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스모킹건?... 檢 제출 보고서, 증명력 인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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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스모킹건?... 檢 제출 보고서, 증명력 인정될까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3.06.0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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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3차 공판 분석
檢, 1심 선고 후 발간 환경부 보고서 증거 제출
"CMIT·MIT와 폐질환 '역학적 상관관계' 인정"
"역학조사 오류 보정... 보고서 신뢰도 높다"
변호인 반대신문서 '보고서 증명력' 허점 노출
"가습기 성분 구분 없이 이뤄진 연구결과 포함"
辯 "원심 배척 연구결과도 반영... 증명력 의문"
대법, "역학적 상관관계와 상당인과관계 별개"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 등 이달 8일 4차 공판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등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8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애경산업, SK케미칼 관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등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8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애경산업, SK케미칼 관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원재료 제조기업과 제품 판매기업 전직 대표 등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이 재판 흐름을 바꿀 '스모킹건'으로 제시한 추가 증거 가운데 일부 내용이 증명력 부재(不在) 논란을 빚고 있다. 특히 가습기살균제 성분을 구분하지 않고 이뤄진 연구로서, 이 사건 원심이 그 증명력을 배척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부분 항소심 재판부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가습기살균제 사건 항소심은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서승렬 부장판사)가 심리 중이다. 사건은 올해 4월 27일 3차 공판을 마치고 이달 8일 4차 공판을 앞두고 있다. 이 사건 피고는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 등이다. SK케미칼은 가습기살균제 원재료 CMIT와 MIT를 공급했으며, 애경산업은 동 재료를 주성분으로 하는 가습기살균제 완제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애경산업 제품 사용자 가운데 일부가 난치성 폐질환 등을 진단받으면서 옥시에 이어 애경산업도 시민단체로부터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 중 한 곳으로 지목을 받았다. 

검찰은 원재료를 공급한 애경산업은 물론이고 원재료를 공급한 SK케미칼 대표 등 임직원에 대해서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 사건을 재판에 넘겼다.

애경산업과 SK케미칼 전 대표 등에 대한 공판 핵심 쟁점은 원재료 성분의 유해성과 피해자들의 질환 사이 상당인과관계 인정 여부에 모아졌다. 2021년 1월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이 사건 피고인 1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애경산업 판매 제품 이용자들이 진단받은 중증 폐질환과 CMIT·MIT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는 검찰 제출 증거와 증인 진술 등의 증명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가습기살균제 원료 성분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PGH) 외에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와 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 등이 있다.

영국계 글로벌 기업 옥시가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제품 주성분은 PHMG이다. 우리 대법원은 PHMG의 인체 유해성과 피해자 폐질환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원심 판단에 위법이 없다고 봤다. 

문제는 CMIT·MIT이다. 이들 성분과 폐질환 사이 상당인과관계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해도 좋을 만큼 충분하게 규명되지 못했다. 이 사건 1심에서 검찰은 국내외 일부 논문과 역학조사 전문가 진술 등을 근거로 인과관계 증명을 시도했으나 원하는 결과를 얻는데 실패했다.

1심 공판과정에서 검찰 측이 유해성 입증의 유력 증거로 제시한 ‘기도점적 방식’ 실험은, 가습기의 일반적 사용 환경(공기 중 기체 흡입)과 상이하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증명력 논란을 초래했다. 검찰 제시 실험에 사용된 약품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점도 1심 재판부의 무죄 판단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 법조계 일반의 평가이다.

검찰은 항소심 공판을 앞두고 논문 3편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가습기살균제 호흡기계 건강피해 통합 판정체계 구축 연구’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이용한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규명연구(III)’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질환 간 역학적 상관관계보고서 제2판 – 간질성폐질환, 천식, 폐렴, 기관지확장증, 급성 상기도염증’ 등이다. 이어 김재용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를 증인으로 불렀다.
 

檢, 김재용 교수 참여 '신규 논문' 집중 인용... 공세 강화     

김 교수는 위 논문 작성에 참여한 역학조사 전문가이다. 그는 이 사건 1심 공판 때도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피해자 질환과 CMIT·MIT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위 3편의 논문 중 검찰이 스모킹건으로 인식하는 문건은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질환 간 역학적 상관관계보고서 제2판 – 간질성폐질환, 천식, 폐렴, 기관지확장증, 급성 상기도염증’(이하 상관관계보고서)이다.

위 논문은 다양한 연구방법론 중 준실험(시계열 분석 등), APC(Age-Period-Cohort) 분석, 고정 및 유동 코호트 분석 등을 통해 CMIT·MIT와 피해자 폐질환 사이 역학적 상관관계를 긍정하고 있다. 이들 논문에는 CMIT·MIT 계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고 신고한 6333명을 대상으로, 제품 사용 전·후 천식 등 폐질환 발생률을 비교한 연구결과도 포함돼 있다.

지난 공판에서 검찰은 김 교수를 상대로 주신문을 진행하면서 상관관계보고서를 주로 인용했다.

