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독성 물질, 폐 도달·검출 여부 알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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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독성 물질, 폐 도달·검출 여부 알 수 없어"
  • 유경표, 최유진, 한정우 기자
  • 승인 2023.06.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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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5차 공판 분석
'방사성 동위원소 전문가' 전종호 교수 증인 신문
"CMIT·MIT, 분자량 작고 다른 곳 이동 잘해"
"PHMG, 분자량 크고 폐에 축적... 독성 발현"
"실험, 시간·비용 문제로 가습기 사용 환경과 달라"
변호인 "기도 점적 농도, 일반적 사용량의 625배"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등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8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애경산업, SK케미칼 관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등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8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애경산업, SK케미칼 관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CMIT·MIT는 분자량이 작고 가벼워 체내에서 다른 물질로 대사되거나 다른 물질과 섞일 수 있고, 폐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쉽다. CMIT·MIT (독성) 연구는 학문적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향후 고찰을 통해서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정도일 뿐, 이와 같은 방법으로 (폐에서 독성이) 검출됐는지는 알 수 없다. 실험을 통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22일 서울고법 형사5부(서승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애경산업·SK케미칼 전 대표 등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항소심 5차 공판에서 CMIT·MIT 성분의 폐포(폐세포) 도달 여부, 흡입 독성 발현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전문가 증언이 나왔다. 이날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전종호 경북대 응용화학부 교수는 '유기 방사성 동위원소' 전문가로, 지난해 12월 국립환경과학원과 안전성평가연구소가 발표한 ‘CMIT·MIT 체내 분포 특성 규명 연구’에 참여했다.

전 교수는 PHMG와 CMIT·MIT 분자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 상이한 조건에서 실험이 이뤄진만큼, 이들 물질의 폐포 도달 및 흡입 독성 실험 결과를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입장도 밝혔다.

PHMG는 옥시 제조 가습기살균제의 주성분이다. 대법원은 확정판결을 통해 동 성분을 주원료로 하는 가습기살균제의 흡입 독성과 중증 폐질환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반면 CMIT·MIT를 주원료로 하는 가습기살균제의 체내 도달·독성 발현 여부와 그 정도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은 CMIT·MIT 성분의 독성을 인정한 일부 논문을 토대로 애경산업, SK케미칼 전 대표 등 관계자 23명을 재판에 넘겼으나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CMIT·MIT 계열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이용자들의 중증 폐질환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는 검찰 제출 증거와, 역학조사전문가 등 증인 진술의 증명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검찰은 항소심 심리를 앞두고 CMIT·MIT 계열 가습기살균제 출시 전과 후 피해신고 그룹과 대조군 사이 역학조사결과를 정리한 상관관계보고서 등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동 문건은 CMIT·MIT 계열 가습기살균제 사용이 중증 난치성 폐질환을 유발했거나 그 증상을 악화시켰다는 검찰 시각과 일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학적 상관관계' 인정돼도 소송법상 증명력 '한계'

앞선 항소심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연세대 원주의대 김재용 교수는 본인이 연구에 참여한 위 상관관계보고서를 근거로,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중증 폐질환 사이 '역학적 상관관계'를 긍정할 수 있다고 답했다. 김 교수는 역학조사연구 특성상 오류(bias)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합리적 방법으로 이를 제거했다며, 상관관계보고서의 신뢰도는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중증 천식, 폐섬유화증, 간질성 폐렴 등의 진단을 받았다. 이들 질병은 '비특이성 질환'이다. 가습기살균제 사용 외에도 다양한 원인에 의해 질병이 유발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검찰은 피해자들의 중증 폐질환 발병 원인이 가습기살균제 사용에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데 있어 역학조사 결과를 비중있게 인용했다.   

비특이성 질환의 발병 원인 규명을 위해 역학조사 결과 내지 역학적 상관관계를 활용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엽제 손배배상 청구사건'과 '담배 소송'에서도 피해자들은 역학조사 결과의 증명력에 크게 의존했다.  

이같은 이유로 '역학적 상관관계'의 증명력은 이 사건 공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부상했다. 

비특이성 질환의 역학조사 결과 내지 역학적 상관관계와 관련돼 우리 법원은 일관되게 '제한적 증명력'만을 인정했다. 

역학적 상관관계는 특정 행동이나 현상이 국민 전체에 미친 영향을 통계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틍계적 관계성이 인정된다고 해서 소송법상 입증 혹은 증명이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다. 대법원은 '고엽제 손해배상 청구사건'과 '담배소송'을 통해 이같은 원칙을 확립했다.  

(전략) ...비특이성 질환의 경우에는 특정 위험인자와 그 비특이성 질환 사이에 역학적으로 상관관계가 있음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위험인자에 노출된 개인 또는 집단이 그 외의 다른 위험인자에도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항시 존재하는 이상, 그 역학적 상관관계는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면 그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거나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그칠 뿐, 그로부터 그 질병에 걸린 원인이 그 위험인자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13. 7. 12., 선고, 2006다17553, 판결 / 
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다22092, 판결 / 
서울중앙지법 2020. 11. 20. 선고 2014가합525054 판결.

