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60차 공판... '에피스=종속기업' 입증할 증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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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60차 공판... '에피스=종속기업' 입증할 증언 나왔다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2.09.0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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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에 불리한 진술... 드러난 혐의 없는 670일
'삼성바이오 부당 합병 의혹’ 공판 분석
1심 1년 10개월째... 매주 木, 60회 공판
'前 시티증권 직원 증인 신문' 주목
당시 제일모직-물산 합병, 에피스 상장 등 자문
"삼성, '모직 상장' 시 주가 보수적 산정" 증언
"제일모직 상장에 가치 부풀리기 없었다"
"주가 부양 위해 시세조종"... 공소사실과 다른 검찰 주장 논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편집자 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8·15 특별사면이 이뤄지면서, 오랜 기간 ‘총수 부재’ 상황에 놓여 있던 삼성전자는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법적인 족쇄에서 벗어난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를 잇따라 순회하면서 MZ세대 직원들과의 소통에 힘을 쏟고 있다. 이 부회장의 소통 중심 행보는 다가올 ‘뉴삼성’ 전략의 방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오늘의 삼성을 만든 ‘초격차 전략’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임직원 삶의 질 보장과 사회 보편적 가치 추구를 중시하는 ‘윤리 경영’이 새로운 시대 삼성을 이끄는 핵심 지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현안이 현재 속행 중인 삼성그룹 관련 재판의 종결이다.

서울중앙지법과 고등법원, 양재동 행정법원 등에서 별개로 진행 중인 삼성 관련 재판은 크게 형사 공판과 행정사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핵은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 10명이 공동피고로 묶인 ‘삼성바이오 회계 분식·삼성 부당 합병 의혹’ 공판이다. <시장경제>는 최근 열린 공판을 중심으로 이 사건 쟁점의 당부를 짚는 기회를 마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는 이재용 부회장 등 전·현직 삼성 경영진 10명에 대한 ‘삼성바이오 회계 분식·삼성 부당 합병 의혹’ 공판을 매주 목요일 1차례씩 심리하고 있다. 주요 증인에 대한 신문은 목요일에 이어 금요일까지 이어지면서 한 주에 공판이 이틀 연속 열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난달 18일 기준 이 사건 공판은 총 60회를 넘겼다. 첫 공판이 열린 2020년 10월 22일부터 기산하면 심리 기간은 지난달 기준 1년 10개월에 이른다. 검찰 공소장을 기준으로 할 때 이 사건 ‘씨줄’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이벤트이며, ‘날줄’은 옛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장부 분식 의혹이다.

검찰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합병비율 산정이 부당하게 이뤄졌으며, 그 과정에 옛 삼성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시세조종 등 위법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런 판단을 전제로 합병비율 산정의 사후 정당성 확보를 위해 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장부를 고의 분식했다는 것이 검찰 기본 판단이다. 검찰은 합병비율 부당산정과 삼바 회계 분식 목적을, ‘이재용 부회장 그룹 경영권 조기 승계 및 지배력 강화’라고 정의했다.

검찰의 이 사건 공소와 지금까지 공판에서 드러난 내용을 종합하면, 주요 쟁점인 ‘삼성 합병’에 관한 검찰 시각은 일관된다. 이 부회장 경영권 조기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그가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 주가를 높이고, 물산 주가는 낮추는 인위적 시세조종이 필요했으며, 그 수단 중 하나로 모직 자회사인 삼바의 장부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회계 분식이 시도됐다는 것이다. 

 

검찰 공소요지를 위한 두 가지 요건 

이 사건 공소유지를 위해선 첫 번째 모직-물산 합병 당시, 검찰이 그리는 것과 같은 시세조종이 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증명은 ‘범죄 성립에 관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의미한다. ‘일응 범죄 성립의 여지가 있으며, 정황상 그렇게 볼만한 사정이 존재한다’는 정도의 ‘소명’과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검찰이 지목한 시세조종 수단 내지 방법은 ‘합병비율 부당 산정’이다. 이를 위해선 모직 주가는 높이고, 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한 일련의 공모행위가 있어야 한다. 

두 번째, 검찰은 모직 주가 부양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그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분식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증선위는 2012년 에피스 설립 시점부터 삼바와 바이오젠이 동 기업을 '공동지배'한 것으로 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2015년 재무제표 작성 전까지 에피스를 단독지배 기업으로 처리한 행위는 위법하다고 의결했다. 바이오젠이 2012년부터 에피스에 대한 콜옵션을 '보유'했으므로 그 행사 요건의 충족 여부를 살필 필요도 없이, '보유' 사실 만으로 '공동지배' 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증선위 주장이다.

