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25시] 흔들리는 '먹통 카카오', 침묵하는 '불통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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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흔들리는 '먹통 카카오', 침묵하는 '불통 김범수'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2.10.2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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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먹통되니, 인기앱 1위에 '라인' 올라
최대 위기 맞은 카카오... 신뢰회복 갈 길 멀어
카카오 임직원... 안이한 '리크스 마인드' 드러내
최대주주 김범수 의장, 사태 심각한데도 '은둔'
尹 "독과점에 대응"... 카카오에 칼 빼드나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올해 2월 9일, 경기 성남 카카오 판교오피스에서 열린 '청년희망ON' 카카오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김부겸 국무총리. 사진=시장경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올해 2월 9일, 경기 성남 카카오 판교오피스에서 열린 '청년희망ON' 카카오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시장경제

전국민의 일상을 멈춰세운 '카카오 먹통' 사태가 이어지자,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 등 앱마켓에서는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카카오톡 경쟁 메시징앱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인'이 인기순위 1위에 오른 것이다. 카카오맵과 카카오네비를 대신해 네이버지도와 티맵도 나란히 순위에 올랐다.

그 동안 카카오톡은 국내 메시징앱 시장에서 한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네이버의 라인을 비롯해, 구글 행아웃, 페이스북 메신저 등이 저마다의 기능을 앞세워 문을 두드렸지만 카카오톡 아성을 넘지 못했다. 메시징앱 특성상 강력한 '시장선점 효과'가 작용한 탓이다. 이용자들은 카카오톡에 익숙해졌고, 굳이 플랫폼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카카오톡 먹통 사태는 이런 구도에 큰 균열을 냈다.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카카오 '먹통' 사태 원인과 관련돼 '서버(시스템) 이원화(이중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마디로 '인재(人災)'였다는 얘기다.

장장 10시간 이상 이어진 카카오 서비스 중단 사태는 이용자들이 '대체제'의 필요성에 눈을 뜨게 만든 계기가 됐다. 

카카오 서비스 장애로 대한민국 일상이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됐다. 15일 오후 3시 30분부터 발생된 카카오 관련 서비스 장애가 다음날 오전에도 일부 복구에만 그치면서 서비스 이용자들의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시장경제신문 DB
카카오 서비스 장애로 대한민국 일상이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됐다. 15일 오후 3시 30분부터 발생된 카카오 관련 서비스 장애가 다음날 오전에도 일부 복구에만 그치면서 서비스 이용자들의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시장경제신문 DB

 

시장 신뢰 급락... 최대주주 김범수 의장 '침묵'  

카카오는 스타트업 신화의 표상과도 같은 기업이다. 국내에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2010년을 기점으로 카카오는 당시만해도 생소했던 무료 메시징 앱을 선보이며 시장을 단숨에 장악했다. 2014년에는 다음과의 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렸고, 공격적인 문어발식 경영에도 손을 뻗쳤다. 카카오톡의 압도적인 국내 점유율을 앞세워 금융, 운송, 콘텐츠, 게임 등을 연계한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현재는 136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대기업 반열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 '먹통' 사태는 카카오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몸집은 어른이 됐는데, 머리는 어린아이 그대로인 형국이다. 특히 임직원들의 안이한 리스크 관리 마인드가 여과없이 전파를 탔다. 양현서 카카오 부사장은 16일 SK판교데이터센터에서 열린 카카오톡 장애 관련 간담회에서 "최대한으로 리스크 시나리오를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화재는 예상할 수 없는 사고였다"고 했다. 동네 구멍가게도 화재 위험에 대비하는데,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를 주력으로 거대 IT기업이 화재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해명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양 부사장의 말대로 카카오 임직원들이 화재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경영진의 무능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반대로 사고 발생 가능성을 인지했으면서도 국민적 비판이 두려워 '몰랐다'고 발뺌한 것이라면 기업 윤리 측면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모습을 비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심히 우려스럽다. 비록 카카오 경영에서 손을 뗐다고 해도, 김 의장은 카카오 지분 13.26%를 쥔 최대주주이다. 카카오가 남궁훈·홍은택 각자대표 체제로 경영되고 있다지만, 최대주주인 김 의장의 의중이 어떤 식으로든 경영 주요 현안에 반영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카카오에 대한 국민적 원성이 커지자, 19일 남궁훈·홍은택 대표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남궁훈 대표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사고 대응과 재발방지 노력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두 대표이사가 여론의 화살을 받는 방패막이를 자처한 사이, 기자회견장 어디에도 김 의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 의장의 침묵이 이어지는 와중에, 애꿎게도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부 장관이 국감에 불려나가 고개를 숙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만약 독점이나 심한 과점상태에서 시장이 왜곡되고, 이것이 국가의 어떤 인프라와 같은 정도를 이루고 있다면 국민의 이익을 위해 당연히 제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재계에서는 정부가 SNS 서비스를 비롯한 메시징앱 시장 독과점 실태에 칼을 빼들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카카오 남궁훈 각자대표가 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카카오 아지트에서 열린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장애' 관련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카카오 남궁훈 각자대표가 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카카오 아지트에서 열린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장애' 관련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음 '한메일', 네이버에 역전당해... 카카오톡 운명은? 

