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로사 열연 '반덤핑' 카드 만지작… 재압연사 "고로사 배만 불려"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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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고로사 열연 '반덤핑' 카드 만지작… 재압연사 "고로사 배만 불려" 비난
  • 박진철 기자
  • 승인 2024.02.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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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덤핑 놓고 상공정·하공정 상반된 시각
전체 철강산업에 유리한 조치 '의문'
하공정 업계, 구매 경쟁력=수익성
고급재-범용재 샌드위치 문제 해결해야

 

이달 7일 재가동을 시작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에서 열연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사진=포스코그룹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 피해 이후 재가동을 시작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에서 열연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사진=포스코그룹

 

철강업계가 최근 반덤핑 소식으로 심란하다. 상공정과 하공정 간에 워낙 이해관계가 첨예한 상황이라 더욱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입 열연강판 반덤핑 관련으로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에서 냉연강판과 강관 하공정 업체들을 모아놓고 의견을 취합했다. 

반덤핑 소문으로 업계가 들썩이면서 관에서 사태 파악에 나선 것이기도 하지만, 산자부의 움직임이 수입 열연강판 제품 반덤핑이 임박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수입산 열연강판 계약을 전면 중단한 바 있고, 포스코홀딩스는 지난달 31일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반덤핑 제소를) 하나의 가능한 수단으로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제철 역시 반덤핑 제소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덤핑 카드를 보는 상공정·하공정 업계의 상반된 시각

국내 고로사들은 반덤핑이 필요한 이유로 △수입 열연강판 비중이 늘면서 시장 가격을 교란하고 있는 데다 △수입재 범람으로 국내 철강산업의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장기적으로 국내 철강산업 경쟁력이 악화할 것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올해 세계일류상품에 신규 등재된 SAW A671/A672 압력용기용 강관. 사진=현대제철
2022년 세계일류상품에 신규 등재된 SAW A671/A672 압력용기용 강관. 사진=현대제철

 

반면, 고로사에서 열연강판을 구매해 냉연강판과 강관을 제조하는 하공정 업계의 반응은 고로사와 온도 차가 크다. 동국씨엠, 세아씨엠, KG스틸 등 이들 하공정 업계 관계자들은 수입 열연강판 반덤핑 카드가 국내 고로사의 독과점을 심화하고, 결국 열연강판의 가격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수입 열연강판 반덤핑 조치는 국내 산업 기반 보호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고로사들의 이익만을 대변해 주는 방책이라는 비난도 있다. 국산 열연강판과 수입 열연강판의 공정한 가격 경쟁을 막는 반덤핑 조치 때문에 오히려 최종 소비자가 얻는 혜택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열연강판을 생산하는 고로사뿐만 아니라, 이를 가공해 냉연강판과 강관을 생산하는 하공정 업계도 국내 철강산업에서 중요한 플레이어인 만큼, 고로사의 주장만을 담은 반덤핑 카드가 국내 철강산업 전체의 이익을 올곧이 반영한 것이냐는 비난이다. 

반덤핑 제소는 외국 상품이 국내 시장 가격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에 수입돼 국내 산업이 피해를 보았다고 판단될 경우 꺼낼 수 있는 카드다. 불공정 무역행위를 방지하는 자국 산업 보호 제도의 일종으로, 해당 제소가 받아들여지면 정상적인 가격과 덤핑 가격의 차액 범위 내에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열연강판은 건설산업 등 여러 곳에서 그 자체로도 쓰이는 제품이지만 하공정을 통해 자동차구조용, 강관용, 고압가스용기용 등 더욱 다양한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원소재 제품이다. 이를 통해 자동차와 건설, 조선, 강관, 산업기계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두루 사용된다. 

특히, 열연강판은 연간 철강재 수입량의 20~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만큼 반덤핑 카드 논란이 자주 발생하고, 철강업계 전반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품목이다. 
 

태풍 힌남노 피해에 따른 '특이점' 발생 

국내 열연강판 시장에서 포스코와 현대제철 두 고로사가 차지하는 외부 판매용 열연강판 생산 비율은 포스코가 80%, 현대제철이 20%로 알려졌다. 

열연강판을 소재로 사용하는 냉연업체들은 이들 과점기업이 반덤핑 제소를 하는 것은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국내 시장에서 고로사들이 압도적인 공급자 우위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수입산을 견제할 필요가 없다고도 지적한다. 