증선위는 그 연장선상에서 삼바의 2015년 재무제표 작성도 자본시장법에 반한다고 의결했다. 특히 증선위는 2015년 삼바 재무제표 작성과 관련돼, 바이오젠 콜옵션 보유 사실을 은폐한 것은 물론이고 콜옵션 상당 부채를 누락하는 방식으로 4조5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분식을 범했다고 결론내렸다. 검찰 공소사실도 증선위 의결과 같다.

에피스를 삼바의 '단독지배' 기업으로 본다면, 2015년 이전 동 기업을 종속법인(지배기업)으로 인식,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한 삼바 회계처리에는 위법이 없다. 이와 달리 같은 기간 동 기업을 '단순 투자기업'(바이오젠과 공동지배)으로 인식한다면 지분법을 적용, 동 기업을 '관계사'로 처리하는 것이 맞는다. 

에피스를 삼성 측이 단독지배한 종속기업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바이오젠과 공동지배한 관계사로 봐야 하는지 여부는 삼바 회계 분식 존부(存否)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배구조 개요>

△삼바는 2012년 바이오젠과 함께 조인트벤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했다. 설립 당시 대표이사와 이사 5명 중 4명에 대한 선임권은 삼바가, 나머지 이사 1명의 선임권은 바이오젠이 각각 보유했다.

△바이오젠은 미래 일정 시점에 에피스 발행 주식을 최대 ‘50%-1주’까지 사들일 수 있는 콜옵션을 갖기로 삼바와 약정했다. 바이오젠은 2018년 6월 위 약정에 따라 콜옵션을 행사했다.

△설립 당시 삼바의 보유지분은 85%, 바이오젠은 15%에 불과했다. 에피스는 2014년까지 두 차례 유상증자를 실시했으며, 바이오젠은 모두 불참했다. 그 결과 삼바 보유지분 비율은 91.2%까지 올랐고, 바이오젠 보유 지분 비율은 8.8%까지 떨어졌다.

△바이오젠은 에피스 투자 후 매년 발행하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에피스에 대한 지배권은 삼성바이오가 행사한다’는 내용을 미국 나스닥에 공시했다.

△삼성바이오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에피스를 '단독지배' 하는 것으로 판단해, '연결회계'를 적용했다. 

△에피스는 2015년 9월과 12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바이오시밀러(복제약) 2종의 국내 시판허가를 식약처로부터 받았다. 회사가 개발한 ‘성분명 : 에타너셉트(오리지날 의약품 앤브렐)’ 시밀러는 2015년 9월, ‘성분명 : 인플릭시맵(오리지날 의악품 레미케이드)’ 시밀러는 그해 12월 각각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시판허가를 얻었다.

△콜옵션 지배력은 ‘경제적 실질’이란 요건을 충족할 때 비로소 현실화된다. ‘경제적 실질’은 회계학상 ‘내가격’과 동일시된다. ‘내가격’이란 당해 기업의 주식가격이 콜옵션의 행사가격보다 높은 경우를 말한다.

△삼바는 에피스 복제약의 식약처 시판허가를 계기로 콜옵션 지배력이 현실화됐다고 판단, 2015 회계연도부터 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를 변경했다. 이때부터 삼바는 에피스를 바이오젠과 ‘공동지배’하는 관계사로 보고, 연결회계가 아닌 지분법 회계를 적용했다.

△증선위는 삼바의 15년 재무제표에 고의 분식 판단을 내렸다. 2012년부터 지분법 회계를 적용했어야 하며, 바이오젠 보유 에피스 콜옵션을 재무제표에 부채로 계상하지 않는 방법으로 4조5000억원 규모 분식을 범했다고 밝혔다. 

 

前 시티증권 직원 "삼성, 모직 상장시 주가 보수적 산정" 당부

지난달 18일 열린 이 사건 60회 공판은 심리의 전체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날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 시티증권 M&A 담당 직원 A는 검찰 주신문에서 검찰의 기본 시각과 상반된 증언을 했다.

그는 모직-물산 합병 전 있었던 제일모직 상장 당시, 회사 관계자들이 ‘주가를 보수적으로 산정할 것’을 여러 차례 당부했다고 말했다. A의 증언은 ‘이 부회장 지배력 강화를 위해 모직 주가는 부추기고, 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해 인위적 주가조작에 나섰다’는 검찰 공소사실과 상충된다. 

검찰은 모직-물산 합병의 목적이 전적으로 이 부회장 그룹 지배력 강화에 있었다는 판단을 고수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제일모직 상장’은 위 목적 달성을 위한 밑작업이 된다. 

