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긴 엘리엇에 檢 반색?... '삼바 재판' 영향 분석 [시경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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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이긴 엘리엇에 檢 반색?... '삼바 재판' 영향 분석 [시경pick]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3.11.0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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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만 5년째... 삼성바이오 분식 행정소송 전망
엘리엇의 '합병비율 불공정' 주장, 檢과 판박이
증선위 '분식 의결'... 일부 논리 모순, 팩트 오류
ISDS 국제 재판소... 분식 의혹 관련 언급 없어
삼바, 부채·자산 모두 '시가' 평가... 회계기준 부합
부채 시가 산정, 자산만 '장부가' 평가했다면 그게 분식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시장경제DB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시장경제DB

2018년 7월 미국계 다국적 헤지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1조원 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 심리를 맡은 국제투자분쟁(ISDS)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동 판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vs 증권선물위원회’ 행정소송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재판소의 손해배상 판결이 나온 시점은 올해 6월 20일. 재판소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9만 달러(한화 약 690억원)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연이자와 법률비용 등을 포함하면 총 배상금은 약 1300억원에 달한다. 한국정부의 정정신청에도 불구하고 배상금은 97억원 줄어드는데 그쳤다. 한국 정부가 판결에 불복해 영국법원에 취소소송을 내면서 국제소송 2차전을 예고하고 있다.

엘리엇은 2015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에서 찬성표를 던진 사실을 문제삼았다. 엘리엇은 당시 합병비율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합병비율이 구 물산 측 주주에 불리하게 산정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럼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공적투자기관인 국민연금이 이의를 제기치 않고 찬성 의견을 밝힘으로써 결과적으로 구 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엘리엇 주장 요지이다. 위 재판부는 이같은 엘리엇 주장 중 일부를 받아들였다.
 

엘리엇과 한국 검찰의 논거, 매우 닮아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검찰 고발을 계기로 시작된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 사건' 재판은 5년째 '속행 중'이다. 검찰은 삼성물산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사실로 보고, 이를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가 완성됐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시각은 정권과 검찰 수뇌부가 바뀐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고 있는 이 사건 피고인은 이 회장 등 전현직 삼성 경영진이다. 이 사건은 그보다 앞서 심리가 개시된 서울 양재동 행정법원의 '증권선물위원회 시정권고 등 제재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 뿌리를 두고 있다. 18년 11월 증선위는 삼성바이오 측이 미국 합작사인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 상당 부채를 고의 누락하는 등의 방법으로 4조5000억원 규모 회계 분식을 범했다고 판단, 검찰 고발과 함께 대표이사 및 담당 임원 해임, 감사인 지정, 재무제표 재작성 등의 처분을 의결했다. 

증선위의 분식회계 의결 직후 삼성바이오는 서울 행정법원에 시정권고 및 제재처분 취소를 구하는 본안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삼성 측의 가처분을 인용했다.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증선위 분식의결과 그에 따른 제재처분 효력은 본안 1심 판결 때까지 정지됐다. 동 본안 사건 역시 5년간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중앙지법 사건이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비롯 이 회장 경영권 승계 과정 전반의 위법성을 입증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면, 행정법원 사건은 증권선물위원회의 삼바 회계 분식 의결이 적법했는지를 살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두 사건 기초사실관계가 같고,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 사건의 한 축이 삼바 분식 의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증선위 분식 의결의 당부를 다투는 행정소송 사건 재판부 판단은 중앙지법 사건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5년 전 증선위의 회계 분식 판단과 이를 기초로 한 검찰 시각이 미국계 다국적 헤지펀드 엘리엇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주요 기업을 상대로 적대적 인수를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헤지펀드의 주장에 우리 금융당국과 검찰이 힘을 실어주는 모순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PCA의 판결이 삼바 행정소송과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재감리 안건 상정 등을 논의하기 위해 2018년 10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증선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김용범 위원장(금융위 부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재감리 안건 상정 등을 논의하기 위해 2018년 10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증선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김용범 위원장(금융위 부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PCA, 분식 여부 판단 안 해... 삼바 행정소송 영향 없을 듯

PCA는 국내 형사 확정판결을 인용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사실상 캐스팅 보트를 쥔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표결과 구 삼성물산 주주들의 손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는 한편, 국민연금의 행위가 우리 정부에 귀속되는 것으로 판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삼바 분식회계 의혹'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즉 2015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양사 합병 찬성 방침과 삼바 분식 의혹 사이 관계성에 대해선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이같은 사실에 비추어 봤을 때, 엘리엇의 일부 승소 판결을 삼성 경영권 부당승계 의혹 내지 증선위 분식 의결 취소소송의 변수로 인식하기엔 무리가 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우리 법원의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20년 1월 이재용 회장 파기환송심을 심리한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특검이 신청한 증거 중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증거인멸 등 다른 사건 증거들은 채택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2019년 12월 삼바 증거인멸 혐의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소병석 부장판사)도 본죄인 분식회계 혐의와 관계없이 증거인멸죄 성립 여부만을 판단했음을 분명히 했다.
 