카카오와 같이 판교데이터센터에 서버를 둔 네이버는 높은 수준의 리스크 대응 역량을 보여줬다. 네이버는 장애 발생 직후 긴급 대응에 나서 약 두 시간여만에 주요 서비스를 정상화했다. 재난발생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버 이원화(시스템 이중화)를 충실히 추진한 덕분이다. 메인데이터는 춘천에 위치한 자체 데이터센터 '각'에 뒀고, 판교를 비롯한 복수의 데이터센터에 '크론 서버'를 다수 배치해 안정성을 강화했다. 메인 센터가 셧다운되도 언제든 크론 서버를 통해 시스템을 조기 복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반면, 카카오는 판교데이터센터에 서버의 대부분을 몰아넣고 무사안일주의로 일관했다. 카카오 측은 사고 발생 직후 "고객 데이터를 비롯한 응용프로그램 데이터는 100% 백업됐다"며 "복구 지연은 SK C&C 측이 전원을 늦게 공급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남궁훈, 홍은택 대표 기자회견에서도 "주요 프로그램 이중화는 완료가 됐는데 직원들이 사용하는 작업도구 등의 이중화가 안 됐다"고 했다.

앞선 회사 관계자의 말은 '복구 지연은 데이터센터 운영사의 잘못'이란 변명에 가깝고, 대표이사의 해명은 "경영진 잘못이 아니라 개발자들의 귀책"이란 인상을 준다. 경영진도 임직원도 책임을 통감하기보다 누군가에게 그 짐을 떠넘기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백번 양보해 개발자들에게 과실이 있다고 해도, 메인 서버 셧다운과 같은 사태를 예상치 못한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행태는 곤란하다. 결국 사태의 근본 원인은 경영진의 리스크 관리 마인드 부족에서 찾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국민들의 눈은 매섭고 정확하다. 카카오톡이 아무리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한들, 판은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카카오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과거 2000년대 초, 국내 이메일 시장을 지배한 기업은 카카오 전신인 다음이었다. 다음의 이메일 서비스 '한메일'은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하며 명실상부 1위 자리를 지켰다. 그 때까지만 해도 네이버는 다음의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한메일'은 2002년 '온라인우표제'를 도입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온라인우표제 시행으로 다음은 대규모 메일을 보내는 이용자에게 건당 10원을 수수료로 받았다. 스팸메일을 줄이고, 수익성도 강화하는 묘안처럼 보였다. 동 제도의 시행은 예상 밖의 부작용을 낳았다. 회원제 사이트들이 한메일을 외면하면서 다음은 이메일 시장에서 도태되기 시작했다. 네이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식IN 등 혁신서비스를 선보이며 다음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 구도는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려는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카카오 제국이 주춧돌부터 흔들리는 위기를 맞이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지금은 김범수 의장이 침묵을 지킬 때가 아니다. 카카오를 지탱할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달 24일 국회 과기부 국감 증인 출석이 예정된 김 의장이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그의 입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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