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재판부 "역학조사 증명력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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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재판부 "역학조사 증명력 고민"
  • 유경표, 최유진, 한정우 기자
  • 승인 2023.04.2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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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케미칼·애경산업 前 대표 등 3차 공판
역학조사전문가, 검찰 증인으로 나서
검찰, 관련 논문 3건 추가 증거 제출
증인 "CMIT·MIT와 폐질환 인과관계 있다"
'연구결과 대표성' 묻는 반대신문에 "잘 모른다"
4차 공판서 반대신문 계속... 6월 8일 예정
재판부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하더라도 '어드민피'는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사진=시장경제DB

"옥시 사건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판단할 것이다. (피해자들의 증상·질병과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 사이) ‘인과관계 적정 여부’에 대해서도 재판부 구성원들이 검토 중이다."

27일 서울고법 형사5부(서승렬 부장판사)는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 등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 사건’ 항소심 3차 공판에서 "적어도 올해 안에 종결하려 하지만, 합의 과정에서 궁금한 점이 생기면 다시 변론을 들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인과관계의 적정성’을 중점적으로 살피겠다는 뜻을 나타내면서, ‘역학조사 연구방법의 적정성’ 혹은 ‘그 결과에 대한 형사법상 증명력’을 놓고 치열한 법리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이 사건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쟁점은 가습기살균제 원료성분 중 하나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과 역학조사 결과 사이 인과관계 판단과 관련이 깊다.

앞서 2021년 1월,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 이용자들에게 발현된 중증 폐질환과 CMIT·MIT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는 이 사건 기초사실과 채택된 증거, 증인 진술 등의 증명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옥시가 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성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PGH)의 경우, 별도로 진행된 사건을 통해 인체 유해성이 충분히 입증됐다. 반면 CMIT·MIT를 원료로 사용한 애경산업 판매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해서는 유해성 입증 여부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애경산업은 CMIT·MIT를 원료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했으며, SK케미칼은 동 원료를 공급했다. 검찰은 두 회사 전직 대표 등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했다.

이 사건 1심은 2011년 시행된 동물실험 등의 결과를 볼 때, 위 성분과 폐질환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1심 심리과정에서 의학과 자연과학을 전공한 전문가 그룹 증인들은 “과학계에서 통용되는 연구방법론 등을 통해 위 성분과 폐질환 사이 인과관계 및 인체 유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재판부는 “검찰 측 증인들의 진술은 우리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인과관계의 증명법칙상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특히 검찰 측이 유해성 입증의 유력한 증거로 제시한 ‘기도점적 방식’ 실험은, 가습기의 일반적 사용 환경(공기 중 기체 흡입)과 상이하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증명력 측면에서 의심을 받았다. 실험에 사용된 약품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점도 1심 재판부의 심증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검찰은 앞선 항소심 2차 공판을 앞두고 역학조사 전문가인 김재용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를 증인 신청했다. 김 교수가 작성에 참여한 3편의 논문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제출된 논문은 ▲‘가습기살균제 호흡기계 건강피해 통합 판정체계 구축 연구’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이용한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규명연구(III)’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질환 간 역학적 상관관계보고서 제2판 – 간질성폐질환, 천식, 폐렴, 기관지확장증, 급성 상기도염증’ 등이다.
 

검찰, 역학조사전문가 증인 신문 

김 교수는 대학에서 예방의학을 전공한 역학조사 전문가로 이 사건 1심 심리과정에서도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검찰이 제출한 위 논문은 다양한 연구방법론 중 준실험(시계열 분석 등), APC(Age-Period-Cohort) 분석, 유동 코호트 분석 등을 통해 두 화학물질과 폐질환 사이 인과관계를 시사하고 있다. 이들 논문에는 CMIT 혹은 MIT로 제조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고 신고한 6333명을 대상으로, 제품 사용 전·후 천식 등 폐질환 발생률이 유의미하게 증감했음을 보여주는 데이터와 그 분석결과도 포함돼 있다.