 

2022년 9월, 포항제철소 및 협력사 임직원들은 제11호 태풍 '힌남노' 피해 복구에 총력을 다했다. 포항제철소 연주공장에서 진흙을 퍼내고 있는 직원들. 사진=연합뉴스
2022년 9월, 포항제철소 및 협력사 임직원들은 제11호 태풍 '힌남노' 피해 복구에 총력을 다했다. 포항제철소 연주공장에서 진흙을 퍼내고 있는 직원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열연강판 수입량이 늘었다는 고로사들의 주장과 관련, 하공정 재압연사 관계자들은 지난해 수입재 열연 물량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오히려 적은 물량이었다고 토로한다. 다만, 지난해 수입량이 그 전해보다 늘어난 데는 2022년 9월 발생했던 태풍 힌남노 피해로 몇 달간 심화했던 포스코 열연의 공급 문제가 컸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태풍 피해 이후 포스코가 적자를 회복하기 위해 열연강판 가격을 3~4개월 만에 톤당 약 20만원 올렸던 점도 수입 제품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힘을 보탰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고로사 관계자들은 국가 안보 위협과 국내 철강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워 열연 반덤핑 제소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해외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반덤핑 규제를 통해 내수 가격을 방어하고 지키려 노력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수입 철강재 안전국 취급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세계 6위 조강 생산국으로서 내수 대비 수출 비중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국내 철강산업 수급 구조상 반덤핑 카드를 쉽게 꺼내기 힘든 구조인 것도 사실이다. 
 

고급재-범용재 사이 샌드위치 된 국내 철강산업 문제점부터 해결해야

한편, 때만 되면 불거지는 열연강판 반덤핑 카드 논란과 관련해서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샌드위치 신세가 된 국내 철강산업의 문제점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열연을 비롯한 국내산 철강재 품질이 오랜 기간 그대로인 데 반해 중국 등 성장 국가들의 철강재 품질 수준이 빠르게 향상되면서, 일본이나 유럽 등 고급재 철강재와 중국 등 범용재 철강재 시장에서 국산 철강재의 입지가 좁아진 문제는 한 해 두 해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특히 중국산 제품의 일반적인 품질이 국내산 대비 품질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반덤핑을 통해 국산 하공정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게 옳은 길인지 묻고 싶다"고 일갈했다.
 
하공정 재압연사들은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가 현실화하면 과점 체제 속에서 열연강판 가격이 톤당 최소 5만원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수입 열연강판 역시 비슷한 수준의 가격으로 인상되면서 하공정 업계가 전체적인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나 냉연업계에서는 최종 수요처인 가전, 자동차 부품 업계의 구매력 우위가 남다르다 보니 납품 단가의 적기, 적정 반영에 애를 먹는 상황이 부지기수로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연 반덤핑 카드가 현실화한다면 고로사의 이익과 수요업계의 이익 사이에서 냉연업체들의 희생만 확대되는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반덤핑 카드 상공정-하공정 빈익빈 부익부 부채질 의견도

이 밖에도 열연강판 반덤핑 카드가 상공정 업계인 고로사와 하공정 업계인 단순압연 업계의 영업이익률 격차를 더욱 벌려놓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빚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고로 전경.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당진공장 고로 전경.사진=현대제철

 

통상 포스코와 같은 고로사들은 영업이익률이 8~10%를, 단순 재압연업계는 3~4% 수준을 기록해 왔다. 그런데 작년에는 포스코가 7.5%, KG스틸과 동국씨엠이 각각 9.7%와 5.6%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바 있다. KG스틸은 최근 4년간 가장 높은 영업이익률이었고, 동국씨엠 역시 과거 2~3% 수준대를 보여온 것과는 달랐다. 다만,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태풍 힌남노 피해로 포스코가 입었던 일회성 수익성 악화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특히, 하공정 냉연업계 관계자들은 원소재 구매 가격 경쟁력이 곧 완성 제품 가격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업계 특성상, 저렴한 수입 원소재 구입을 막는 열연강판 반덤핑 카드는 곧바로 하공정 업계의 경쟁력 저하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 재압연 업체 관계자는 "열연은 소재이자 원소재로 고로사 독점 생산 품목이고, 내수 물량이 모자라기에 자국 산업 보호라는 반덤핑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철강산업을 보호하고 자국 산업을 진흥하려면 최종 제품(냉연강판, 강관)에 대한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품질 좋고 값싼 원료를 풍부하게 공급해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철강산업 개발이 덜 되고, 내수만 생각하는 국가라면 수입재의 덤핑 판매를 견제해야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철강재 절반을 수출해야 하는 국가"라면서 "반덤핑으로 원소재 공급량이 모자라게 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철강재의 가격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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