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기획⑧] 행정심판 부추기는 학폭예방법... "가해책임 엄중히 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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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기획⑧] 행정심판 부추기는 학폭예방법... "가해책임 엄중히 물어야"
  • 장달영 변호사
  • 승인 2023.03.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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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더 글로리하게 : 학폭법 현주소를 보다] ⑧
NGO저널-(사)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공동기획

학폭예방법은 학생 인권보호가 목적
가해 학생 측의 학폭 책임 회피 우려할 상황

[편집자 註] 최근 학교폭력(학폭) 드라마 가운데 압권은 ‘더 글로리’. 극중 ‘고데기 폭력’이 실화였다는 후기는 더 충격이다. 선진국형 모델이라고 자평했던 ‘학교폭력예방법’이 시행된지 19년째를 맞았지만 ‘더 글로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학교가 끊임없이 공동체를 지향하지만,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는’ 냉혹한 조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셈이다. ‘학폭’이 사회문제로 다시 떠오른 가운데,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와 공동 기획으로 피해 학생이 소외되는 학폭의 현실과 미흡한 제도를 조명한다.

장달영 변호사
장달영 변호사

학교폭력(학폭)을 소재로 한 OTT 드라마가 장안의 관심을 끌면서 학폭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과거에도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던 적은 있었다. 주로 학생 시절 가해자로 지목받은 운동선수나 연예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대표적이었다. 최근에는 정치적 이슈로까지 비화했는데, 바로 고위공직자로 임명된 정 아무개 변호사의 아들이 고교 재학 중 학폭 가해자로 알려져 정 변호사가 결국 사퇴한 일이다.

학폭 가해자로서 책임에 상응한 조치를 받았는지, 피해자에게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다했는지 등 학폭 문제에 더해서 정 변호사가 당시 검사라는 직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책임을 회피했고, 인사 검증에서 이를 무시했는지 등 공직 윤리와 대통령실 인사 부실 논란으로 번진 것이다.

학폭 문제에 대해서 국민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정부 당국이 서둘러 대책 방안을 내놓는 등 사회적 차원에서 학폭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선 위 일들이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그러나 여론과 정부의 학폭 문제에 대한 주의와 관심이 지금과 같은 정도로 지속되리라 만무한 상황에서 이후에도 학폭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지금 여론과 정부 대응은 ‘호들갑’에 불과하고 이번 일들이 사회에 준 의미는 퇴색된다. 실효적이고 체계적인 학폭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학교폭력예방법의 제정 및 개정 경과

학폭 대책과 관련하여서는 학폭에 대한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약칭 ‘학교폭력예방법’)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2004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학폭 문제에 대한 제도적 틀을 만들기 위해 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은 피해 학생 보호, 가해 학생 선도·교육 및 분쟁 조정을 통한 학생 인권 보호와 학생의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한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 법 개정이 이뤄졌다. 2008년엔 학폭에 성폭력을 포함하고 학교의 장은 학폭 문제를 담당하는 전담 기구를 구성하도록 하고 피해 학생 치료비용을 가해 학생의 보호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있었다. 2009년엔 피해 학생에 대한 보복행위를 금지하는 내용 등이 추가된 법 개정이 있었다. 2011년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원회) 전체 위원의 과반수를 학부모 대표로 구성하고 회의록을 작성 ·보존하도록 하는 등 구성과 운영 사항을 보완하는 법 개정이 있었다. 

2012년엔 상당한 범위에서 법 개정이 있었다. 왕따라고 부르는 ‘따돌림’과 ‘사이버 따돌림’ 및 ‘강제적인 심부름’을 학폭의 한 유형으로 명시하고 자치위원회가 가해 학생에게 내린 전학 및 퇴학 조치에 대하여 이의가 있는 학생 및 보호자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있었다. 학폭을 축소 은폐한 학교의 장 및 교원에 대해 징계위원회에 징계를 요구하도록 하였다. 가해 학생에 대해서는 출석정지, 전학 등의 조치내릴 것을 의무화하고, 협박 또는 보복 행위에 대해서는 병과하거나 가중 조치할 수 있도록 했다. 

