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기획④] 수개월 밀린 학폭심의... "허점 많은 法, 교권추락도 한 몫"
상태바
[학폭기획④] 수개월 밀린 학폭심의... "허점 많은 法, 교권추락도 한 몫"
  • 박주연 NGO저널 기자
  • 승인 2023.03.16 16: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교를 더 글로리하게 : 학폭 해결에 무기력한 학교 현장] ④
NGO저널-(사)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공동기획
“학폭 해결 의지도 능력도 없이 학폭법에만 기대”

[편집자 註] 최근 학교폭력(학폭) 드라마 가운데 압권은 ‘더 글로리’. 극중 ‘고데기 폭력’이 실화였다는 후기는 더 충격이다. 선진국형 모델이라고 자평했던 ‘학교폭력예방법’이 시행된지 19년째를 맞았지만 ‘더 글로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학교가 끊임없이 공동체를 지향하지만,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는’ 냉혹한 조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셈이다. ‘학폭’이 사회문제로 다시 떠오른 가운데,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와 공동 기획으로 피해 학생이 소외되는 학폭의 현실과 미흡한 제도를 조명한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우리 꼭 또 보자, 박연진" 

화제 속에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에서 학교폭력(학폭)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은 복수극 끝에 박연진(임지연)을 마침내 웃으며(?) 마주했지만 학교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피해자는 여전히 구원을 기다리고 가해자는 대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살아간다. 학폭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은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하고 한데 뒤엉킨 채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가해자 폭력에서 한번 상처를 받고, 학폭 사안 처리 과정에서 또 한번 큰 상처를 받았다고 호소한다. ‘학교 폭력 신고하고 나서 더 힘들어졌다’, ‘너무 힘들어서 학폭대책심의위원회로 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지 않네요’라고 말할 정도”라며 “학교 폭력은 피해자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학교는 어쩌면 그 자체로 방관자의 위치로 전락한 셈이다. 학교는 왜 이토록 무기력하기만 할까.

학폭 피해 학생들은 현실적으로 학교의 적극적인 보호조치와 해결책을 제공받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사진=픽사베이
학폭 피해 학생들은 현실적으로 학교의 적극적인 보호조치와 해결책을 제공받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사진=픽사베이

 

△ 학교 현장에서 떠난 학폭위, 학폭 해결 더 어렵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몇 가지 이유를 꼽는다. 가장 큰 것은 법형식의 문제다. 법적으로 학교 현장은 더이상 학폭 문제 해결의 적극적 주체가 될 수 없다.

김정욱 국가교육국민교육단 사무총장은 “법이 바뀌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를 더이상 학교에서 운영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학폭 정도를) 감안해 판단하지만 약간만 심해도 학부모들이 항의하고 그렇게 되면 지역 교육지원청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학교장은 관여할 수 없다”며 “지원청의 학폭위도 위원이 50여 명이나 되고 언론중재위원회처럼 각 위원이 돌아가며 맡도록 심의를 배정하는데, 학생이 많은 지역의 경우는 몇 개월씩 밀려 있다”고 말했다.

정재준 한국학폭대책연구소 소장(전 형사정책연구원 청소년범죄연구실 부연구위원)은 “학폭 사안에 따라 심각하지 않을 경우 자체 해결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교육지원청으로 넘어가 학교에서는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했다.

정 소장은 “이전에는 학교 학폭위를 통해 해결하다 보니 학교 운영위원의 자녀가 학폭에 가담했다든가 하는 허점이 생겼고, 그렇게 되면 학폭위에 입김을 넣게 될 수도 있는 등의 문제들 때문에 제3의 기관인 교육지원청으로 옮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4년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학폭법)’이 제정된 후 각 학교별로 처리되던 학폭 사례들은 이후 수차례 개정을 거쳐 2020년 3월 1일 개정 이후로 시도교육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학폭위에 사례가 접수되면 3주 내지 4주 이내로 심의위 회의를 열어 처리해야 하는데 접수 건수가 너무 많다 보니 사건이 쌓이고 해결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회의조차 제때 열리지 못한다고 한다.

