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史에 발목 잡힌 금융개혁... '신한 재수사' 공정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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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史에 발목 잡힌 금융개혁... '신한 재수사' 공정성 논란
  • 오창균 기자
  • 승인 2018.12.2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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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에 골몰하는 文 정부, 금융개혁 추진은 뒷전
무죄추정 원칙은 어디로? 과거 반성 명분, 이미 퇴색
법조계 "檢, 전·현직 관계자들에 무리하게 책임 물어"

사회 전반의 개혁을 이끌어야 할 문재인 정부가 과거사(史)의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금융권을 겨누고 있는 칼날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금융개혁이 시급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과거사에 연루된 기업 때리기에 골몰한 나머지 어젠더 추진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한금융의 '남산 3억원 의혹'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해당 의혹은 지난 2008년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이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의 지시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 당선 축하금 3억원을 건넸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검찰은 라응찬 전 회장을 무혐의 처분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해당 문제는 지난해 12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에 의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행보는 최근 들어 구체화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14일 과거사위는 라응찬 전 회장, 이백순 전 행장, 위성호 현 신한은행장(당시 신한지주 부사장) 등 전·현직 신한금융 고위 관계자 10명을 겨누며 관련 수사를 검찰에 의뢰했다. 이들이 재판 과정에서 거짓 증언을 했다고 판단하고 사실상의 처벌을 요구한 것이다.

과거사위는 최초 수사 때 검찰이 뇌물 혐의와 정치자금법 위반 정황을 파악하고도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야권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 것도 모자라 형인 이상득 전 의원까지 겨냥하는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법조계 내부에선 "과거사위의 재수사 권고는 검찰 수사와 사법부 판단까지 마친 사건을 유죄 심증으로 접근한 가이드라인이나 다름없고 형사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거의 일을 반성하고 바로잡겠다는 명분은 퇴색된지 오래다. 공정성과 중립성을 둘러싼 시비(是非)는 어느새 과거사위의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인 지난해 12월 출범한 과거사위는 그간 수많은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왔다. 위원 9명 가운데 6명이 진보 성향의 변호사 단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이다. 김갑배 위원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반부패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과거사위 구성 직후 조사 대상으로 MBC 피디수첩의 광우병 보도, 미네르바 박대성씨 사건, 고(故) 장자연씨 관련 사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수사 등이 구체적으로 거론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사건'이 주(主)타깃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와 정치권이 들썩였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대놓고 정권에 심기를 불편하게 한 수사와 처벌을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하는데 정치검사들의 한풀이 수사로도 모자라 민변의 한풀이 정치보복이 계속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과거사위의 해체를 주장했다.

공정성 시비는 현재 진행 중인 신한사태 수사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의 재조사 대상자들에게 위증 외에 무고 혐의까지 추가하겠다고 내용을 놓고 조사 실무를 맡고 있는 대검 진상조사단과 최종 수사 권고안을 확정하는 과거사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중순쯤 조사단은 라응찬 전 회장, 이백순 전 행장이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을 횡령·배임으로 고소한 일이 무고죄에 해당된다며 검찰에 별도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는 조사보고서를 과거사위에 제출했다. 반면 과거사위는 검찰이 신상훈 전 사장을 기소하고 대법원에서도 일부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이 선고된 점을 들어 무고죄를 적용할 수 없다며 보강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사위와 실무 조사단 사이의 갈등이 가관인 셈이다.

과거사위 뿐만 아니라 실무 조사단의 활동 역시 합리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의 임직원들은 벌써 8년이 지난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조사대상에 올라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다. 특히 당사자들에게 그 어떤 방어권이나 변호권도 부여되지 않아 당혹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법조계 내부에선 "전반적으로 대검 진상조사단이 라응찬 전 회장과 이백순 전 행장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전·현직 임직원들에게 무리하게 책임을 묻고 있는 정황이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결국 이들이 공정성과 합리성을 잃은 채 타당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사위와 대검 진상조사단의 활동이 또 다른 권력의 남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여러 경제정책 실패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칠 치는 상황에서 해묵은 전(前) 정권 관련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이유를 묻는 의견이 많다. 

금융권 안팎에서도 "적폐청산도 중요하지만 너무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기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적폐청산 대상으로 찍힌 신한은행이 검찰의 압수수색 등으로 인해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겠느냐는 시선이다. 실제 신한은행 관계자들도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기인데도 지난 정부와 관련된 사건이 너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라 내부적으로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정부의 각종 규제로 인해 내년 경기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중고가 예상되는 경영환경 속에서 정부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신한은행의 기업 영속성(永續性)이 흔들리고 신뢰도까지 추락할 위기에 놓여 애꿎은 서민들만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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