2017년 법 개정에서는 가해 학생에 대한 특별 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 피해 학생에 대한 심리상담 조치가 명시됐고, 학폭 업무를 전담하는 경찰관 운영의 근거 조항을 뒀다. 2020년 법 개정에서는 학교에 두던 자치위원회를 폐지하고 교육지원청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원회)를 두고 학폭 사건의 조치 및 분쟁 조정 등의 사항을 심의하도록 하고, 학폭 조치에 이의가 있는 피해 학생 및 가해 학생은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주요 내용이 있었다. 2021년 법 개정 주요 내용으로는 학교의 장은 학폭 사건을 인지한 경우 피해 학생의 반대의사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지체 없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분리하도록 하였다,

한편 정부도 그동안 학폭 예방 및 대책을 위한 정책을 펴왔다. 학교폭력예방법 제정 이전인 1995년 당시 학폭이 사회 문제로 대두하자 정부는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경찰은 ‘학교담당 경찰관제'를, 검찰은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을 실시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학교폭력 근절대책 협의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진회의 집단폭행 사건 등 학폭 문제가 끊이지 않자 1997년 19세 미만 청소년의 유해업소 출입금지, 술 및 담배의 판매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한 ‘청소년보호법’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학폭은 줄어들지 않아 국가적 차원에서 대처하기 위한 학교폭력예방법을 제정하였다.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서 정부는 2005년 제1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5개년 기본계획을 시작으로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있다. 

입법과 정부 시책 ‘백약이 무효’인 상황

그런데 학폭 문제는 체감상으로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관련 수치상으로 그렇다. 16개 시도교육감이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실태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학폭 피해 응답률은 1.7%(5.4만 명)로 2021년 1차 조사보다 0.6% 증가했으며 2019년 1차 조사보다 0.1% 증가했다. 가해 응답률도 0.6%(1.9만 명)로 2021년 1차 조사 대비 0.2% 증가했고, 2019년 1차 조사와는 동일한 응답률을 보였다.

그렇다면 학교폭력예방법과 정부의 시책이 학폭 문제를 해결하는데 만족할 만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좀 비관적으로 표현하면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어쩌면 학폭은 근절이 아닌 관리의 대상이라고 하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학폭을 근절하지 못한다면 학폭이 피해 학생과 학교 교육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사회에서 학폭 문제에 대한 법제도적 개선 방안과 소년법상 촉법소년 제도와의 연계도 논의되고 정부도 여러 시책을 내놓고 있는데, 적어도 학교 내에서의 학폭 발생이 줄고 학폭 피해자가 학폭 피해 후유증상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못 하거나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을 막는 방안이 시급하다. 

교원의 학폭 예방 노력 역할과 책임의 강화 

앞의 실태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학폭 피해 장소의 61.8%가 학교 안이고 학교 밖은 34.3%다. 학교 안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교실 안(26.6%)이다. 학생에게 학교 안의 생활시간이 학교 밖의 실제 생활시간보다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교 안에서의 학폭을 최소화한다면 학폭 발생 자체가 그만큼 줄어든다. 학교에서의 반(反)학폭적 환경 조성이 시급한 이유다.

학교폭력예방법과 정부 시책에도 학교 및 학급 단위의 학폭 예방교육 등 학교환경 관련 사항이 있다. 하지만 학폭 문제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예방교육의 한계를 보여준다. 예방교육의 내용대로 학교 안 학생들 사이에서만 학폭 예방 활동을 맡겨둘 수 없다. 

그런데 앞의 실태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학폭 피해 사실을 알린 사람 중 학교 교원은 28.1%에 그친다. 보호자나 친척이 38.1%다. 학폭 가해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없는 피해 학생의 보호자나 친척보다 교원에게 학폭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경우가 더 많아야 한다는 점은 학폭 예방 측면에서 필요하고 당연한 과제다. 