김 교수는 이날 검찰 주신문 과정에서 ‘연구결과 두 물질과 폐질환 사이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취지로 자신의 견해를 정리했다.

“이 결과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사용 전에는 (피해자들도) 일반 국민과 같은 일반적인 사람들 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용이 얼마나 즉각적으로 큰 피해를 줬는지 볼 수 있고, 빅데이터가 아니고서는 이 결과를 내기 어렵다.”

이어 그는 ‘선행연구 결과를 종합할 때 가습기살균제는 천식과 역학적 상관관계가 있으며, CMIT·MIT 단독 성분 사용자 집단에서도 일관되게 초과 발생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검찰 신문에 “네”라고 답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채택한 실험방법론상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독성이 있는 가습기살균제를 사람을 상대로 실험할 수 없으므로,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준실험적 설계는 최적의 연구방법이며 가장 높은 신뢰도를 나타낼 수 있다.”

“역학연구에서 가장 크게 지적받는 것이 ‘선택적 비뚤림’(selection bias·실험 대상 선별에 있어서의 오류 혹은 왜곡)인데, ‘준실험’은 같은 실험 대상의 상태를 시계열적으로 비교하기 때문에 ‘선택적 비뚤림’이나 잘못된 대조군 설정 등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다른 연구보다 신뢰도가 높다.”

“소득수준과 성별, 연령, 거주 지역 이런 것들을 보정해, 제3의 요인이 분석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김 교수 답변과 검찰 제출 논문은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발병률 사이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추론에서 공통점이 있다.
 

변호인 반대신문 "역학조사 증명력에 근본적 의문" 

그러나 김 교수는 신문 과정에서 일부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역학조사 분석값 중 ‘CMIT·MIT’의 인체 유해성과 상반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모른다”라거나 “내가 작성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변한 점이 대표적이다. 다음은 이 부분 변호인 반대신문과 김 교수 답변. 

변호인 : 어린이 천식 검사소견 연구. CMIT·MIT성분 살균제와 천식 소견 연구는 피해 신고자 중 24명 어린이 대상으로 조사했다.

김 교수 : 잘 모른다.

변호인 : 직접 한 거 아닌가.

김 교수 : 아니다.

변호인 : 24명 어린이만 대상으로 한 연구인데 소수 인원 관찰한 결과가 대표성을 가질 수 없지 않나?

김 교수 : 예전에 고농도 노출된 어린이와 낮은 농도 노출된 어린이 검사해보니 차이가 나더라는 뜻이다. 실험실서 생쥐 대상으로 실험하더라도 많은 샘플을 필요로 하는 연구가 아니다.

변호인 : 이 연구는 인구집단 대표성이 없다는 거 동의하는가?

김 교수 : 애초에 그런 연구가 아니다.

변호인 : 연구 수행한 홍OO 교수도 환자가 적고 추적검사 이뤄지지 않아 임상적 유의성 규명 안되고 설문조사로 이뤄져 편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돼 있다.

김 교수 : 그런가?

(중략)

변호인 : 환자 대조군 연구는 노출 요인과 특정 질병요인 연구. 노출-비노출 대조 연구 맞나?

김 교수 : 그렇다.

변호인 : 천식 피해 양방향 분석은? 노출 안 된 사람은 조사하지 않았지?

김 교수 : 논문을 읽어본 적 없다. 

변호인단은 ‘6233명 피해자 집단 코호트 분석’과 관련돼, 집단 선별에 있어 ‘선택적 비뚤림’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변호인단은 “분석 과정에서 누락된 변수 등에 의해 '비뚤림'(bias·왜곡)의 일종인 생태학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증인신문에서 통계기법 등 전문적인 영역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만큼, 특별기일을 한 차례 열어 김 교수에 대한 신문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 사건 4차 공판은 6월 8일 속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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