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2심 본격화... 재판부 지적, '檢 부실공소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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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2심 본격화... 재판부 지적, '檢 부실공소장' 논란
  • 최유진 기자
  • 승인 2023.02.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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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2차 공판 쟁점 정리]
SK케미칼, 애경산업 전 대표 등 출석
변호인단 "피고인 구체적 혐의 무엇인지 모호"
'檢 공소장 부실 기재' 지적... 재판부도 언급
재판부 "공소장 지금처럼 쓰면 1심처럼 판단"
檢 추가 실험결과 제출... "방사성동위원소 이용 혐의 입증"
변호인 "이미 탄핵된 증거와 같아... 기각돼야"
홍지호 SK케미칼 전 대표. 사진=연합뉴스
홍지호 SK케미칼 전 대표. 사진=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완제품 기업과 원료 공급사 전 대표 등을 피고인으로 하는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 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의 부실한 기소가 1심 무죄 선고 원인 중 하나라는 취지의 지적이 재판부로부터 나왔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 완제품 사용 후 중증 폐질환 등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의 주된 증상과 제품 및 원재료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선고했다. 피해자단체와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재판부의 오판이라며 법원을 비난했다. 그러나 검찰의 모호한 공소사실 기재가 이 사건 1심 무죄 판단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사건 흐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검찰이 공소장 변경 등을 통해 피고인 각각의 구체적 범죄사실을 특정할 수 있을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23일 서울고법 형사5부(서승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 등 업무상과실치사 사건’ 항소심 2차 공판이 법원 서관 303호 법정에서 열렸다. 공판에는 홍지호 SK케미칼 전 대표를 포함해 15명의 피고인과 변호인단이 참석했다.

이달 초 법관 정기인사로 재판부 구성원이 바뀌면서 이 사건 공판절차는 갱신됐다.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 동의 아래 증거조사 갱신절차를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증인신문 절차를 재개키로 했다. 다만 이날 법정에 출석 예정이던 검찰 측 증인이 개인사정으로 불참하면서 신문절차는 순연됐다.
 

檢, 실험결과 추가 제출... 변호인 “이미 탄핵된 내용”

이 사건 항소심 핵심 쟁점은 애경산업 등이 만들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성분과 피해자들의 폐 질환 유발 간 인과관계’ 증명이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는 대부분 원심에서 탄핵됐다. 검찰입장에서는 혐의를 뒷받침할 추가 증거 확보가 절실하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국내 연구기관의 실험 결과를 포함해 몇 건의 추가 증거를 제출했다.

앞서 검찰은 국내 연구기관의 '기도 점적 방식 실험 연구' 결과를 앞세워 혐의를 입증하고자 했으나 1심 재판부는 동 실험의 신뢰도에 의문을 나타냈다. ‘기도 점적’은 원료 물질을 사람의 기관지에 직접 분사하는 방식이다. 이 사건 피해자들은 기체화된 가습기 살균제를 장기간 흡입한 이용자들이다.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들의 폐질환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증명하는데 있어 기도 점적 방식 실험 결과는 신뢰도 논란을 초래했다.

이날 검찰이 추가 제출한 증거에는 가습기 살균제 원료성분 중 하나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이 체내에 들어갔을 때, 폐까지 도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실험 결과도 포함됐다. 해당 실험 목적은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화학물질이 폐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데 있다. CMIT·MIT는 애경산업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화학물질로 SK케미칼이 제조·공급했다.

검찰은 "여러 연구기관에서 현재 (실험을) 진행 중"이라며 "진행 중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증거를 한 번에 제출하지 못했을 뿐 고의로 공판을 지연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환경부 등에서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해서는 "가습기살균기 피해보상과 진상규명을 위해 정책적으로 진행되는 실험"이라며 그 결과를 신뢰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변호인단은 검찰의 추가 증거 제출과 관련돼 “재판이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실험 결과에 대해서는 “방법이 변했다고 새로운 실험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추가 증거 대부분은 이미 원심 재판부가 배척한 것과 같은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검찰 제출 증거 대부분이 기각(배척)사유에 해당된다”고 부연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제출하려는 증거와 혐의 입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거나 이미 제출된 중복증거인 경우, 재판부는 그 채택을 거부할 수 있다.

특히 변호인단은 “검찰 제출 실험은 실제 가습기살균제 사용법과 달리 기도에 직접 분사한 결과를 담고 있다”며 “실험 농도와 환경 역시 비현실적으로 높게 설정됐다”고 항변했다.
 

재판부 “공소장, 관련자 행위 구체적 명시 안 돼”

공소장 기재가 피고인 각각의 범죄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홍 전 대표 추가 기소 부분에 대한 설명과정에서 나왔다.

검찰은 “사건 피해자 가운데 13명은 이마트에서 판매된 제품을 사용했다”며 “문제된 제품 주성분은 CMIT·MIT”라고 밝혔다. 홍 전 대표 등 이 사건 피고인 7명은 이마트 제품에 CMIT 등을 공급했다는 이유로, ‘과실범의 공동정범’으로 추가 기소됐다. 검찰은 이 부분 공소와 관련돼 “원심이 사실을 오인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이마트와 애경산업 협의과정에서 홍지호 전 대표가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과실(책임)이 있는지 말해 달라”고 했다. 이어 “최소한 어떤 점이 위법한지 그 내용을 (공소장에) 기재해 줘야 반박이라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재판부도 같은 입장을 나타내며 공소장 변경 필요성을 언급했다. 재판부는 “(공소장이) 관련자들과 비관련자의 행위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못하면, 1심처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원심 재판부는 2021년 1월, "두 화학성분이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관련해 폐 질환, 천식 발생 혹은 악화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같은 혐의로 기소된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전 대표에 대해 대법원은 2018년 1월, 피고인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6년 실형을 확정했다. 옥시 제품 주성분은 폴리헥사메탈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으로, 해당 성분과 피해자들의 폐 질환 사이 상당인과관계는 명확하게 입증됐다. 

이 사건 항소심 3차 공판은 4월 27일 오전 10시10분 같은 법정에서 속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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