학교의 학폭 발생을 예방하고 적극적 대응을 하여야 할 학교와 교원의 역할, 의무와 책임의 명확화가 지금보다 더 강화되어야 할 이유다. 학교와 교사의 학생 지도·감독 영역에서 일어나는 학폭에 대해서는 학교와 교사는 면책될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학교폭력예방법과 교육 관계 법령에서 학폭에 대한 학교와 교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규정이 미흡하다.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장의 학폭 예방교육 등의 사전적 의무와 학폭 축소 또는 은폐 금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또한 학교의 장 또는 소속 교원이 학폭 발생의 경과 및 결과를 보고하면서 축소 및 은폐를 시도한 경우 교육감이 징계위원회에 징계의결을 요구하도록 하고, 교육감은 관할 구역에서 학폭의 예방 및 대책 마련에 기여한 바가 큰 학교 또는 소속 교원에게 상훈을 수여하거나 소속 교원의 근무성적 평정에 가산점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위 제도는 학교와 교원의 학폭 발생 예방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학폭 발생 가능성을 예견하고 그 발생 억제를 위한 노력을 다하는 학교와 교원의 의무를 담보할 규정이 보이지 않는다. 더 나아가 학교와 교원이 학폭의 발생 가능성을 예견하고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상황에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학교와 교원에 대한 불이익이 있어야 한다.

학폭 가해 학생의 피해 학생 피해 회복 책임의 강화

학폭 피해 학생이 겪는 어려움은 학폭 그 자체보다는 학폭 이후의 사건 처리 과정과 학교 생활, 그리고 가해 학생과의 관계에서 입는 스트레스 장애다. 학폭 피해 학생 상당수도 그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심한 경우 대인관계 기피 등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없어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학교폭력예방법이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로서 일부 ‘양심의 자유’ 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사과와 함께 피해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학급교체, 전학을 둔 취지도 피해 학생의 피해 확대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해 학생의 피해 학생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있다면 피해 학생의 정신적 고통도 적어질 것이다. 

정 아무개 변호사 아들 학폭 문제에서도 드러난 가해 학생 측의 학폭 책임 회피와 학교장 조치에 대한 법적 대응은 그 점에서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가해 학생이라도 불이익 처분에 대해서 법적으로 다투는 것을 마냥 비판할 수 없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그러한 법적 대응이 ‘2차 가해’가 될 수 있고 그로 인한 학폭 갈등 비용이 생긴다는 것은 부정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학교폭력예방법상 심의위원회를 거쳐 교육장이 가해 학생에게 내리는  전학 및 퇴학 조치에 대해 가해 학생 또는 보호자가 시·도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거나 피해 학생 또는 보호자가 가해 학생에게 내리는 조치에 대하여 이의가 있는 경우 재심을 청구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바로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의미가 있다.

가해 학생 측이 피해 학생 측의 피해 회복 노력은 저버리고 교육장이 제기하는 조치에 대해서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하는 처신에 대해서 그 부작용을 막는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 학폭 가해 학생에게서 사과뿐 아니라 재발 방지가 약속되는 분쟁 조정이 조속히 이뤄진다면 피해 학생의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교육장의 조치에 대한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보다 분쟁 조정에서 피해 학생에 대한 사과 및 피해 회복, 재발 방지 약속의 합의가 성사되는 것이 가해 학생 측에게도 훨씬 나은 선택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하는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 예를 하나 들자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지만, 청구가 기각되는 경우 조치 사항의 생활기록부 또는 학교폭력관리대장 기재 삭제 시점을 연계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이 오히려 가해 학생에게 손해이고 피해 학생의 회복 노력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점을 일깨울 필요도 있다. 

학교폭력예방법이 규정하듯이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하는데 본질적 목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사전적 예방과 사후적 처리에 관한 학교폭력예방법 및 정부 시책에서 실효적인 대책이 마련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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