김 사무총장은 “학폭 심의가 지원청으로 넘어가 수개월 진행되는 동안 학교는 ‘우리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며 “또 결과가 나와도 (가해자 측이) 불복하면 결국 소송으로 가게 되어 있다”고 했다.

2004년 제정된 이른바 학폭법에 따라 만들어진 학폭위는 수차례 개정을 거쳐 2020년 3월 개정 이후 시도교육청으로 이관됐다.  
2004년 제정된 이른바 학폭법에 따라 만들어진 학폭위는 수차례 개정을 거쳐 2020년 3월 개정 이후 시도교육청으로 이관됐다.  

 

△ 학폭법은 예방법, 피해자의 눈물 닦아줄 수 없어

학교 책임 아래 학폭 문제가 처리되던 것이 시도교육청으로 넘어간 데는 이유가 있다. 학교 현장에서 머리를 맞대 내놓은 판단과 해법에 관련 학부모들이 승복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 바탕에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크게 자리한다.

김 사무총장은 “학폭 사건을 교사가 전담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며 “조사하고 밝히는 그런 일은 보통 변호사 사무장들이 하는 일로서,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이버폭력과 악성적인 소문, 영상 촬영 등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방식으로 지능적으로 이뤄지는 학교폭력을 다루는데 비전문가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2020년 3월 이전 각 학교 내에 설치됐던 학폭위의 대부분은 교사와 학부모 위원이다 보니 주먹구구식 운영 등의 문제 제기가 많았다. 학폭위를 교육청으로 이관한 뒤에는 학부모 위원은 줄고 교육청 공무원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게 됐다. 이렇게 구성된 학폭위가 의결한 가해 학생 조치에 불복할 경우,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학폭법이 기본적으로 사법이 아닌 행정이라는 한계도 지적한다. 보통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기대하는 것과 달리 학폭 예방 대책에 중점을 둔 법률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약칭: 학교폭력예방법)’ 제1조(목적)에는 “이 법은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정재준 소장은 “학폭법은 행정으로서, 절대 처벌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며 “학폭법은 처벌하기 전 예방 단계로서 행정조치를 하는 것이라 학교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절대 구분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놨다”고 설명했다.

학폭위가 교육청으로 이관된 데에는 학교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하는 판단 능력을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없다는 점도 꼽힌다.

정 소장은 “과거에는 담임 교사가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구조다. 담임 선생님이 좁은 교실에서 인격 미완성의 학생들을 매일 접하는데 어떻게 공정하게 심판을 볼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당연히 불협화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학폭 관련 학생들) 말리다가 하루가 다 간다. 그래서 전문기관에 맡긴 것으로, 교육청 교육감이 학폭 예방에 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 학폭에 무기력한 학교를 만드는 원인들

김소열 (사)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사무국장은 “과거에는 학교 자체가 (학폭 관련) 심사와 조치를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직접 해결하도록 하니 사건을 은폐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며 “학교 입장에서는 학폭이 터지면 학교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불명예로 여기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 아예 교육청으로 이관한 것”이라고 했다.

김소열 (사)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은 학교가 피해자들의 피해 보호 조치에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소열 (사)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은 학교가 피해자들의 피해 보호 조치에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학교 현장이 무기력한 또 다른 원인으로 교권 추락을 꼽기도 한다. 정 소장은 “학폭법이 제정되기 이전엔 교사의 권한이 굉장히 셌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자의적으로 학폭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교사의 모든 활동이 다 노출된다. 교사가 학폭 문제를 잘못 처리했다, 자의적으로 처리했다는 지적이 계속되니 결국 학부모 문제를 전담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3월 10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학교에서 학교폭력 어떻게 다루는가?> 주제의 세미나에서 발제한 황영남 교장(안양예고)는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 등과 함께 교권 추락을 원인으로 꼽았다.

황 교장은 학폭에 무력한 학교의 한계점에 대해 ▲교권 추락으로 인한 교사의 지도력 약화, ▲교직 특성상 학교폭력에 대한 전문성 부족, ▲학교폭력 예방교육, ▲사안 발생시 처리 등 규정에 따른 업무 급증 ▲학교폭력의 다양화 등 변화에 학교의 적절한 대응력 부족 등을 지적했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