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꽉 막힌 국책은행 '희망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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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꽉 막힌 국책은행 '희망퇴직'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2.08.1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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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국책은행... 임금피크 실효성 논란
3개 국책은행 임금피크제 대상자 1390명
산업은행 10.4%·기업은행 7.1%, 적체 현상
신한은행 0.25%, 하나은행 0.1%와 대조적
기재부 인건비 통제로 희망퇴직 기피
"3명 나가야 1명채용... 아름다운 은퇴 배려해야"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기재부와 국책은행 노조는 올해 1월 만나 △희망퇴직 대상을 임금피크 직원으로 한정 △임금피크 두번째 해부터 정년까지 남은 개월 수를 임금피크 지급률로 퇴직금 지급 등 일부 조건에 합의하는 진전이 있었지만 직후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현재 관련 논의는 잠시 소강상태에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임금피크제와 희망퇴직 등 체질개선을 위한 조치들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국책은행에 '젊은 피' 수혈이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희망퇴직 조건을 제시해 시니어들의 명예로운 은퇴를 장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3개 국책은행에서 퇴직을 미루고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직원 비율이 시중은행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산업·수출입은행의 임금피크 대상 직원 수는 지난 6월 말 기준 총 1,390명으로 희망퇴직이 사실상 중단된 2015년 말의 166명과 비교하면 약 7년 만에 8배 가량 급증했다.

2021년 연말 기준 국책은행 3사의 전체 직원 대비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 비율은 7.1%였다. 이는 같은 기간 신한은행(0.25%)과 하나은행(0.1%)에 비해 크게 높은 수치였다. 비교적 임금피크제 대상 비율이 높은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경우도 2% 안팎이어서 세 배이상 차이를 보였다. 

먼저 산업은행은 지난 2015년 말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 비율이 3.8%에서 지난해 말 10.4%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기업은행 역시 0.1%에서 지난해 7.1%로 뛰었다. 수출입은행만 이 시기를 통틀어 3~4%대를 유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국책은행의 임금피크제 대상자 비율이 늘어난 것은 시니어 직원들이 희망퇴직을 기피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다 희망퇴직을 할 경우 임금피크제 기간 급여의 45%만을 퇴직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한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총 인건비 통제' 정책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직원이 원할 경우 희망퇴직이 가능하지만 그 조건이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임금 피크제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은행 직원은 "3년 임금피크를 적용해 희망퇴직을 할 경우 연봉의 65%씩 3년, 195%만을 받고 나가야 한다"면서 "현실적으로 임금이 깎이더라도 '눌러 앉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책은행 소속 시니어 직원들은 현실성 없는 희망퇴직 조건으로 사실상 임금피크제를 강요받고 있다면서 속속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복수 노조 관계자들은 현재 도입된 임금피크제는 현 노조 조합원들과 합의된 것이 아니므로 따를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19년 산업은행 시니어 노동조합이 6억원대 임금 삭감분을 반환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며 선두에 섰다. 2021년 4월 1심에서 패소한 이들은 현재 항소한 상태다. 기업은행 시니어 노조 역시 작년 1월 퇴직자 470명이 그간 피크제로 받지 못한 임금 240억원에 대한 반환소송을 제기하고 1심 재판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지난 5월 대법원이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만을 기준으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취지로 판결하면서 당분간 금융권이 임금피크제를 두고 진통을 겪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이달 3일 신한금융투자 전·현직 노조원 55명은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이 과도하다"면서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임금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임금피크 적용 연령이 55세로 다른 금융사보다 낮고 삭감 비율도 평균 50%여서 부당하다는 취지다. 

KB국민은행 직원 41명 역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이달 초 비슷한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외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대기업 노조들도 지난 5월 대법원 판결 이후 사측을 상대로 임금피크제 폐지를 공식 요구했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금융권을 넘어 산업부문 전반으로 임금피크제 관련 분쟁이 확산될 조짐이 보인다"고 내다봤다.

 

실효성 없는 임금피크... 경영 비효율 초래

앞서 국책은행과 당국은 체질개선 차원에서 퇴직까지 남은 임금의 90%를 지급하는 선에서 희망퇴직을 장려했지만 기획재정부가 반대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지난 2019년 9월 김태현 당시 금융위원회 사무처장과 기업·산업·수출입은행 행장과 노조 관계자들은 국책은행 희망퇴직 관련 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국책은행의 비효율성이 커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몇 차례 의견을 조율한 끝에 임금피크 적용 대상자에게 퇴직까지 잔여임금의 90%를 지급하는 선에서 희망퇴직 조건을 합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그동안의 소회와 향후 정국 운영 방안 등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그동안의 소회와 향후 정국 운영 방안 등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그러나 공공기관 예산지침을 담당한 기획재정부가 이를 반대하면서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국책은행의 인건비는 금융위가 통제하지만, 공공기관 예산 지침은 기재부 관할인 탓이다. 

이후 기재부와 국책은행 노조는 올해 1월 만나 △희망퇴직 대상을 임금피크 직원으로 한정 △임금피크 두번째 해부터 정년까지 남은 개월 수를 임금피크 지급률로 퇴직금 지급 등 일부 조건에 합의하는 진전이 있었지만 직후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현재 관련 논의는 잠시 소강상태에 있다.

임금피크 대상 직원들이 퇴직을 미루면서 청년 신규채용이 가로막혀 국책은행의 평균 연령이 올라가고, 각종 비효율성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산술적으로 신입행원 초봉 5,500만원과 각종 교육연수 등 부대비용을 고려하면 약 1억원의 연봉을 받는 임금피크 대상자 3명이 떠나줘야 1명의 신규 채용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국책은행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3개 국책은행의 신입직원이 398명인데 현재 3개 국책은행의 임금피크 대상자 1,390명중 절반 정도가 퇴직했다면 230명 정도를 더 채용할 수 있었다는 계산"이라고 말했다.

통상 임금피크 대상 직원은 영업하는 일선 직원을 지원하는 '후선 업무'를 담당한다. 그 결과 연차, 각종 연수, 육아휴직 등으로 일할 창구 직원은 부족한데 '후선 직원'만 늘어나는 기형적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국책은행 관계자는 "생산성이 줄어든 임금피크 대상자들에게 마땅히 자리를 주기도 어렵고, 신규채용을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장기적인 손해까지 고려하면 희망퇴직 활성화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시니어 직원의 업무량을 줄이기 위해 후선 업무에 배치하기로 합의했지만 현업 업무를 그대로 하도록 하는 경우 당사자들이 어디 하소연하기도 어렵다. 한 마디로 천덕꾸러기가 된 상황"이라면서 "오랜 시간 회사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명예롭게 경력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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