이 사건 쟁점을 정리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가습기살균제 성분 중 CMIT·MIT의 폐세포 전달 여부와 그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피해자들의 기왕력·환경적 요인·다른 변수의 개입 가능성 등을 고려하더라도 CMIT·MIT 성분이 피해자 질환을 유발했거나 혹은 그 증상을 악화시켰다고 보기에 충분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김 교수가 작성에 참여한 위 상관관계보고서는 위 두가지 쟁점에 있어 검찰 측 시각과 매우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 김 교수를 다시 증인으로 부르고, 위 문건을 추가 증거로 신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동 문건은 논문 게재 시점이 이 사건 1심 이후이다. 1심이 증명력 부족을 이유로 배척한 기존 연구결과와 달리, 1심 재판부가 살피지 않은 새로운 보고서라는 점에서 검찰의 기대감은 상당하다. 

김 교수는 지난 공판에서 위 상관관계보고서를 바탕으로, "CMIT·MIT와 폐질환 사이 역학적으로 충분한 상관관계가 인정된다"고 답변했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사이 관계가 없다는 주장은 넌센스나 다름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나아가 김 교수는 역학조사 특성상 제기될 수 있는 오류(bias) 발생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제거했다며 위 보고서의 신뢰도를 거듭 강조했다.
 

역학적 상관관계와 법률상 상당인과관계... 별개 개념 

검찰의 기대와 달리 위 보고서 내용의 신뢰도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위 보고서 신뢰도 혹은 증명력에 대한 의문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나는 역학적 상관관계의 법률적 의미를 과장하고 있다는 지적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공판 변호인 반대신문을 통해 드러난 모순이다.

우리 형사사법 대원칙 중 하나인 상당인과관계는 범죄의 증명에 관한 것으로, 피고인의 죄책을 판단하는데 있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해도 좋을 정도의 적확한 사실관계와 논리적 인과관계를 요구한다.

반면 위 보고서의 대주제는 '역학적 상관관계' 확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역학적 상관관계는 특정집단과 대조군 집단 사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지 여부를 규명할 뿐, 그 관계성이 인정된다고 해서 범죄의 증명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역학적 상관관계의 법률적 의미] 

역학은 집단현상으로서의 질병에 관한 원인을 조사하여 규명하는 것이고 그 집단에 소속된 개인이 걸린 질병의 원인을 판명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느 위험인자와 어느 질병 사이에 역학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다고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로부터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이 걸린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가 판명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어느 위험인자에 노출된 집단의 질병 발생률이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지 않은 다른 일반 집단의 질병 발생률보다 높은 경우 그 높은 비율의 정도에 따라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이 걸린 질병이 그 위험인자로 인하여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비특이성 질환의 경우에는 특정 위험인자와 그 비특이성 질환 사이에 역학적으로 상관관계가 있음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위험인자에 노출된 개인 또는 집단이 그 외의 다른 위험인자에도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항시 존재하는 이상, 그 역학적 상관관계는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면 그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거나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그칠 뿐, 그로부터 그 질병에 걸린 원인이 그 위험인자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13. 7. 12., 선고, 2006다17553, 판결 / 
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다22092, 판결 / 
서울중앙지법 2020. 11. 20. 선고 2014가합525054 판결.

이른바 '담배소송'과 '고엽제 소송'을 통해 확립된 우리 법원의 판례는 역학적 상관관계와 상당인과관계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사법정책적 측면에서 환경소송이나 제조물 소송 등의 경우 입증책임 완화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역학적 상관관계의 규명만으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법원 판례에 반한다.
 

보고서 포함 일부 연구, 가습기 성분 구분 없이 이뤄져 

위 보고서 신뢰도 내지 증명력에 대해서는 앞선 공판 변호인 반대신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CMIT·MIT 계열 가습기살균제와 폐질환 사이 역학적 상관관계를 강하게 시사하고 있는만큼 객관적 신뢰도가 담보된다면 항소심은 원심과 다른 흐름을 보일 수도 있다.  

검찰 기대와 달리 위 보고서는 적지 않은 부분에서 허점을 노출했다. 다음은 상관관계 보고서 증명력에 관한 변호인 반대신문 중 일부이다. 

변호인 : 가습기살균제 노출과 질환 간 역학적 상관관계를 확인하기 위하여 검토한 기존 역학연구 현황은 다음과 같은데, 이중 상당수는 환경부에서 주관한 연구보고서이지요.

증인 :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변호인 : 위 연구 중 푸른색 사각형 안에 있는 연구와, 피해신고자 집단(6333명)을 대상으로 한 단속적 시계열분석 중 고정코호트 분석은 모두 원심에 제출되어 검토된 연구이지요.

증인 : 네

변호인 : 원심에 따르면 원심에 제출된 연구들은 가습기살균제 성분(PHMG, PGH, CMIT/MIT 등)조차 구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졌거나, 역학적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체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진 연구라는 것이지요. 이런 판단을 했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증인 : 나중에 들었습니다.

(중략) 

변호인 : 상관관계보고서는 가습기살균제 사용(노출)에 관한 개인별 정보의 부재를 들면서, 인과적 관련성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개인단위에서 노출과 질병에 관한 정보가 파악되어야 하지만 국민건강보험자료에 개인별 가습기살균제 사용(노출)정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요.

증인 : 네, 그래서 그뒤에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변호인 : 이는 가습기살균제 성분 정보 역시 구분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하지요. 즉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는 가습기살균제 성분은 커녕 사용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불완전한 데이터이지요.

증인 : 네.

변호인 : 어린이 출생 코호트 기반 연구들은 모두 가습기살균제 성분을 구분하지 않고 이루어진 연구들이지요.

증인 : 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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