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發 삼성생명법 논란... 전문가들 "경영권 노린 惡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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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發 삼성생명법 논란... 전문가들 "경영권 노린 惡法"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0.06.23 0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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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삼성생명·삼성화재 지분 매각 강요
계열사 지분 시가로 산정, 총자산의 3%만 인정
"경제민주화라는 선한 가면 쓰고 경영권 약탈하겠다는 것"
2020. 6. 16 보험업법 일부개정안. 사진=양일국 기자
2020. 6. 16 보험업법 일부개정안. 사진=양일국 기자

보험회사가 보유한 타사 주식·채권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해 총자산의 3%를 초과할 경우 처분토록 하는 보험법 개정안이 재차 발의됐다.

개정안이 적용될 경우 삼성생명·삼성화재는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일부 매각해야 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해당 법안과 관련해 "삼성의 지배구조를 약화시켜 건실한 계열사를 '주인없는 회사'로 전락시킬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6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보험사가 타사 주식·채권을 산정할 때 취득 원가를 기준으로 해온 것을 시장가격으로 대체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보험업법은 보험사의 타사 주식·채권 보유는 총자산의 3%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개정안은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보험사의 타사 주식·채권을 평가하면 현재 가치를 자산운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봤다.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IMF 사태 이후 우리나라의 모든 회계처리는 시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유독 보험업권만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한 것은 특혜 시비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만약 개정안이 적용될 경우 실제로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기업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뿐이다. 세간에서 이번 개정안을 '삼성생명법'이라 부르는 이유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취득한 시점은 1980년 이전으로 1주당 약 1,072원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취득원가 기준으로 산정할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보통주 5억815만7,148주의 가치는 5,447억원이다. 이는 올해 3월 기준 삼성생명 총 자산 309조원의 0.18%로 제한선인 3%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라 1주당 5만2,300원의 시장가격을 적용할 경우 총액은 26조5,762억원에 달한다. 이는 삼성생명 총 자산의 8.6%에 해당하며 계열사 주식 보유한도를 약 17조원 초과하는 액수다. 삼성화재 역시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 8,880만2,052주를 시가로 산정하면 4조6,443억원으로 보유 한도를 2조원 초과하게 된다. 

결국 이번 개정안이 적용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약 20조원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삼성의 순환출자식 지배구조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해당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야당의 반발로 무산됐다. 특정 기업을 노린 공정하지 못한 법안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여당이 177석을 차지한 21대 국회에선 개정안이 재차 무산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국회 관계자는 22일 "여당에서 법제사법위원회까지 가져간 이상 이변이 없는 한 (통과) 된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 전해지자 업계·학계 전문가들은 일제히 "보험업권의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시가 기준으로 주가를 산정하겠다는 것은 보험업권의 기본적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30~40년을 보고 자산을 굴려야 하는 보험사는 장기채와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보험사는 은행이나 증권사처럼 단기이익을 위해 빈번하게 거래를 할 수 없으므로 시가 적용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다른 관계자는 "국내 손꼽히는 우량주를 매각하고 타 회사 주식을 사는 것이 고객 입장에서 무슨 이익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고객의 돈으로 돈놀이를 한다'는 일각의 부정적 여론에 대해선 "재무제표상 고객이 납입한 금액은 부채, 보유한 주식은 자본으로 집계되는데 기본적 사실관계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이병태 한국과학기술원 경영공학부 교수는 "소유·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선한 가면'을 쓰고 있지만 사실상 국가가 삼성 일가의 경영권을 빼앗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가 우호지분을 잃게 될 경우 약 10%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1대 주주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병태 교수는 "오너 경영을 통해 오늘날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 만약 주인 없는 공기업이 되면 삼성의 신화는 끝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삼성생명법 외에도 21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정부와 여당에선 사실상 삼성을 정조준한 각종 규제 법안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여·수신과 금융투자, 보험 중 2개 이상 업종을 운영하는 금융그룹을 감독하는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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