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쓸 40兆 날아간다... "삼성생명법, 대만 TSMC 돕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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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에 쓸 40兆 날아간다... "삼성생명법, 대만 TSMC 돕는 꼴"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2.12.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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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법 오해와진실③] 전자株 매각, 호재 맞나
개정안 시행땐 삼성전자 주식 40조 쏟아져
지배구조 단절로 '주인없는 회사' 전락 위험
유예기간 동안 자사주 매입이 해법?
초격차 유지에 쓸 반도체 자금, 애먼 데 소진
대만 TSMC, 올해 파운드리에만 50조 투자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편집자주]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한도 규제 기준을 현행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이용우 의원이 2020년 6월 발의한 이 법은 사실상 삼성의 지배구조 해체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어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도 불린다. 

금융선진국인 미국,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도 ‘시가’를 기준으로 한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 규제는 그 사례를 찾기 어렵다. 법률안 통과를 찬성하는 이들은 “보험 납입자가 불입한 돈이 일부 재벌 오너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악용되고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지만, 실체가 없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에 의문이 있다. 삼성전자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은 지난해 1분기에만 8,000억원이 넘는 특별배당을 받았으며 그 결과 회사는 1조원이 훨씬 넘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시장경제>는 재계와 금융권 최대 현안인 삼성생명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을 되짚고, 관련된 주장의 당부를 가늠하기 위한 기획기사를 3회에 걸쳐 마련했다.  

 

'삼성생명법' 본질은 '삼성 지배구조 해체' 

삼성생명법을 둘러싼 논란 중 하나는 삼성전자의 초격차 경쟁력 약화를 정부가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이다. 삼성생명법 국회 통과를 주장하는 이들은 표면적으로 ‘재벌 총수에 대한 특혜 근절’을 외치고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노림수는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 단절’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51%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삼성생명법이 원안 그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삼성생명은 ‘시가’ 기준 총 자산의 3%를 초과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정해진 기간 안에 매각해야 한다.

6만원 대를 오르내리는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하면 처분 대상 주식가액은 약 22조원 수준이다. 삼성화재가 처분해야 하는 3조원 대 주식을 더하면 시장에 풀릴 삼성전자 주식은 25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주가 흐름에 따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매각해야 하는 삼성전자 주식가액이 40조원을 상회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분 매각이 예정대로 이뤄지면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그룹 경영권은 삼성생명을 끝으로 단절된다. 국내 시총 1위이자 코리아 브랜드를 대표하는 국민기업이 자칫 ‘주인 없는 회사’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막대한 자금을 손에 쥔 다국적 해지 펀드 등이 시장에 나온 전자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인 없는 회사를 넘어서 삼성전자의 국적이 바뀔 수도 있다. 

이재용 회장과의 경영권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외국계 자본의 '먹잇감'이 될 위험은 그만큼 더 커진다. 올해 9월말 기준,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48%이다.
 

시장에 풀리는 삼성전자 주식... 현대차 시가 총액과 맞먹어

시장에 풀릴 삼성전자 주식 약 40조원은 현대자동차의 시가총액과 맞먹는다. 이달 12일 기준 현대차의 시가총액은 37조원이다. 40조원 상당의 주식이 시장에 나오면 그 후폭풍은 예상하기 어렵다. 당사자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가는 물론이고 코스피 시장 전체가 전례 없는 패닉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개정안 통과를 옹호하는 이들도 이런 문제를 의식, 나름의 대안을 내놨다. 삼성전자가 최대 7년(5+2년)의 유예기간 동안 블록딜 방식으로 삼성생명이 내놓은 자사 주식을 매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겠다는 것이다.

이용우 의원 등은 위 방안이 시장 충격과 삼성 측 부담을 동시에 덜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위 방안에 대해서는 효용성 측면에서 반론이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가 시장에 나온 자사주를 매입한다면 회사 경영권이 외국 자본의 손으로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삼성전자의 '기초체력'이 약화되는 또 다른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 11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700만 삼성 주주 지킴이법!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 11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700만 삼성 주주 지킴이법!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전체 반도체 설비투자 50조... TSMC, 파운드리에만 50조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는 인텔과 마이크론, 일본 반도체 연합, 파운드리 부문에선 대만의 TSMC, 스마트폰 부문에서는 차이나 브랜드에 각각 포위돼 있다. 디스플레이 역시 막대한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삼성이 후발주자로 나서 ‘반도체 세계 1위’와 같은 신화를 써내려간 배경엔 특유의 ‘초격차’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한 박자 빠른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쟁기업의 추격을 무력화하는 이 전략은 오늘의 삼성을 만든 비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초격차 전략 실행의 전제 조건은 ‘막대한 실탄’이다. 한 박자 빠른 공세적 투자는 ‘실탄’이 없으면 불가능한 전략이다. 올해 3월 삼성전자가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 R&D 투자액은 22조5,965억원, 시설투자액은 48조2,222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이 늦어지면 10년이 뒤처진다"는 IT 업계 격언대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글로벌 경쟁력 유지를 위해 관련 시설투자에만 매년 50조원 안팎의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71조원을 ‘시스템 반도체’ 사업 육성에 투자하겠다는 방침이다. 상당한 액수로 보이지만, 글로벌 기준에서는 결코 큰 금액이 아니다. 

파운드리 분야 '숙적'인 TSMC는 올해 설비투자에만 400억∼440억 달러(약 47조∼52조원)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외에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에도 분산투자를 한다. 연간 전체 투자금액은 비슷하지만 용처에서 간극이 뚜렷하다. 삼성전자가 50조원을 각 부문별로 나눠 투자하는 사이 TSMC는 파운드리 한 분야에만 50조원을 쓰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인텔 역시 파운드리 사업에만 10년간 1000억 달러(약 120조원)를 들여,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제조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중국에 이어 미국도 자국 반도체산업 부흥을 위해 파격적인 재정지원을 예고했다. 사정을 종합하면 삼성의 투자 규모는 지금보다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본사. 사진=시장경제DB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본사. 사진=시장경제DB

 

삼성전자 지분매입은 '악재'... 경쟁기업 도와주는 꼴 

30~40조원으로 예상되는 지분 매입은 삼성전자에게 ‘악재’임이 분명하다. 투자규모를 더 늘려도 부족한 상황에서 엉뚱한 지분 매입에 30조원 이상을 소진해야 하는 현실은 분명 난센스이다. 정부와 국회가 나서 경쟁기업을 도와주는 어이없는 모순이 연출되는 셈이다.

이미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은 힘을 잃고 있다. 최근 산업연구원(KIET)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산업 종합 경쟁력에서 한국은 71점을 기록했다. 74점을 얻은 중국보다도 점수가 낮았다. 대만은 79, 일본은 78, 1위인 미국은 96을 찍었다.

홍세욱 변호사(법무법인 에이치스 대표, 경제를생각하는변호사모임 상임대표)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전자에 대한 최대주주 지배력이 크게 약화돼 지배구조에 타격이 예상된다"며 "반도체 주권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각대상 지분규모가 수 십 조원에 이르므로 자사주 매입으로 일시적 방어가 가능하다고 해도 장기적으로는 주식가치 훼손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변호사는 "격변하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규모 투자는 불가피하다"며 "자사주 매입을 위한 대규모 자금 투입은 국가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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