합병비율 산정 전 모직 주가 부양을 위해 자회사인 삼바 분식을 시도하는 등 위법을 마다하지 않았다면, 모직 상장 당시에도 동 기업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증언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모직 상장 전 회사 임직원들은 되레 ‘주가의 보수적 산정’을 요구했다.

모직 주가의 인위적 부풀리기를 위해 자회사 재무제표 분식이란 범행에 나선 삼성이, 그 사전 준비작업인 모직 상장 과정에서 주가의 지나친 고평가를 경계했다는 진술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60회 공판 증인으로 나온 A 진술을 눈여겨 봐야 하는 이유이다.
 

"삼성, '모직 주가' 정말 보수적 산정 원했다" 

증인 A는 삼성그룹 관련 상장과 인수합병 등 업무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삼성은 2014년 하반기 제일모직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A는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직원들과 교신하면서 모직 상장 실무를 맡았다.

주신문에서 검찰은 “제일모직 상장이 경영승계 작업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삼성 미전실로부터 들은 바 있느냐”고 추궁했다. A는 “미전실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그런 이야기는 당시 증권업계가 예측·예상하면서 떠들고 있었던 부분”이라고 답했다.

A는 “당시 증권사들이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리포트를 썼고,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의 경우도 승계와 관련된 여러 시나리오가 있었다“고 부연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A가 2014년 10월 작성한 이메일이다. 그는 이메일에서 “삼성그룹은 정말로 가치를 보수적으로 산정하길 원했다”며 “그 당시에 삼성 측과 대화했던 사람이기에 말씀드리면, 제일모직 가치의 보수적 산정은 굉장히 좋은 의도였다”고 평가했다.

A는 “발행사가 약속할 수 있는 것 보다 좋은 얘기를 많이 해서 상장 가치를 올릴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일이 허다하다”며 “당시 (삼성 측으로부터) ‘우리 삼성은 시장 투자자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고, 여기에 저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이 동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삼바 "에피스는 종속기업"... 증인 진술, 회사 측 항변 뒷받침  

증인 A는 삼바 분식 의결의 근간이 된 에피스 지배 형태와 관련, 이 사건 전체 흐름을 바꿀 수도 있는 중요 증언을 했다. 검찰과 변호인, 증인간 오고간 신문 내용을 되짚으면 삼성은 처음부터 에피스를 단독지배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이 부분 증인신문 질의응답 발췌. 

검사 : 에피스 상장 통해 신규 운영자금 유치하면서도 상장 이후 에피스 지배력 흔들리지 않기를 원했다는 건가요? 

증인 : 그게 제가 이해한 방향 맞습니다. 

검사 : 2015년 12월경 증인은 에피스 상장 중단 통보 받았죠?

증인 : 네.

검사 : 중단 이유는 (에피스) 상장 후에도 삼성과 바이오젠 지배구조가 유지돼야 하는데 (바이오젠이) 공동운영을 포기하지 않아서? 맞나요? 

증인 : 제가 기억하는 건 두 가지인데 삼바와 바이오젠 논의 순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근데 그게 (바이오젠이) 지분을 팔지 않아서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른 기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바이오젠이) 무리한 요구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에피스 후속 제품에 대한 권한을 요구했던 걸로 기억하고. 내용 들여다보면 바이오젠이 이익을 뽑아가는 정당한 수준을 넘어서 지나치게 많은 걸 요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바이오젠 제안을 받아들이면) 대상 회사(에피스)가 그것 때문에 실적이 안 좋아지고 미래가치가 훼손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확히는 (삼성) 경영진이 이걸 수용하면서까지 바이오젠 요구 들어줄 수는 없다. 두 번째는 그때 나스닥 상장 추진 당시 헬스케어 섹터가 상당히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증인 답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팩트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에피스 상장을 앞두고 삼성과 바이오젠이 에피스 지분 매각 및 조건 등을 협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과정에서 바이오젠이 무리한 요구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특히 '바이오젠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면서까지 에피스 상장을 추진하지는 않았다'는 부분은 에피스에 대한 삼성 측의 기본 입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동 진술에 의하면 삼성은 에피스에 대한 지배권을 양보할 의사가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삼성바이오와 그 변호인단은 2018년 11월 증선위의 분식 의결 이후 기회가 날 때마다, "에피스는 회사의 종속기업이었으므로 연결회계를 적용했다"고 강조했다. A의 증언은 회사 측 항변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미 단독지배하는 기업에 연결재무제표를 적용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삼바는 2015년 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가 한국과 유럽에서 각각 시판허가를 받으면서,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 지배력이 현실화됐다고 판단, 이때부터 에피스를 단독지배 기업이 아닌 투자기업(관계사)으로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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