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6> 원경왕후와 학질 가족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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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6> 원경왕후와 학질 가족력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2.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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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상왕이 말씀 하셨다. 내가 그동안 대비와 주상이 간 곳을 몰랐다. 오늘에야 정황을 알게 됐다. 주상이 대비의 학질(瘧疾)을 걱정해 몸소 필부의 행동을 친히 하였다. 대비의 병 치료를 위해 단마(單馬)에 환관 두 명만 데리고 궐 밖으로 나갔다. 심히 그 효성을 아름답게 여긴다." <세종 2년 6월 7일>

상왕은 태종, 대비는 원경왕후, 주상은 세종이다. 원경왕후는 세종 2년 5월 27일 학질을 앓기 시작했다. 세종은 낙천정으로 어머니를 찾아뵙는다. 이후 대궐을 비운 임금의 종적은 측근도 알지 못했다. 임금은 극비리에 어머니를 모시고 궐 밖으로 나가 간호를 했다.

최주리 한의사

학질은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동의보감에서는 학질을 '처음에는 솜털이 쭈뼛 서고, 하품이 나며 춥고 떨린다. 턱이 마주치고 허리가 아프다. 한기가 가시면 몸의 안과 밖에서 모두 열이 발생하며 두통이 심하다. 목마름도 이어져 찬물만 찾는다‘고 묘사했다.

세종은 어머니의 학질을 떼기 위해 개경사에서 승려와 함께 기도했다. 또 최전의 집에서 피접하고, 이궁(離宮)인 남교(南郊) 풀밭에서 휴식을 취했다. 갈마골 박고의 집, 송계원 냇가, 선암 동소문, 곽승우와 이맹유의 집으로 옮겨가며 원경왕후 치료에 전념했다. 임금의 동선은 열흘 후에야 아버지인 태종에게 알려졌다. 태종은 신하로부터 그동안 임금의 행적 보고를 받았다. 태종은 아들의 효성에 감동 받았다.

원경왕후의 학질은 막내아들인 성녕대군 죽음이 원인이다. 태종은 원경왕후의 학질 원인을 성녕대군 죽음으로 보았다. 2월 4일 막내아들을 잃은 원경왕후는 크게 상심해 자주 식사를 걸렀다. 이로 인해 쇠약해져 학질을 이겨낼 만한 힘이 없었다.

세종은 어머니의 학질이 오래되자 치료를 위해 널리 명의를 찾았다. 세종은 낮과 밤 모두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탕약과 음식을 친히 맛본 뒤 어머니에게 올렸다.

세종은 치료를 위해 왕실의술, 민간의학은 물론 둔갑술 등 비상식적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머니 병구완을 위한 간절한 마음의 발로였다.

그런데 학질은 세종의 가족력이었다. 어머니인 원경왕후는 세 번이나 학질을 앓았고, 형인 양녕대군, 본인인 세종, 아들인 수양대군이 모두 학질로 고통 받았다.

세종은 3년 8월 2일에 학질로 버거워하는 양녕대군에게 환관을 보내 문병하고, 어의(御醫)와 주문(呪文) 읽는 승려로 하여금 치료하게 했다. 임금은 28년 4월 12일에는 아들 수양대군이 학질에 걸리자 발을 동동 구른다. 세종은 예전에 학질로 힘들어할 때 완치시킨 어의 노중례를 찾았다. 그러나 그는 세종의 학질을 치료할 때 쓴 약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왕실에서는 학질에 어떤 약을 썼을까. 증상에 따라 육화탕과 같은 탕약, 침으로 열을 내리는 방법 등을 병행했다. 육화탕(六和湯)은 더위가 심장과 비장을 상하게 하여 구토, 설사, 곽란, 근육 뒤틀림, 부종, 학질 등에 쓰이는 구급약이다.

학질, 말라리아는 현대에도 진행 중인 질병이다. 우리나라는 구한말 이후 위생상태가 개선되고, 기생충 약물이 도입되어 현저히 감소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소멸국면에 이르렀다, 1984년 두 사례 이후 토착형 말라리아가 근절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1993년 휴전선 근처에서 재발생후 위세를 넓히고 있다. 2016년도 국내 발생 사례 중 초발 및 재감염 환자는 467건이나 된다.

말라리아는 2015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중국의 도유유(屠呦呦)가 개발한 치료제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전통의서인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의 학질 치료법을 참조해 청호(靑蒿)에서 말라리아 치료 유효성분을 추출했다.

치료제 개발의 단서인 책의 문구는 ‘청호일악(靑蒿 一握) 이수이승(以水二升) 지교취즙(漬絞取汁) 진복지(盡服之)’이다. 청호 1줌을 물 2되에 담근 후 걸러 즙을 짜 다 마시는 것이다. 이 구절을 통해 비가열 추출로 항 말라리아 성분을 찾았다.

도유유(屠呦呦)는 중의학 원서, 민속처방 및 경험 있는 중의사 인터뷰를 통해 항 말라리아 활성이 예상되는 처방을 수집했다. 약 200개의 중국 처방에서 380여 개의 추출물을 스크리닝 했지만 실패했다. 거듭되는 노력 끝에 찾은 것이 청호의 신선한 잎에서만 추출되는 신약인 아르테미시닌이었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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