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5> 세종대왕과 황토 사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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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5> 세종대왕과 황토 사우나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2.0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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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한증소(汗蒸所)에서 땀을 내는 사람은 병이 나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죽는 사람이 있다. 찜질의 효용성 여부를 널리 확인해야 한다. 치료에 도움이 안 되면 한증소를 없애야 한다. 만약 유익하면 의원이 매일 확인해야 한다. 또 진단을 해 땀을 낼 병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 병이 심하고 기력이 떨어진 사람은 찜질을 금하게 하라." <세종 4년 8월 25일>

찜질방에 대한 세종의 의견이다. 찜질방인 한증소는 조선시대 질병 치료 차원에서 선호됐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체질에 따라, 몸 상태에 따라 효과가 달랐다.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의학지식이 짧은 사람으로부터 의료찜질을 받다 쇠약해져 죽는 사례도 있었다. 종종 발생하는 불상사를 보고 받은 세종이 찜질방 개선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이다.

최주리 한의사

세종의 명령 후에도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2개월 후인 10월 2일 예조의 보고에 의하면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과 도성의 한증소에서 승려가 병의 증상과 관계없이 찜질을 시켜 환자들을 죽게 했다. 이에 임금은 진단에 소홀한 의원과 승려를 처벌했다. 그러나 동서활인원과 도성의 한증소는 유지시켰다.

한증소는 일반 백성을 위한 의료기관인 혜민국 소속으로 했다. 또 승려에게 한증승 직급을 내려 관리하게 했다. 동서활인원에는 8명씩의 매골승(埋骨僧)을 배치해 무연고로 죽은 사람을 매장하게 했다.

세종은 찜질방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찜질방을 애용하고, 왕자들도 이용하게 했다. 향약집성방에는 세종이 궁궐에 있는 10㎡(3평)의 전용 찜질방에서 수시로 피로를 풀고, 기를 회복한 것으로 전한다. 또 도성의 황토 찜질방에 한의사를 배치해 심한 고혈압, 당뇨병 등 난치병을 치료하도록 배려했다.

향약집성방은 세종 때에 편찬된 향약과 한의학에 관한 책이다. 우리 산야의 약재인 향약에 대하여 서술하고, 병의 원인과 처방에 대하여 기록했다. 세종의 찜질방 관심은 왕실에 대대로 전수됐다. 광해군은 대궐에 황토 찜질방을 설치해 종기 등을 치료했다. 살균력이 있는 황토의 원적외선을 이용한 셈이다. 황토 찜질방은 돌을 쌓은 뒤 황토를 바른 집의 아궁이에 소나무를 때 내부를 데우는 방식이다. 솔잎을 깔아놓은 열방에 일정 간격으로 드나들며 온몸을 땀으로 적셔 질병 치유를 꾀했다.

세종이 약효를 믿은 황토는 복룡간(伏龍肝)이다. 복룡간은 아궁이 바닥에서 오랫동안 불기운을 받아 빛깔이 누렇게 된 흙이다. 세종은 16년 6월 5일에 전염병인 역질 치료 처방을 예조에 내린다. 이때 열독(熱毒) 완화 처방 중에 복룡간을 언급한다. 향약집성방에서는 복룡간의 효험을 중시했는데, 주로 여성의 어지러움, 토혈, 중풍 치료에 활용했다.

황토의 효과는 여러 문헌에 소개돼 있다. 동의보감에는 몸의 독소를 빼기 위한 방법으로 1년에 1~2회 황토목욕을 제시했다. 또 더위에 지친 사람 회생 방법으로 배꼽에 뜨거운 진토를 덮고, 황토 구덩이에 누이도록 했다. 천연두와 습양증에도 황토를 약재로 사용했다. 신농본초경은 황토가 비위 안정, 하혈 중지, 독소 제거에 좋다고 소개했다. 의림찬요는 음양조화, 독소해소, 어혈제거, 상처 봉합의 효과를 들었다. 고종 때 편찬된 왕신양면술에서는 임금의 병 치료에 황토방 사용을 서술했다. 특히 세조는 왕족이 피로를 풀 수 있는 황토방을 궁 안에 설치했음을 기록했다.

현대의학으로도 황토는 해독, 불순물 제거, 신진대사 활성화에 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카탈라아제, 다이페놀 옥시다아제, 사카라아제, 프로테아제 등 건강에 유익한 효소의 성분이 포함돼 있다. 또 원적외선은 열에너지 발생과 함께 세포 생리작용을 원활하게 한다.

황토와 황토 사우나, 황토 제품은 인체에 유용한 면이 많다. 그러나 모든 이에게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체질 등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 또 체질을 떠나 황토 복용은 위점막 자극, 복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땀을 내는 치료법인 발한법(發汗法) 역시 체질, 증상에 따라 다르다. 땀으로 노폐물이 나가는 태음인에게 가장 좋고, 땀 배출 후 기의 소모가 심해지는 소음인에게는 좋지 않다. 또한 흉민감이 발생할 수 있는 소양인에게는 고온다습 환경에 오래 노출되는 것 자체가 금기 사항이다. 고혈압이나 심장질환을 앓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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