검찰 제출 상관관계보고서와 김 교수 증언이 '역학적 상관관계'에 뿌리를 뒀다면, 방사성 동위원소 전문가인 전 교수 증인신문은 과학적 실험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CMIT·MIT 독성 실험, PHMG와 다른 조건서 진행"   

전 교수는 방사선 동위원소를 이용해  CMIT·MIT의 체내 이동 경로와 분포 특성을 규명하는 ‘체내 거동 평가’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실험동물의 비강과 기도 부위에 CMIT·MIT를 직접 주입한 뒤, 각각 5분, 6시간, 1주일로 기간을 구분해 체내 이동 경로를 분석했다. 실험 결과 CMIT·MIT는 비강에서 기관지와 폐로 이동했으며, 폐 질환 유발 가능성도 확인됐다.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실험의 증명력이 온전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CMIT·MIT 독성 실험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PHMG와 CMIT·MIT 두 물질의 분자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 실험조건과 방식이 동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부분 전 교수의 법정 증언 중 일부이다. 

PHMG는 CMIT·MIT 대비 분자가 크고 많아 인듐(In·방사성 동위원소)을 사용한 일반적인 실험을 할 수 있었다.

CMIT·MIT는 분자량이 변할 수 있고, 생체에서 추출시 다른 물질과 섞일 수 있어 인증 차원 연구는 거의 본 적 없다. CMIT·MIT 연구 결론 역시 향후 고찰을 통해서 찾아 볼 수 있다는 정도일 뿐, 이와 같은 방법으로 (폐에서 독성이) 검출됐는지는 알 수 없다. 실험을 통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PHMG와 CMIT·MIT는 물성은 물론 체내 반응이 전혀 다르다는 진술도 있었다. 전 교수의 이 부분 법정 증언. 

PHMG는 축적으로 인해 독성을 야기하는 물질이고 CMIT·MIT는 세포 손상 회복 속도가 문제가 된다. 
PHMG는 CMIT·MIT보다 훨씬 배출 속도가 느렸다. 세포벽은 마이너스고 PHMG는 플러스. 만나면 붙어서 축적되고, 그런 식으로 독성을 낸다.
CMIT·MIT는 살균제로 사용된다. 세포 또는 조직에 손상을 준다. 노출된 세포나 조직이 회복되기 전 다시 노출될 경우 신체 기능에 변화를 줄 수 있다.

특히 그는 PHMG와 CMIT·MIT의 실험결과를 비교해 달라는 검찰 요청에, "독성 기전 자체가 달라 비교가 어렵다"며 "(비교를 한다고 해도) 메커니즘적 고찰을 주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실험 결과 비교는 쉽지 않다. 타임포인트가 다르다. 노출 방법 다른 것 비교하기 어렵다. 

PHMG는 폐에서 축적되고 다른 장기나 기관으로 이동도 안한다. CMIT·MIT는 물질이 잘 쪼개져 최종 대사물질이 되거나, 이동을 잘 한다. 

본물질과 구조 등 차이가 난다. (비교를 한다고 해도) 메커니즘적 고찰을 주지 못한다.

CMIT·MIT (독성) 실험은 학술적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이런 자리에서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왜 비교를 하게 됐냐면, 비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서초동 법원. 사진=시장경제신문DB
서초동 법원. 사진=시장경제신문DB

 

기도 점적 물질 농도, 일반적 사용 환경의 600배 초과 

CMIT·MIT 유해성 검증을 위한 실험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더 있다. 실험이 일반적인 가습기살균제 사용환경과 동떨어진, 비정상적 상황 아래서 시행됐다는 점이다. 

전 교수가 밝혔듯 실험은 동물의 기도와 비강에 위 물질을 점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가습기살균제는 제품을 물에 희석한 뒤 기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CMIT·MIT의 인체 유해성 검증을 목적으로 한다면, 실제 사용 환경에서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실험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실험 방식 중 '전신 흡입 노출’은 챔버 안에서 CMIT·MIT를 기화시켜, 실험동물이 에어로졸 형태로 물질을 흡입하도록 설계됐다. 

'전신 흡입 노출’ 대신 '점적' 방식을 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전 교수는 "시간과 비용, 실험실 오염 등의 문제로 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실험동물 기도와 비강에 주입한 물질의 농도가 가습기살균제 권장사용량 대비 최대 600배가 넘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날 증언을 종합하면 전 교수는 CMIT·MIT를 8~9µl(마이크로리터)씩 총 25µl를 점적했다.

애경산업 가습기살균제 각 제품에는 0.015%의 CMIT·MIT 성분이 포함됐다. 물 2리터(L)에 권장사용량 10ml를 넣어 사용하면, CMIT·MIT 성분은 150만배 희석돼 0.000075% 수준이 된다. 

피해자들이 용법에 따라 제품을 사용했다고 가정하면, 실험에 쓰인 25µl는 일반적 사용량의 625배에 달한다는 것이 변호인 주장이다.  

변호인단은 OECD 시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기도 점적과 흡입 노출 방식에 따라, 나타나는 특성이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기도·비강 점적 방식 실험의 신뢰도를 문제삼은 것이다. 

전 교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용액이 실험동물에게 투여되는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질병관리본부 독성시험결과를 꼽았다. 질병관리본부는 권장량의 2배에 해당하는 농도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방안 공기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CMIT·MIT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전 교수 증언에 따르면 CMIT·MIT의 분자구조상 동 물질이 폐에 도달했다고 해도, 폐손상을 초래했는지 여부는 추가 검증을 요한다. 쪼개지기 쉬운 분자구조를 갖고 있어, 체내 효소와 결합해 대사물질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통상적으로 화학물질은 체내에 들어온 뒤, 흡수-분포-대사-배설의 과정을 거친다. 분자구조가 가볍고 분리가 잘 되는 물질의 경우, 체내 대사 가능성은 더 높다. CMIT·MIT 대사물질의 인체 유해성 여부는 ‘추측’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 

전 교수는 “연구기간과 예산 등 문제로 대사물질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며 “작년 하반기부터 대사물질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 항소심 6차 공판은 8월 24일 오전 속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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