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가 미래다②] 모바일 접고 '전장'... 고객경험(CX)이 LG체질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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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가 미래다②] 모바일 접고 '전장'... 고객경험(CX)이 LG체질 바꿨다
  • 최유진 기자
  • 승인 2022.12.2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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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성패 가르는 eXperience] LG전자 CX편
브랜드 경쟁력 잃은 모바일 과감히 매각
미래 블루오션 '전장', '신가전'으로 방향 전환
정체된 브랜드 가치... '고객경험' 앞세워 재정립
스탠바이미, LG틔운 등 CX 반영 신가전 출시
단기 성과는 시기상조... '브랜드 스토리化' 필요
CEO 직속 CX센터 강화, 인문학전공 부족 아쉬워
조주완 LG전자 사장이 지난 6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석, LG전자 전시 부스에서 전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LG전자 제공
조주완 LG전자 사장(앞줄 왼쪽)이 지난 6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석, LG전자 전시 부스에서 전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LG전자 제공

[편집자주]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DX)이 보편화되면서 사용자(User) 혹은 고객(Customer)의 경험(Experience)이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삼성전자, LG전자, 애플과 같은 하드웨어 기업은 물론이고 구글, 스포티파이와 같은 IT 콘텐츠 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초기 개발 단계부터 '사용자'와 '고객'의 요구, 정서를 적극 반영한 제품은 작게는 개별기업간 '격차'를 유지하는 비결이 되고, 넓게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UX를 '디자인'의 한 장르 정도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이는 근시안적이다. UX는 디자인을 넘어 제품 혹은 서비스의 기능에 근본적 변화를 준다.

삼성전자의 '더 프리스타일'(The Freestyle)과 LG전자의 '스탠바이미'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제품은 'TV는 집에서 보는 것'이란 인식을 바꿨다. 모바일과 디스플레이 분야의 '폼팩터 혁명' 역시 그 바탕에 UX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성공한 UX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숨겨져 있다. 제품의 설계와 디자인에 '인문학적 감수성'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IT기업 UX팀에 유독 '인류학' 전공자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UX를 넘어 CX(Customer Experience)로 개념을 확장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CX는 제품 혹은 서비스의 개발은 물론이고 협력사와의 관계성, 마케팅 전략, 고객관리 등 기업 경영 전반에 '고객'의 경험을 반영해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경계면이 한결 넓다. <시장경제>는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기업의 필수 생존전략으로 부상한 UX·CX를 주제로 분석기사를 마련했다.
 

모바일 실패 교훈... 시각 바꾼 '신가전' 

"이제 기술로 뭔가 해보려는 시대는 지났다. 경험을 통해 차이를 내야 한다."
올해 9월3일, LG전자 TV CX팀 백선필 상무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22 IFA'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경험을 통한 차이'의 구현은 이미 시작됐다. 과거의 화려한 영광을 뒤로 하고 모바일 사업을 정리한 것이야 말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회사의 모바일 사업부문은 2G 시대 초콜릿폰과 프라다폰이 잇따라 글로벌 대흥행에 성공하면서 삼성을 위협하는 브랜드로 각광을 받았으나, 스마트폰 시대로의 변화 흐름을 뒤늦게 인식하는 우를 범했다. 한박자 늦은 경영 판단에 보수적인 마케팅 전략이 더해지면서 회사의 모바일 브랜드는 빠르게 경쟁력을 잃었다.

특히 'V시리즈'는 "정가를 주고 사면 바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참담한 경험을 회사에 안겨줬다. V시리즈 당시 LG전자의 스마트폰은 '내구성'에 관한한 어느 브랜드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스팩과 디자인면에선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글로벌 주요 브랜드들이 카메라 렌즈 개수 경쟁을 끝내고 결제 편의성과 스마트폰 보안에 집중하는 사이 '펜타(렌즈 5개) 카메라'를 앞세운 사례는 '모바일 고객경험'에 대한 회사의 낮은 인식을 보여준다. 

'고객 경험'이란 시각에서 볼 때, 모바일 사업 매각과 전장부문 강화는 'LG 브랜드 2.0' 시대를 기대할만한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 산업 전체를 보는 시각의 대전환이 없다면 결단하기 어려운 경영 판단이기 때문이다.

전장사업은 '가전'을 넘어 IT·전자업계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흔치 않은 블루오션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최근의 전장은 단순한 인포테인먼트를 넘어 디지털 금융, 배달과 숙박을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 빅데이터, 헬스케어, 홈네트워킹과 연결되면서 '초연결' 사회를 이끄는 인터페이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조직개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LG전자는 2020년 11월 CEO 직속으로 CX Lab을 신설했다. 고객의 감성적 경험에 초점을 맞춘 신가전이 잇따라 출시된 것은 이 무렵부터이다.

최근 회사가 내놓은 제품을 보면 고객과의 감성적 거리 좁히기에 회사가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의류관리기 스타일러에 무빙 건조 기능을 탑재하고, '반려식물'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전자동 식물재배기 '틔운'을 출시한 것이 좋은 예이다. 

LG전자 CX부서 대표작은 '스탠바이미'다. 스탠바이미는 스탠드 형태의 포터블 스마트TV이다. 이동이 용이한 것은 물론 OTT와의 연동도 자유롭다. 일반 거실용 TV보다 작은 모니터를 가로·세로 방향으로 회전할 수 있도록 설계돼 출시와 동시에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연이은 매진 행진에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웃돈까지 주고 거래되는, '없어서 못 사는 잇템'으로 등극했다. 

LG틔운 라인업 역시 CX가 반영된 신가전이다. 베란다가 아니면 집에서 채소를 기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도시민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이 제품은 재배하고자 하는 식물의 종류에 맞춰 최적의 온도와 밝기를 제공한다. 1인 가구를 겨냥한 미니 버전도 추가 출시됐다.
 

브랜드 가치 재정립... 다음 단계는 스토리텔링  

현재 회사가 보여주는 변화에 대해서는 브랜드 홍보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고객 경험에 근거해 브랜드 가치 내지 철학을 제품에 입히는 작업은 단기간 프로젝트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같은 반론은 근시안적이거나 억지스럽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단기 성과가 아니라 신가전을 통해 회사가 제시한 '방향성'이다. 

신가전으로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한 LG가 다음단계로 올라가려면 브랜드의 '스토리화(化)'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런 점에서 CX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고객경험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탐구한다면 감칠맛 나는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한편 회사는 올해 인사에서 CX Lab을 'CX센터'로 확대, 위상을 크게 높였다. 회사는 조직 규모를 팀, 실, 담당, 센터, 본부로 구분하고 있다. 기존 CX Lab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임시 조직 성격이 강했다.

CX센터 수장으로는 이철배 부사장이 낙점을 받았다. 그는 카이스트(KAIST)에서 산업디자인 석사, 핀란드 알토대에서 MBA 석사를 받았다. 1993년 금성사(옛 LG전자)에 입사해 2008년 Strategic Design Planning팀장(상무)으로 승진했다. CX팀 구성원들의 전공을 들여다보면 경제, 경영, 공학, 산업디자인 등이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과 달리 인문학 전공자가 눈에 띄지 않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LG전자 TV 스탠바이미. 사진=LG전자 홈페이지
LG전자 TV 스탠바이미. 사진=LG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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