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모르는 선무당 사법입원제... "환자-가족 다 죽일라" [정신건강기획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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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모르는 선무당 사법입원제... "환자-가족 다 죽일라" [정신건강기획②]
  • 박주연 기자
  • 승인 2024.03.1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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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저널-한국조현병회복협회 공동기획, '환자에게 치료받을 권리를’

너도 나도 ‘사법입원제 도입’, 뜯어보니 허점투성이
조현병 의료 인프라 절대 부족, 서류 심사화 할 경우 악화 가능성도
일부 환자 가족들 “가족고통 해결 못해” 도입 반대

<편집자 註> 분당 칼부림 사건 등 최근 잇단 범죄사건은 우리 사회에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 및 관리보호에 깊은 고민을 안겨줬다. 2017년 5월 개정 시행 중인 정신건강복지법은 인권침해를 줄였지만 더욱 까다로워진 입원절차는 ‘제때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이유도 모른 채 감금돼 강제 약물 투여와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는 영화 속 장면과 이유도 모른 채 흉기에 쓰러진 광장의 장면이 겹치는 시대. NGO저널은 한국조현병회복협회와 공동기획으로 국민 정신건강이 화두로 떠오른 현시점에서 진정한 인권의 의미를 되새기며 중증 정신질환자의 치료받을 권리와 함께 미흡한 제도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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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정신질환자 관련 잇단 흉악범죄로 인해 물밑에서 다시 떠오른 사법입원제. 이 제도는 지난 2018년 12월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망에 이어 2019년 4월 안인득의 진주 방화·살인사건 등을 계기로 본격적인 논의의 물꼬가 텄다.

2018년과 2019년 ‘사법입원제 도입’ 골자로 정신질환자의 입원 적합성 심사를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아닌 가정법원이 전담하는 내용의 의원안이 여럿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는 현행 '응급입원제'에 대한 보완 입법의 형태로 발의됐지만 해당 상임위 계류 중 역시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여론이 들끓는 와중에도 지난 국회에서 이 제도가 탄력받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일부 의료계와 정치권·미디어 등 일각에선 사법입원제를 현행 제도의 허점을 메울 대안처럼 말하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본래 사법입원제의 취지는 가족이나 의사에게만 지도록 한 책임 부담을 사법기관을 통해 국가가 덜어주자는 것이다. 자·타해 가능성이 큰 중증 정신질환자를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치료목적으로 법원이 판단해 입원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제도다. 즉 환자 본인이 입원신청을 하는 자의입원과 환자 본인과 보호의무자(직계가족 1명)가 동의하는 동의입원을 포함하는 ‘자의적 입원’이 아닌 ‘비자의적 입원(강제입원)’일 경우에 해당되는 제도다.

비자의적 입원에는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 가운데 자·타해 위험이 크고, 다른 유형의 입원을 진행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 의사·경찰관 동의를 받아 3일 이내(공휴일 제외) 기간 동안 입원시키는 ‘응급입원’과 자·타해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가 발견되었을 때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이 입원시키는 ‘행정입원’이 있다. 또 비자의적 입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보호입원’이 있는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인, 보호의무자 2인이 모두 동의해야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다.

지난해 8월 23일 조규홍 복지부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묻지마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국무총리 담화문' 발표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중증정신질환자 적기 치료를 위한 사법입원제 도입 검토 등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23일 조규홍 복지부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묻지마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국무총리 담화문' 발표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중증정신질환자 적기 치료를 위한 사법입원제 도입 검토 등을 발표했다.

 

도입시, 법원 과부화 불 보듯… 환자 치료에도 걸림돌 가능성

사법입원제는 응급입원(3일 이내), 행정입원(2주 내), 보호입원(2주 내) 등 입원 종류와 관계없이 입원 후 기간을 연장할 때 기존 전문의 소견 대신 판사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제도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나영석 총무이사는 “응급입원이나 행정입원은 사법입원제와 상관이 없다. 각각의 입원 제도는 그대로 진행되는 것으로, 다만 어떤 종류의 입원이든 장기간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경우 판사가 꼭 판단해야만 한다는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나 총무이사는 “응급입원이나 행정입원은 어차피 입원 기한이 정해져 있어 그 기간 안에 판사의 판단을 받을 수 있으면 계속 입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일단 퇴원하고 다시 사법입원 절차를 거쳐 보호입원 등으로 입원 종류를 바꾸는, 사법입원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그럴 경우 적시에 판사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느냐다. 응급입원의 경우 3일 간의 입원시한이 끝나기 전 판사의 판단을 받아야 하고, 행정입원이나 보호입원도 2주 내에 판사의 입원 적합 판단을 받아야 한다. 시간이 촉박할 수밖에 없다.

