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력 중시하는 원칙론자... '이재용 파기심' 재판장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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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력 중시하는 원칙론자... '이재용 파기심' 재판장 주목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9.0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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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파기환송심 배당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부 분석
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거친 ‘정통 법관’
서울고법 민사1부장 재임 중 ‘임차인 권리금 청구소송’ 원심 파기  
증거·사실관계 전반 유기적 해석... 증명력 판단에 신중한 태도
사진=EBS 화면 캡처
사진=EBS 화면 캡처

4일 오후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사건을 서울고법 형사1부에 배당하면서 이 사건을 원점에서 재심리할 정준영(52·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의 과거 판결 및 이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 부장판사는 법원 내 손꼽히는 민사(채권)법·파산법 분야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법리 및 판례에 매우 밝고 사건의 숨겨진 맥락을 정확히 짚어내, 재판 운영에 있어서도 후한 점수를 얻고 있다.

그는 2016년 2월 지법 부장에서 고법 부장으로 승진, 서울고법 민사1부장에 임명됐다. 2017년 2월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판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올해 2월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복귀했다.

정 부장판사는 1988년 서울대 사법학과 4학년 재학 중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 연수원을 20기로 수료한 뒤 공군법무관으로 복무했다.

1994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로 법복을 입은 그는 서울지법, 전주지법 군산지원, 인천지법 부천지원, 서울고법 판사를 거쳐 2004년 국회 파견 법관에 발탁됐다. 이듬해 파견에서 복귀한 직후 법원 내 최고 요직 중 하나인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에 임명돼 일선 법원의 재판 현안을 처리했다.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은 재판에 관한 예규를 만들고 전국 법원의 재판사무를 관장했다. 지금은 폐지된 ‘송무국장’직제와 함께 법원장 승진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로 인식되곤 했다. 송무심의관은 법원행정처 조직 개편으로 사법지원실 민사·형사심의관으로 분리됐다가 현재는 사법지원심의관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법원행정처를 나온 정 부장은 2006년 광주지법 장흥지원장을 시작으로 인천지법, 서울중앙지법, 특허법원(이상 지방법원급)에서 부장판사를 지낸 뒤 2006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영전했다.

△소송행위에 있어서 의사표시의 하자(민사판례연구 12권, 박영사) △파산절차가 계속 중인 민사소송에 미치는 영향(민사판례연구 27권, 박영사) △토지수용보상금에 대한 물상대위법리의 전면적 재검토[재판자료 83집 : 파산법의 제문제(하)] 등 민법과 파산법, 토지공법 등 다양한 법역에서 연구활동을 벌였다.

◆정준영 부장 과거 판결... 개별 증거에 대한 엄격한 증명력 요구

정 부장판사는 2016년 서울고법 민사1부장 재임 시절, 호텔 사우나를 10년 이상 임차해 운영한 A씨가 임대인 B씨를 상대로 낸 권리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건물을 10년 이상 장기 임대했고, 임대차계약서상 권리금 반환에 관한 약정이 없다면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 사건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당해 사건 심리 절차에서 부동산중개인이 ‘권리금 반환 약정이 구두로 있었다’는 사실확인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증명력’을 제한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정 부장판사는 “사실확인서가 실제 작성일자에 작성됐다는 증거가 없고 임대차계약서에 권리금 반환 관련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임대차계약이 합의해지될 때 A가 B로부터 보증금 중 연체 차임 등을 공제한 잔액을 반환받으면서 권리금을 청구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둘 사이에 권리금 반환 약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정 부장판사는 “임대인의 사정으로 임대차계약이 중도 해지돼 당초 보장된 기간 동안 이용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임대인이 권리금 반환의무를 진다”면서도 “이 사건 임대차계약은 2004년 6월부터 2014년 9월까지 10년 이상 지속됐으므로 건물주인 B가 권리금을 반환할 의무는 없다”고 했다.

당시 재판부는 사실확인서가 법정에 제출됐는데도, 사실관계 전반에 대한 유기적 해석을 통해 그 증명력을 배척했다. 위 사례는 정 부장판사의 재판 운영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환송판결의 기속력(羈束力)’ 원칙... 기초사실관계 달라지면 ‘예외’

지난달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이 무죄로 판단한 ‘마필 소유권’(단순뇌물죄·특경가법상 횡령) 및 동계영재스포츠센터 후원금(제3자뇌물죄·특경가법상 횡령) 관련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13부는 지난해 2월5일, 항소심 선고 기일을 열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심과 달리 마필 소유권, 동계영재스포츠센터 후원금 관련 특검의 공소를 모두 기각했다. 다만 삼성 측이 독일 코어스포츠 법인계좌로 송금한 현금 36억원에 대해서는, 단순뇌물죄를 적용한 특검의 공소를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항소심)이 부정한 청탁과 마필 소유권 관련 법리를 오해했다”며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이 이 사건 원심을 파기하면서 제시한 주요 증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2015년 11월15일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 최서원(최순실) 측에 보낸 휴대폰 문자메시지이고, 다른 하나는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의 법정 진술이다.

위 두 가지 증거를 바탕으로 한 상고심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선고 직후부터 이견이 나왔다. 다수의견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은 ▲박상진 전 사장 휴대폰 문자메시지 내용 어디에도 ‘마필 소유권 이전’ 관련 언급이 없다는 점 ▲박원오 전 전무의 법정 진술은 ‘개인적 견해’에 불과해, 그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대법원 유·무죄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변동이 생긴 경우, 상고심 ‘환송판결의 기속력(羈束力)’은 제한을 받는다. 가령 위 박원오 전 전무의 진술을 탄핵하는 새로운 증거가 나온다면 파기심은 상고심과 다른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형사 공판은 민사 재판과 비교할 때 훨씬 엄격한 증거법칙과 증명력이 요구된다. 

이런 사정을 놓고 볼 때, 개별 증거의 증명력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정 부장판사의 태도는 이 부회장 사건 파기환송심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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