검찰 논리가 안고 있는 세 가지 결함

검찰이 그린 삼성 경영권 부당 승계 의혹 사건 밑그림을 요약 정리하면 이렇다. 

2014년 이건회 선대회장이 갑작스런 병세 악화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이재용 회장(당시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가 그룹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다. 삼성 측은 옛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이 회장 경영권 승계 전략을 구상·기획했으며 구체적 방법론으로 이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옛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추진했다.

두 회사 간 합병의 근본 목적은 이 회장 경영권 승계와 그룹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강화에 있었으므로, 이 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 산정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제일모직 주가는 부양하고, 삼성물산 주가는 인위적으로 하향하는 시세조종이 시도됐다.

합병비율 산정의 ‘사후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는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의 기업 가치를 끌어 올릴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삼바 재무제표를 조작했다(회계 분식).

삼바의 글로벌 파트너인 바이오젠은 삼바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을 최대 50%-1주까지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했는데, 이는 삼바 측의 부채로 계상됐다. 그 결과 삼바 부채는 1조8200억원 이상 늘었으며, 이를 그대로 둘 경우 장부상 자본잠식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이같은 상황은 모기업인 제일모직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며 이 회장에 유리하게 산정된 합병비율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삼바는 그 해법으로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 부채를 은폐하고자 했으며, 에피스를 자회사(종속기업)가 아닌 관계사(투자기업)로 변경하고 연결회계가 아닌 지분법 회계를 적용했다. 지분법 회계 적용으로 삼바가 보유한 에피스 주식가치는 장부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됐으며, 삼바는 조 단위의 일회성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얼핏 자연스러워 보이는 위 논리에는 결함이 존재한다.

첫 번째 검찰의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면, 삼성 경영권 승계 이슈가 발생한 시점은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투병에 들어간 2014년 이후이다. 이 선대회장 와병 이후 이재용 회장 경영권 승계 프로젝트가 가동됐다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삼바의 분식회계 시도가 2012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증선위도 삼바 재무제표는 2012년부터 잘못 작성됐다고 적시했다.

2012년 이건희 선대회장은 건재했다. 검찰이 말하는 '이재용 회장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을 할 이유가 없었다. 검찰 시각에 따르면 시간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 발생한다.

두 번째 콜옵션 부채 은폐를 목적으로 대규모 분식에 나섰다는 논리에도 허점이 있다. 

검찰과 증선위가 인정하는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 부채는 1조8200억원. 위 콜옵션 부채 산정 기준은 '시가'이다. 검찰은 위 부채 은폐를 위해 회계를 분식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에피스는 삼바와 바이오젠이 자금을 투자해 설립한 합작법이이다. 자연스레 삼바가 보유한 에피스 주식도 존재한다. 그 주식가치는 '시가'로 계산했을 때 4조5350억원. 검찰은 삼바 보유 에피스 주식을 ‘시가’로 평가한 사실을 두고, 이를 분식회계의 증거라고 했다. 여기서 모순이 불거진다.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 부채를 ‘시가’로 산정한 사실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삼바 보유 에피스 주식(자산)을 시가로 평가한 부분만 분식이라 말하는 건 궤변이다. 부채를 ‘시가’로 평가했다면 자산도 ‘시가’로 평가하는 것이 논리에 부합한다. 오히려 어느 한쪽은 시가로 평가하고, 다른 한쪽은 장부가로 평가한다면 그것이 회계분식이다.

이 사건 변호인은 2015년 하반기, 에피스 개발 바이오시밀러 2종이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는 등 수익 개선 시그널이 뚜렷해지자, 그해부터 에피스를 삼바의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사로 보고 지분법 회계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합작법인을 관계사로 볼 경우, 부채와 자산은 모두 '시가'로 산정해야 한다. 이는 ‘한국 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의 기본 원칙이다.

세 번째, 검찰은 콜옵션 부채를 은폐하지 않고 그대로 계상하면 삼바가 자본잠식에 빠질 우려가 있었고, 이는 모기업인 옛 제일모직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콜옵션 부채 은폐를 기도했다는 것이 검찰 인식이다. 그러나 삼바 자산(4조5350억원)은 콜옵션 부채 계상액(1조8200억원)을 2조7000억원 상당 초과했다. 콜옵션 부채 때문에 회사가 자본잠식에 빠졌을 것이란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증선위 시정권고 등 취소 청구 소송' 다음 재판은 12월 20일 서울 양재동 행정법원(행정3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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