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 중풍과 세종의 가족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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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 중풍과 세종의 가족력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1.2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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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요즘 중풍으로 갑자기 죽은 사람이 20여 명이나 된다. 응급 치료법을 대궐 안과 병조에 방(榜)으로 붙이게 하라." <세종 즉위년 11월 5일>

세종이 즉위한 첫 겨울이다. 동지총제 이춘생(李春生)이 중풍으로 사경을 헤매다 목숨을 건졌다. 이춘생이 살아나자 상왕 태종은 중풍 대처법을 여러 곳에 글로 써 붙이게 한다. 또 최근에 20여명이 갑자기 죽었음을 말한다.

한의사 최주리

중풍(中風)은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의식을 잃거나 팔다리를 쓰지 못하는 증상이다. 마치 큰 나무가 바람에 쓰러지는 것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관인 이춘생의 직책 동지총제는 지금의 사단장이나 군단장에 해당된다. 평생 야전에서 생활한 건장한 장군이 쓰러져 생사의 기로에 서자 태종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태종이 중풍에 민감한 것은 가족력으로도 이해된다. 아버지 태조가 중풍으로 승하하고, 형인 정종이 중풍으로 고생했기 때문이다. 태종 8년 1월 19일 실록에 ‘태상왕(태조)이 갑자기 심한 풍질(風疾)에 걸렸다’는 기록이 있다. 태조는 이때 매우 위험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침구의(鍼灸醫)의 잘못으로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던 태종이 말을 달려서 아버지 숙소인 덕수궁을 찾았다. 어찌 빨리 달렸던지 수행원들이 따라오지도 못한 데서 급박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다음날 태조는 위험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뇌출혈 증상으로 병석에 누운 태조는 호전과 악화 속에 쓰러진 지 4개월 만인 5월 24일 승하한다.

이날 담(痰)이 성(盛)한 태조는 소합향원(蘇合香元)을 복용하고, 응급상황이 되자 태종이 청심원(淸心元)을 올렸으나 삼키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한의학에서는 중풍은 협의의 범주에서 뇌졸중(stroke)에 속하지만 본래 다른 신경계 질환이나 감염질환 등의 범주도 일부 포함하는 넓은 개념의 용어다. 한의학연구원과 대한중풍학회 중심으로 2014년에 발표한 '한국형 중풍변증 표준안'에는 임상지표에 따라 중풍을 화열증(火熱證), 기허증(氣虛證), 음허증(陰虛證), 습담증(濕痰證)의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대개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중풍은 병태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도 한다. 갑자기 쓰러져 의식장애와 함께 반신마비, 언어장애 등이 나타나는 중장부증(中臟腑證)과 큰 의식장애 없이 반신마비, 구안와사, 언어장애, 현훈, 두통 등이 보이는 중경락증(中經絡證)이다.

별안간 심각한 상태가 된 태조와 사경을 헤맨 이춘생은 중경락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태조에 대한 처방은 화열 완화 약재가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태조는 포도를 무척 즐겼다. 포도 철이 지난 늦가을에도 찾은 기록이 있다. 이는 입 마름, 진액부족, 화열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포도는 열 완화와 갈증 해소에 좋다. 중풍은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과 연관 깊다. 당뇨로 오랜 기간 고생한 세종도 할아버지 태조, 큰아버지 정종처럼 풍 질환에 취약한 체질로 볼 수 있다.

급박한 상황의 중풍은 응급조치로 손가락과 발가락 끝에서의 사혈, 회복 침 요법, 혈 자리 뜸 요법을 한다. 약물로는 양격산화탕, 청폐사간탕, 용뇌소합원, 우황청심환, 성향정기산, 소속명탕 등이 증상에 따라 가감 처방 된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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