법원이 연간 처리해야 할 보호입원 심사 건수가 10만 건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심리 자체가 형식적으로 이뤄져 서류 심사화가 될 경우 환자는 판사 얼굴도 못 보고 입원하는 경우까지 생길 수 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빚어질 소지가 있다. 반대로 서류 심사로 퇴원이 이뤄질 경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환자의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사법입원제는 입원 결정을 내릴 판사가 조현병 등을 앓는 당사자 말을 직접 듣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입원결정 대기기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사법입원제를 시행 중인 미국의 경우 판사들이 병원에 직접 와서 해당 환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심사하고 유럽에서는 환자와 의료진이 법원에 출두하면 판사가 진술을 듣고 입원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법원이 인적, 물적 자원 확보가 우선이라고 손사래를 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턱대고 사법입원제를 시행하기에 앞서 판사 및 보조 인력과 병상 확보 등 우선 적합한 의료 인프라 구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판사 1인당 처리해야 할 사건은 연간 464.1건에 달한다. 반면 같은 해 기준으로 독일 판사의 1인당 연간 사건은 89.6건에 불과하다. 한국 판사의 평균 업무량이 독일의 5.2배에 달한다. 1인당 연간 사건 수는 프랑스(196.5건), 일본(151.8건) 등과 비교해서도 2배 이상이다. 현재 국내 법관은 총 3000명 수준인데 보호입원 뒤 이뤄지는 입원적합성심사 건수는 2021년 3만271건, 2022년 2만9195건이다. 이들 판사가 전부 투입된다고 해도 판사 1명이 연간 10건씩은 맡아야 하는 셈이다.

입원 병동과 의료진의 부족, 낮은 수가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급성기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 내 정신과 보호병동 수가가 18% 줄었다.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정신건강의학과의 폐쇄병동 병상은 2017년 4,677개에서 2022년 3,960개로 줄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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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입원제로 가족 부담 덜겠다?... 되레 고통 더 안길수도

가장 큰 문제는 사법입원제가 환자 가족의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와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조현병회복협회(심지회) 배점태 회장은 “현행 정신질환자의 입원 문제는 당사자의 병식(환자가 스스로 병을 인정하는지의 여부) 부족으로 인한 치료 거부와 좋은 환경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병실 부족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사법입원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배 회장은 “가족이 힘들어하는 것은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서 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 여부 결정권자가 정신건강전문의로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며 “가족의 어려움은 병식이 없어 치료를 거부하는 당사자를 의사 앞까지 데리고 가는 것으로, 사법입원제도가 도입돼 입원 여부 결정권자가 의사에서 판사로 변경된다 하더라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족의 어려움은 똑같다”고 토로했다.

실제 2019년 진주 방화 살인사건의 범인 안인득의 경우 형과 동생 등 가족은 그를 치료를 위해 의사 앞까지 데려갈 수 없었다. 2010년 행인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재판에 넘겨져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은 안 씨를 가족들이 진주의 한 정신병원에 6개월 간 비자의입원을 시켰고, 이후 외래치료를 받았지만 치료를 중단한 안 씨가 다시 입원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입원시킨 가족에게 적대감마저 갖고 있었다.

가족은 다른 비자의 입원인 경찰을 통한 응급입원, 지자체 행정입원 등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의 형이 ‘직계 가족이나 배우자’로 한정된 보호의무자가 아니어서 보호입원에 실패했고 진주경찰서를 찾아 부탁했지만 ‘급한 상황이 아니면 안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응급입원에도 실패했다. 현장 대응 매뉴얼이 있지만 기준도 애매해 환자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할 가능성도 있어 적극적으로 개입하길 꺼려했기 때문이다.

즉, 전문의 대신 입원 결정 판단의 주체를 판사로 바꾼다고 해서 환자를 제때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판사의 업무과중으로 입원 판단이 늦어질 경우 환자의 치료시기를 놓칠 가능성마저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사법입원제, 의사도 판사도 꺼릴 우려… 정부는 “논의 중”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나영석 총무이사는 “사법입원제의 취지는 좋으나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기까지는 갈 길이 너무 멀다”며 “이미 우리나라의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까다로운 입원 규정을 갖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이 진단, 입원 결정, 심사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사법입원이라는 과정을 시행하면 많은 전문의가 오히려 환자들을 입원시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나 총무이사는 “지금껏 인권이나 복지를 말하면서 막상 환자들을 방임해버리거나 사건 사고의 위험성을 방치하다 뒤늦게 허둥지둥 소란을 부리지만 결국 개선되는 것은 없었던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인 점을 감안할 때 이 제도의 시행은 요원하기만 하다”며 “사법 입원을 시행할 경우 판사의 전문성도 문제다. 전문의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한다 하더라도 비의료인인 판사가 얕고 짧게 교육을 받아 고도의 전문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을 소화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심지회 배 회장은 “사법입원제도가 도입된다면 사법부에서 입원여부 결정을 하게 되는데, 입원이 시급한 경우에도 불구하고 사법부 업무 과중 등으로 업무처리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고, 가족 입장에서는 가까운 병원이 아니라, 먼 거리에 있는 법원을 찾아야 하는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며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서 기초자치단체 단위로 정신건강복지센터가 구축되어 있다. 이러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당사자 입원 관리하는 역할을 부여하면 어느 정도 현행 입원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정부는 현재 사법입원제 도입과 관련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함께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가동 중인 법무부의 담당자는 “복지부와 함께 TF를 만들어 사법입원제 포함 입원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는 “사법입원제란 단어 하나로 이 제도를 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사법입원제를 실행 중인 해외 여러 나라들도 모양새가 각기 달라 우리는 어떤 형식으로 디자인했다고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멀지 않은 시기 대외적으로 정책 방향에 대해 설명드릴 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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