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님재판에 CEO 목 날아갈 뻔... 삼성생명 환급 사례로 본 '자살보험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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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님재판에 CEO 목 날아갈 뻔... 삼성생명 환급 사례로 본 '자살보험 사태'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0.07.0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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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300억대 추징액 환급... 분쟁 종결
'자살 특약' 약속 어긴 보험사들이 논란 초래
2016년 뒤늦게 보험금 지급, 수백억씩 추징 당해
전문가들 "불완전약관 서로 베껴 쓴 후진국형 사고,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야"

삼성생명이 지난해 세무조사 결과 국세청에 납부한 수백억 원의 추징세액을 올해 초 돌려받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해 삼성생명 정기 세무조사에서 자살보험금 지급액 비용처리가 잘못됐다며 부과한 추징액을 환급했다. 환급액 규모는 3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번 환급은 2019년 8월 조세심판원이 같은 사안에 대해 생보사들의 불복 신청에 인용 결정을 내린데 따른 것이다. 삼성생명은 오렌지라이프가 조세심판원에서 추징금 환급결정이 내려진 직후 세무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국세청에 이의제기하는 방식으로 행정심판 없이 환급받았다. 

삼성생명이 추징세액을 돌려받은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20여년에 걸친 자살보험 사태가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지난 2000년 촉발된 '자살 보험' 사태는 일차적으로 보험사들이 재해보험에 "자살해도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특약을 끼워 넣은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국내 생명보험업계는 자살 등의 재해로 사망하면 일반 사망보험금보다 보험금을 2~3배 지급하는 특약 상품을 판매했다.

이후 자살자 유가족이 보험금을 청구하자 보험사들은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 해당 약관은 실수로 들어간 것"이라는 논리로 일반 사망보험금만을 지급하면서 법정 분쟁으로 비화됐다.

2016년 5월 대법원은 '약관을 잘못 만든 보험사의 책임'을 들어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되 소멸시효 2년이 지난 건에 대해서는 지급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2015다 243347 판결). 이후 보험사들은 2001~2010년 판매한 자살보험금 특약 가입자들에게 보험금과 이자를 뒤늦게 지급했다. 소멸시효가 지난 건에 대해서는 자살에 따른 특약 보험금을 제외한 금액만을 지급했다. 

문제는 재판 기간이 길어지면서 소멸시효가 이미 지난 고객들이 속출했다는 것이다. 2016년 기준 총 자살보험금 미지급액 2,629억원 가운데 76%에 달하는 2,003억원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했다. 

2016년 6월 금융감독원은 소멸시효와 관계 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업체를 중징계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에 ING생명, 신한생명, KDB생명 등이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모두 지급하겠다고 물러섰다.

2016년 5월 12일 기준 보험사별 미지급 현황. 그래프=시장경제신문
2016년 5월 12일 기준 보험사별 미지급 현황. 그래프=시장경제신문

3개월 후 대법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뒤 청구된 자살보험금은 지급 의무가 없음을 재확인했지만 금융당국은 2017년 2월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삼성생명, 한화생명 대표이사에 문책을 경고했다. 문책이 확정될 경우 대표이사 연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2017년 3월 삼성생명은 자살보험금 원금에 지연이자까지 더해 1,740억원을 모두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교보생명은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직전 보험금 672억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해 소나기를 피해갔다.

2017년 5월 금융위원회는 교보생명에 4억2,000만원 과징금과 1개월 영업정지,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에 각각 8억9,400만원, 3억9,500만원 과징금과 1년 간 신사업 진출을 제한하는 최종 징계안을 확정했다.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세 명의 CEO들은 가까스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보험사들의 수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2018년 8월 국세청은 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을 한 번에 몰아서 지급하면서 그 해 늘어난 비용 만큼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액의 추징세액을 부과했다. 

삼성생명을 비롯해 교보생명, 오렌지라이프(당시 ING생명), 미래에셋생명 등이 국세청에 많게는 수백억원을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보험사들은 조세심판원에 부당함을 호소해 차례 차례 환급결정을 받아냈다. 교보생명은 2018년 12월 조세불복 심판청구를 신청해 올해 2월 추징금을 돌려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신한생명, 미래에셋생명 등에 대해서도 환급결정이 내려졌다. 추징세액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동양생명은 행정심판 청구에 드는 비용을 고려해 불복을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보험 업계 전반의 신뢰와 전문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들 또한 지난했던 자살보험 사태는 금융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후진국형 사고'라고 평가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시 보험사들이 불완전한 약관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서로 베껴 쓴 것이 화근이 됐는데 지금 돌아보면 한편의 코미디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사법당국의 결정에 반하는 명령을 내리고 이른바 '원님 재판'식으로 보험사들을 몰아간 것도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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