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가 미래다①] 뉴삼성 키워드 'eX'... 제품에 브랜드 철학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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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가 미래다①] 뉴삼성 키워드 'eX'... 제품에 브랜드 철학을 담다
  • 최유진 기자
  • 승인 2022.10.0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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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성패 가르는 eXperience] 삼성전자 CX편
CX실... 제품 설계, 마케팅 등 경영 전반에 '고객 경험(eX)' 반영
2019년 CX 임원 1명, 2022년 23명... 전문가 영입 크게 늘려
갤럭시 폴더블폰 UX, 스마트폰 사용 환경 변화 주도
비스포크 시리즈, 프리스타일 등 UX 적용... MZ세대 공략
패트릭 쇼메 삼성전자 무선 사업부 CX 부사장. 사진=삼성전자
패트릭 쇼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CX 부사장. 사진=삼성전자

[편집자주]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DX)이 보편화되면서 사용자(User) 혹은 고객(Customer)의 경험(Experience)이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같은 경향은 삼성전자, LG전자, 애플과 같은 하드웨어 기업은 물론이고 구글, 스포티파이와 같은 IT 콘텐츠 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초기 개발단계부터 'User'와 'Customer'의 니즈·정서를 적극 반영한 제품은 작게는 개별기업의 '초격차'를 유지하는 비결이 되고, 넓게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UX를 ‘디자인’의 한 장르 정도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이는 근시안적이다. UX는 디자인을 넘어 제품 혹은 서비스의 기능에 근본적 변화를 준다.

삼성전자의 ‘더 프리스타일(The Freestyle)’과 LG전자의 ‘스탠바이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은 ‘TV는 집에서 보는 것’이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꿨다. 모바일과 디스플레이 분야의 폼팩터 혁명 역시 그 바탕에 UX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성공한 UX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숨겨져 있다. 제품의 설계와 디자인에 '인문학적 감수성'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IT기업 UX팀에 유독 ‘인류학’ 전공자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UX를 넘어 CX(Customer Experience)로 개념을 확장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CX는 제품 혹은 서비스의 개발은 물론이고 협력사와의 관계성, 마케팅 전략, 고객관리 등 기업 경영 전반에 '고객'의 경험을 반영해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경계면이 한결 넓다. <시장경제>는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기업의 필수 생존전략으로 부상한 UX·CX를 주제로 분석기사를 마련했다.
 

갤럭시 폴더블폰 UX, 삼성만의 '디자인 철학' 구축 계기     

"새로운 폼팩터인 폴더블폰의 UX 디자인은 전통적 스마트폰과는 달라야 함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폼팩터에는 사람들의 스마트폰 사용 방식 자체를 바꾸는 잠재력이 있음을 알게 됐고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는 사용자 니즈를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충족시키기도 했다."

위 글은 지난달 29일, 삼성전자 UX팀을 이끌고 있는 홍유진 MX사업부 UX팀장(부사장)이 자사 뉴스룸에 올린 기고문 중 일부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더블폰은 잡스와 애플로 상징되는 스마트폰 시장 판도를 뒤엎은 폼팩터 혁명으로 평가할만하다. 출시 초기 일부 해외 유튜버들이 제품을 폄훼하는 악의적 글을 올리는 등 진통을 겪었지만, 갤럭시 폴더블폰은 잡스의 유산인 ‘모서리 둥근 직사각형’만이 존재하던 스마트폰 업계를 밑바닥부터 뒤흔들었다.

홍 부사장은 갤럭시 폴더블폰 디자인을 총괄한 UX 전문가이다.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그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를 그쳐 미국 선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경력을 쌓았다.

홍 부사장의 기고문은 UX 개념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말처럼 UX는 단순한 디자인 혁신을 넘어 스마트폰 사용 방식 자체를 바꾸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심지어 그 힘은 개발자조차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갤럭시 폴더블폰은 삼성이란 브랜드를 모바일 업계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올린 게임체인저이다. 패스트 팔로어로서 삼성은 애플에 맞선 유일한 경쟁자였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애플은 극단적 미니멀리즘에 바탕을 둔 그들만의 디자인 철학을 완성했다. 반면 갤럭시 스마트폰에는 그것이 부족했다. ‘성능’과 ‘편의성’에 초점을 맞춘 삼성 스마트폰이 세계적 흥행을 거듭하면서도 일각에서 ‘아재폰’이란 지적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선 자신만의 브랜드 철학, 디자인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갖추지 못한 제품이 퍼스트 무버의 위치를 차지한 예는 아직 없다. 브랜드 철학을 완성한 퍼스트 무버의 제품은 라이프스타일을 넘어 사회 전반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폴더블폰 UX는 삼성만의 브랜드 철학, 갤럭시만의 디자인 철학을 재정립하는 변곡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UX가 만들어낸 걸작... 비스포크, 더 프리스타일 

삼성만의 브랜드 철학을 담기 위한 UX디자인은 TV와 가전 부문에도 적용되고 있다. 냉장고 제품 라인에 처음 적용된 비스포크 디자인, ‘CES 2022’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The Freestyle’이 좋은 예이다.

