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公正)도 글로벌 표준도 아니다... '표적 규제' 삼성생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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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公正)도 글로벌 표준도 아니다... '표적 규제' 삼성생명법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2.12.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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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법 오해와 진실②] '시가' 적용 정당한가
박용진·이용우 의원 등 "글로벌 스탠다드 부합"
"선진국들 국제회계기준 따라 '시가' 적용" 왜곡
美, 주식보유 규제 없어... 일부 州 '업종별' 한도
日, 한국과 동일 '취득원가' 기준... 근거없는 주장
'시가 3%룰' 적용시 성공한 투자만 차별받는 모순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본사. 사진=시장경제DB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본사. 사진=시장경제DB

[편집자주]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한도 규제 기준을 현행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이용우 의원이 2020년 6월 발의한 이 법은 사실상 삼성전자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어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도 불린다.   

금융선진국인 미국,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도 ‘시가’를 기준으로 한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 규제는 그 사례를 찾기 어렵다. 법률안 통과를 찬성하는 이들은 “보험 납입자가 불입한 돈이 일부 재벌 오너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악용되고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지만, 실체가 없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에 의문이 있다. 삼성전자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은 지난해 1분기에만 8000억원이 넘는 특별배당을 받았으며 그 결과 회사는 1조원이 훨씬 넘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시장경제>는 재계와 금융권 최대 현안인 삼성생명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을 되짚고, 관련된 주장의 당부를 가늠하기 위한 기획기사를 3회에 걸쳐 마련했다.
 

 

보험사 주식보유 규제... 美는 ‘자유’, 日은 ‘취득원가’ 기준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 규제 기준을 현재의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가장 즐겨 인용하는 문구는 ‘글로벌 스탠다드’이다.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 규제를 ‘시가’로 변경하는 것이 글로벌 표준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들 주장의 밑바탕에는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한 현행 보험업법은 퇴행적이며, 재벌 총수의 경영권을 국가가 나서 보호해 주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박용진 의원 등이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한 보험사 주식보유 한도 제한은 재벌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박용진, 이용우 의원을 비롯해 같은 논리를 펴는 이들의 주장은 ‘팩트’에 반한다. 가장 선진화된 금융시스템을 갖춘 미국은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 규제’라는 법제 자체가 없다. 다만 미국은 보험사들의 ‘업종별’ 주식보유 한도만을 규제할 뿐이다. 그마저도 규제 기준은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이다.

선진국 가운데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를 법률이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일본 보험법의 규제 기준 역시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이다.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 기준을 ‘시가’로 바꾸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에 대한 왜곡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 11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700만 삼성 주주 지킴이법!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 11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700만 삼성 주주 지킴이법!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보험업법 규제 본질은 ‘공정성’... '회계기준'과 목적 달라  

‘시가’를 기준으로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제회계기준(IFRS)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내년부터 보험권에 도입되는 국제보험회계기준 '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 'K-ICS'는 보험사가 고객에 내줘야할 자금 여력을 ‘원가’(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한다.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을 ‘보험부채’라고 한다. 예를 들어 연리 7% 조건으로 10년간 저축보험에 가입한 고객은 만기 후 본인이 낸 원금에 연리를 더한 금액을 보험사로부터 돌려받는다. 이 경우 고객이 불입한 원금에 연리 이자 상당액을 더한 금액만큼 보험사는 보험부채를 안게 된다.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근본 목적은 보험사의 재정건전성과 지급여력(책임준비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데 있다. 제도 도입의 취지를 고려할 때 원가가 아닌 시가로 규제하는 것이 논리법칙상 타당하다. 새롭게 도입되는 보험 관련 규제가 ‘시가’를 적용하는 본질적 이유는 무엇보다 ‘가입자의 금융자산 보호’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반면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보유 규제는 그 본질적 이유가 ‘공정성 담보’에 있다. 풀어서 설명하면, 보험 가입자가 회사에 낸 돈을 고객의 동의 없이 임의로 전용할 위험을 방지하고, 이를 통해 금융거래질서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의 법제를 살펴보면 규제의 기준은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보편적이다. 우리 사법(私法) 체계의 대원칙인 ‘법의 합목적성’에 비춰 봐도 규제의 기준은 목적을 고려해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이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보유 규제 기준으로,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를 적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보험사의 회계기준과 재무건전성 평가,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 규제는 각각 제도 본래의 목적에 맞게 기준을 달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이렇게 운용할 때 비로소 관련 법제의 상호보완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시가'에 근거해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를 제한한다면, 제도 본래의 효용을 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가 기준 3%룰’ 강행... ‘성공한 투자’만 차별받는 모순

중장기적으로는 우리도 미국의 법제와 같이 보험사의 주식보유 한도 규제를 원칙적으로 풀고, 대신 '업종별' 한도를 두는 방향으로 법령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계열사 주식보유 한도 규정은) 보험사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데 한 가지 종목에 너무 많이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취득원가 기준으로 3%를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처음 투자를 할 때 3%를 넘기지 않는 것은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그 이후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 주식이 오르고 내리는 것까지 시가 기준 3%룰로 규제하는 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의 지적처럼 이미 투자를 실행한 주식의 증감변동을 ‘시가’로 규제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보험사가 보유한 우량 주식의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총자산의 3%를 초과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다. 박용진·이용우 법률안이 원안 그대로 국회 문턱을 넘으면, 보험사는 보유 중인 우량 주식을 처분하지 않을 수 없다. 투자 포트폴리오상 해서는 안 될 헐값 매각을 보험사에 강제하는 모순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해당 규정의 위헌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주주 이익’이란 입장에서 본다면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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