전염병의 초기나 일반적인 감기 증세도 널리 사용했다.

역질에 해당하는 오늘날 전염병에는 이런 한약 처방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일본에서는 5세부터 35세까지 고열을 동반한 인플루엔자 확진 환자 18명에게 ‘은교산’을 1일 3회 투여했다.

그 결과 16명이 24시간 이내에, 나머지 2명이 각각 48시간과 72시간 이내에 체온이 37.4℃ 이하로 떨어지고 일주일 동안 재발이 없었다는 임상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제59회 일본 동양의학회 학술총회 강연 요지집·2008년) 이 같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일본 의사들로 구성된 동양의학회에서는 독감 치료에 한약 치료, 혹은 한약·양약 병행치료를 권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약 탕제를 상시 복용한 경우 인플루엔자 유사증상(ILI) 발생을 감소시켰다는 학술논문이 발표되었다.(Strait Pharmaceutical Journal·2013년) A형 인플루엔자 소아환자에게 해열까지 걸리는 시간을 비교한 결과 항바이러스제만 복용한 경우 평균 24시간이 소요된 반면 항바이러스제와 마황탕 병용은 18시간, 마황탕 단독투여는 15시간으로 현저하게 시간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Phytomedicine·2007년)

이밖에도 미국 내과학회지에는 성인 인플루엔자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에서 위약 복용군은 전체 실험군 중 34%가 항생제를 처방받은 것에 비해 한약인 ‘마행감석탕 合 은교산’ 복용군은 9.7%만이 처방받았다. 또한 위약복용군의 발열 증상 시간은 26시간이었지만 한약 복용군은 16시간으로 약 37%가 단축됐다는 연구결과가 게재되기도 했다.(Annals of internal medicine·2011년)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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