'비스포크 디자인'은 냉장고를 입체적으로 인식했다. 냉장고 각 칸이 '모듈화'되면서 소비자는 본인이 원하는 바에 따라 냉장칸, 냉동칸, 다목적칸을 자유롭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게 됐다. 패널의 색상을 자유롭게 연출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비스포크 만의 장점이다. 한번 사면 몇 년간 교체하지 않는 냉장고의 특성을 고려, 실내 인테리어에 맞춰 언제든 용도와 색상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것. 비스포크 라인업 출시 후 삼성 냉장고 라인업은 신혼가정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The Freestyle’은 업무용으로 쓰이던 빔프로젝터 기술을 접목, TV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꿔놓았다. TV를 거실에서 야외로 끌어내게끔 만든 이 제품은, 맑게 갠 밤하늘을 무대 삼아 탁 트인 야외에서 자기만의 영화관을 연출할 수 있는 경험을 고객에 제공한다. 불필요한 틀에 얽매이길 거부하는 MZ세대가 이 제품에 열광한 이유를 분석하는데 있어 UX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이재용의 '뉴삼성'... 숨은 조력자 'eX' 

삼성전자는 CX라는 큰 틀로 UX 개념을 확장했다. ‘사용자’ 혹은 ‘고객 관점’에서 경영 현실을 되짚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이 기대된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서 ‘CX’ 표현이 등장한 것은 2019년이 처음이다. 그해 CX 담당 임원은 1명, UX팀 임원은 5명으로 집계됐다. 페트릭 쇼메 부사장을 리더로 하는 CX실 소속 임원 수는 지난달 말 기준 부사장 7명, 상무 16명으로 늘었다. 홍 부사장이 팀장을 맡고 있는 UX팀은 CX실 아래 위치해 있다.

삼성전자가 고객 경험을 사업 전 영역에 확대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말 단행된 조직 개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조직 개편 소식을 전하면서 기존 모바일과 가전을 묶은 ‘세트’ 부문 공식 명칭을 ‘DX(Device eXperience)’로 정했다.

모바일 사업을 전담하는 무선사업부는 26년 만에 ‘MX(Mobile eXperience)’로 이름을 변경했다. 지난해 말 단행된 조직개편으로 신설된 조직 가운데는 ‘CX·MDE 센터’도 있다. CX는 고객 경험을, MDE(Multi Device Experience)는 '멀티 디바이스 경험'을 각각 뜻한다. MX사업부와 ‘CX·MDE 센터’는 모두 MX부문에 편재됐다. ‘X(경험)’를 각 사업부문 핵심 지표로 삼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회사의 전략 변화에는 서울대 동양사학과 출신 ‘인문학도’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사학은 인류학, 철학과 함께 ‘기초인문학’의 하나로 분류된다. 사학 전공자들은 통시론적 관점에서 사안의 쟁점을 정리하는 경향이 있다. 고객 경험이 디지털 대전환 시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로 부상하는 흐름을 읽고 선제적 조직 개편에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삼성전자 CX, 학부 전공보다 현업서 쌓은 경험 중시  

삼성전자 CX파트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인문학 전공자 보다는 현업 전문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IT기업은 광범위한 UX 리서치 조사 등을 수행하기 적합하다는 이유로 인문학 전공자를 선호한다. 삼성은 학부 전공과 관계없이 현업에서 UX 경험을 쌓은 경력직 중심으로 조직을 꾸렸다.

CX실장을 맡고 있는 페트릭 쇼메 부사장도 대학 전공은 전자·통신공학이다. 그는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네트워크 플랫폼 운영사 ‘ICO 글로벌 커뮤니케이션’과 영국 보다폰 등을 거치면서 마케팅 전략가로 성장, 사업 기획 분야서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가 그리는 삼성 스마트폰의 본질적 경쟁력은 시공의 제약을 초월한 ‘연결성’에 있다. 구글, MS와의 협업이 대표적 사례이다. 특유의 ‘폐쇄성’, ‘보안성’을 앞세워 명품 이미지를 굳힌 애플과는 180도 다른 길을 선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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